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사방이 탁 트여 시원하네요. 한 바퀴 돌아보죠?
돈키: 우리 세대에겐 초등학교 소풍장소로도 익숙해.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인데, 정상에 이렇게 세마대가 있지.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말을 씻기던 자리라 해서 ‘세마대(洗馬臺)’라 불려.
호새: 문화탐방회원들을 따라 왔던 기억이 나요.
돈키: 그래, 이곳에 서면 고대에서 현대까지 이어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좋단다.
동쪽으론 삼성반도체 화성단지와 동탄 신도시가, 그 옆으로 붓끝처럼 뾰족한 필봉산이 보이지. 남쪽으로는 금암리 청동기시대 지석묘군과 경기도립 물향기수목원, 그리고 공자를 모신 궐리사가 자리하고 있고.
서쪽은 서봉산 너머로 석양이 젖어들면 저 멀리 서해로 흘러가는 물길이 어우러져 마치 그림 같아.
북쪽으로 황구지천 건너 화산뜰이 펼쳐지고, 그 위로 미국 존슨 대통령이 다녀간 곳을 기념한 저곳이 바로 ‘존슨동산’ 이야. 그옆 화산 자락에 정조의 사부곡이 깃든 융건릉과 원찰인 용주사야.
저멀리 보렴. 수원 광교산, 팔달산에서 내린 수원천이 수원비행장 하단에서 황구지천에 한몸을 이뤄 들판을 가르며 흐르지. 탁트인 저리 너른
송산.양산.안녕뜰의 풍경을 보니 정다웁잖니.
예부터 물이 풍부한 수원은 한국 농업경제사의 맥을 읽을 수있단다.
호새: 그런데, 저 아래 삼미천의 ‘삼미(三美)’는 무슨 뜻이에요?
돈키: 뫼(山)에서 파생된 말이라는 설도 있고, 금송과 대나무에 더해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 있었다는 얘기도 전하지. 하지만 그보다는 중요한 건 지금 이곳의 산천과 우리 삶을 어떻게 이어가느냐겠지. 동학산, 필봉산, 반석산, 청학봉, 무봉산, 양산봉, 화산, 서봉산, … 산들이 서로 어깨를 이어가니 신도시와 옛 고을이 어우러질 풍경이 필요해.
호새: 인근에 대학들이 많은가 봐요?
돈키: 그렇지. 경부선 축을 따라 기업과 대학들이 모여 있어. 이곳을 중심으로 바로 저 양산봉 기슭에 한신대를 비롯해 오산대, 화성시엔 저편쪽에 수원대, 협성대, 수원과학대, 장안대, 수원카톨릭대, 수원여자대, 서편쪽에 신경대 그리고 용인시 경계에 소재한 경희대까지…
꿈을 피워 세계로 뻗어갈 파릇한 기운이 서린 곳이지.
호새: 우와! 남쪽 오세아니아, 서쪽 중국과 유럽, 동쪽 아메리카까지 뻗어날 기운이네요.
호새: 여기오니 오산시 끝자락에 참 아담한 산이에요.
돈키: 그렇지만 6·25전쟁 당시 유엔군이 처음 참전해서 피흘린 죽미령 전투현장이 바로 코앞이야. 바다건너와 먼 이국 땅에서 자유를 지키려 산화한 영령들을 기리는 유엔초전기념관이 있단다.
호새: 저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오산시 세마역에 KTX가 지나가네요.
돈키: 인간이 평생에 걸쳐 할 일을 기계는 단숨에 해내는 세상, AI 큰 물결이 밀려오고 있어. 어찌 여기 주변 뿐이겠니?
오산은 예전엔 수원군 남부에 속했다가 화성군에 편입되었고, 1989년 시로 승격했어. 오산천이 시내를 가로지르고, 시내에 전철역도 세 곳이나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LG와 가장산업단지도 들어서 최근에 성장하는 도시란다.
호새: 네, 팽팽 돌아 말(言)도 많고 탈(가면)도 많은 세상에… 여기 세심대(洗心臺) 소풍이 제격이네요.
돈키: 산성 둘레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착해지니 맘이 어수선하면 가끔 들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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