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노태하 기자] 정부가 내놓은 석유화학업계 구조 개편안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 고사 위기를 극복할 구체적 전략과 대책은 빠져 있고, 정부 주도의 산업 개편 책임마저 업계에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석유화학업계는 정부가 20일 발표한 석유화학 산업 구조 재편안의 큰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 실행 전략과 장기 로드맵이 부족하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정부의 구조조정안에 대해 업계는 정부의 지원은 부족하고 규제와 요구만 강조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정부가 ‘선(先) 자구책, 후(後) 지원’을 강조하며 대주주 출연과 유상증자 등 고강도의 자구책을 요구하면서도, 전기료 인하·보조금 지급·공정거래법상 담합 예외 인정 등 실질적인 지원책은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별·산단별 감축량을 직접 할당하지 않고 연말까지 각 사가 자율적으로 사업재편안을 제출하도록 한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는 정부가 요구하는 대주주의 자구 노력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한다. 유상증자나 사재 출연은 배임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실행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또한 ‘고용 감축 없는 구조조정’ 요구 역시 이미 일부 단지에서 정리해고가 진행 중인 상황과 맞지 않으며, 실질적 지원 없이 원칙만 강조한다면 기업 부담만 커질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자구책 이후 지원’이라는 정부 기조가 업계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설비 전환이나 친환경 투자에는 수천억 단위의 자금이 필요한데, 정부 지원이 사후적으로만 이뤄진다면 기업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며 “투자 지연은 곧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초기 단계부터 금융·세제 지원을 병행해 전환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구조개편안이 업계가 요구해온 정부 주도의 산업 재편이 아닌, 기업의 선제적 자구 노력을 전제로 한 점에서 정부가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해당 프로젝트가 이미 지난 정부에서 시작된 마당에 복잡하게 얽힌 석유화학업계의 이해관계 문제를 현 정부가 직접 떠안기보다는 책임을 업계에 다시 전가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구조개편안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방향을 잡기보다는 업계에 자구책을 먼저 요구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떠넘긴 것처럼 보인다”며 “지난 정부에서 이미 시작된 복잡한 석유화학업계의 교통정리를 현 정부가 직접 풀기보다는 업계에 다시 미룬 셈”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정부는 20일 석유화학산업의 구조적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과잉 설비 감축 △고부가가치 제품 전환 △재무 건전성 확보·지역경제·고용 충격 최소화 등을 핵심으로 하는 구조개편안을 제시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3개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동시 구조개편을 추진하고, 충분한 자구 노력과 타당성 있는 사업재편계획을 전제로 금융·세제·R&D·규제 완화 등을 포함한 종합지원 패키지를 마련하기로 했다.
업계는 이러한 방향에 맞춰 270만~370만톤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NCC) 감축과 친환경·고부가 제품 전환을 추진하고, 연말까지 사업재편계획을 확정해 제출하기로 했다. 정부는 해당 계획의 타당성과 기업의 자구 노력을 종합 검토한 뒤 필요한 지원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며, 무임승차 기업에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업계 한 전문가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석유화학업계의 불황은 중국시장의 공급 과잉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면서 “NCC 감축은 진정한 해결책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라 고부가제품 개발에 대한 R&D 지원 등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석유화학업은 국내 산업의 근간이자 핵심사업으로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만큼 단기적인 아닌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정부는 석유화학 관련 기업들이 제출하는 자구안을 철저히 분석해, 현실가능한 산업 구조개편안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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