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가상화폐 투자 유도 행위, 속칭 '코인영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코인영업'이 주로 이뤄지는 장소는 과거 다단계의 성지로 불렸던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다. 그동안 가상화폐 투자 관련 사기가 끊이지 않았던 만큼 최근의 '코인영업' 행태는 더욱 과감하고 치밀해진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가상화폐 투자 유도 행위의 결말이 좋았던 사례가 없었던 만큼 고수익을 앞세워 돈을 요구하는 순간부터 곧장 거리를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쌈짓돈 들고 테헤란로 찾은 노인들, 빌딩 지하 강당에선 '하루 2% 수익' 투자 설명회
지난 13일 오후 르데스크가 찾은 지하철 2호선 선릉역 인근의 한 카페 내부엔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조용한 카페 내부에 울려 퍼진 그들의 대화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디파이(탈중앙화)' '전자지갑 개설' '레퍼럴(추천인)' 등 젊은 세대도 알기 힘든 가상화폐 관련 전문 용어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이들의 정체는 인근에서 열린 가상화폐 관련 투자 설명회 참가자들이었다.
한 카페에서 코인 투자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던 이필수 씨(71·남)는 "내가 제일 먼저 시작했고 매일 40만원씩 용돈벌이를 하고 있어서 주변 친구들까지 데리고 왔다"며 "두 달 전에 3000만원을 투자했는데 지금은 보유 자산이 5000만원까지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선릉역 일대에는 '영업행위 금지'라는 안내문이 내걸린 카페들이 여럿 존재했다.
선릉역 일대에서 '코인영업'이 주로 이뤄지는 곳은 테헤란로 대로변 빌딩들의 지하 강당이었다. 코인영업에 나선 이들은 빌딩 지하 강당을 장기임대해 주기적으로 투자 설명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르데스크는 직접 한 코인 투자 설명회에 참석해봤다. 설명회장에 입장하니 노인들이 설명회장 앞에 띄워진 설명자료를 보며 영업사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설명자료에는 앞서 카페에서 만난 노인들이 쓰던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강단에 선 한 영업사원의 설명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시중에선 상상조차 어려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투자를 요구했다. 영업사원은 "은행은 연 3% 이자도 보장하지 않지만 우리는 하루 2%, 한 달이면 60% 수익을 보장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 개발자와 여러 박사들이 협력해 만든 블록체인 기술로 기존의 화폐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다. 늦을수록 혜택이 줄어든다"며 조급한 마음이 들게끔 유도했다.
설명회장에서 만난 김숙영(72·여) 씨는 "코인 투자로 수억원을 번 친구가 직접 추천해 줘서 설명회까지 오게 됐다"며 "코인 사기가 워낙 많고 피해자도 많다는 뉴스는 봤지만 지인이 실제 출금까지 한 것을 직접 보고 나니 의심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 일단 1000만원 정도만 투자해 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설명회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영업사원은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설명회 내에서 안내한 거래소를 통해 2000만원 이상 코인에 투자하면 5% 수준(약 100만원) 상당의 기존 코인을 공짜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마지막 제안이 등장하자 설명회 참가자들의 손이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투자 방법이나 절차 등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다.
코인영업에 나선 이들은 설명회 참가자들에게 또 다른 수익창출 방식도 안내했다. 내용은 흔히 알려진 '다단계'과 상당히 흡사했다. 설명회 주최 측은 가상화폐 거래소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거래소는 일명 '레퍼럴'로 불리는 일종의 '추천인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다른 투자자를 유치해오면 거래액 수수료의 일정 비율을 인센티브 명목으로 추천인에게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인센티브 지급 비율은 수수료의 최소 10%에서 25%가 책정됐다. 통상 거래소는 거래액의 약 7%를 수수료로 받는데 만약 거래액이 1억원이라면 이 중 700만원이 거래소 수수료고 그 중 70만원~175만원을 추천인에게 주는 것이다.
과거 코인영업을 해봤다는 김영주(35·남·가명) 씨는 "업체 입장에선 원가부담 없이 말 그대로 수수료만 받는 셈이기 때문에 인센티브를 아무리 줘도 손해 볼 일이 없다"며 "게다가 이런 식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하면 계속해서 새로운 고객을 데려오기 때문에 거래소에 쌓이는 투자금은 점점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거래소가 갑자기 문을 닫으면 투자금은 몽땅 사라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갈수록 교묘해지고 치밀해지는 가상화폐 투자 유혹, 절대 대다수는 먹튀·다단계"
전문가들은 그동안 존재했던 가상화폐 투자는 대부분 결말이 좋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아도페이 사태, KOK코인 사태, 시더스코인 사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사건 모두 높은 수익률로 현혹해 투자금 끌어 모았지만 종국엔 코인과 투자금이 전부 증발하는 식으로 마무리됐다. 일례로 2023년 전국에 걸쳐 4000억원대 피해를 발생시킨 아도페이 사건의 시작은 노인들을 상대로 오프라인 가맹점 결제 코인에 대한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당시 코인 영업사원들은 "편의점에서 아도 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고 홍보했지만 결국 코인은 휴지조각이 됐다. 지난해 아도페이 판매사 대표는 사기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2021년 등장한 KOK코인 또한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을 표방하며 공격적으로 투자자를 모았다. 그러나 판매 구조가 사실상 '다단계'나 다름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해외에서 판매 제재를 받았다. 국내에서도 집단 피해 신고가 줄을 이었는데 피해자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시더스코인 사건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투자금을 유치한 뒤 사라진 이른바 '먹튀 사기'였다. 당시 추정 피해액은 최소 1조2000억원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파격적인 수익률이나 주변에서 돈 번 사례 등은 결국 사기의 도구일 뿐이고 특히 코인은 현물 가치가 전혀 없기 때문에 섣부른 투자는 패가망신의 지금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금융피해자연대 고문으로 활동 중인 이민석 변호사는 "다단계부터 코인까지 금융 사기는 점점 복잡하게 진화하고 있다"며 "일단 원금 보장과 함께 은행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보장하면 사기일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나라는 사기죄 형벌이 낮아 비슷한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피해자연대 관계자는 "말이 좋아 가상화폐지 사실상 다단계(폰지) 사기와 다름없고 용어가 어렵지만 그 본질은 사기 행위다"며 "정부는 이런 유사수신 행위에 대한 감시를 높이고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유사수신행위가 발생할 경우 실질적인 피해구제가 어렵고 특히 고수익을 미끼로 노인들을 현혹하는 유사수신행위는 갈수록 고도화 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금융감독원에서 유사수신행위 제보를 받고 있으니 의심이 되는 투자 제안이 있다면 상담을 먼저 받길 추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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