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여수는 대산·울산 산단에 비해 통합에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국내 석화 사업 재편 성패가 여수에 달려 있는 상황에서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재편안 내놓으면 맞춤형 지원
정부는 20일 석유화학산업과 관련한 구조개편 3대 방향과 정부지원 3대 원칙을 확정했다. 구조개편 3대 방향은 △과잉설비 감축 및 고부가 제품 전환 △재무 건전성 확보 △지역경제·고용영향 최소화다. 정부지원 3대 원칙은 △3대 석화 산업단지 대상 구조개편 동시 추진 △충분한 자구노력 및 타당성 있는 사업재편 계획 마련 △정부의 종합지원 패키지 마련 등이다.
구체적으로 나프타분해시설(NCC) 기준 감축 목표는 270만~370만톤(t)으로 확정했다. 현재 연 1470만t 규모인 국내 10개사 NCC의 17~25%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번 목표치는 한국석유화학협회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의뢰해 진행한 컨설팅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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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사업재편안 핵심은 바로 ‘자율’이다. 업계가 먼저 자구노력을 보여주면 정부가 업체의 동참 정도를 고려해 맞춤형 지원책을 추진하겠다는 게 골자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자구노력 없이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려 하거나 다른 기업의 설비 감축 혜택을 누리려는 무임승차 기업에는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했다.
◇연말까지 치킨게임 지속
업계에서는 그나마 이번 재편안에 NCC 설비 감축 목표가 제시된 것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를 토대로 기업들이 연말까지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사업재편 윤곽을 그릴 수 있어서다.
다만 민간 자율 사업재편이 과연 얼마나 효율적일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제기된다. 특히 국내 최대 석화산단인 여수에서는 통·폐합 논의가 좀체 진전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산에서는 롯데-HD현대, 울산에서는 SK-대한유화 간 통합 논의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해당 사안에 밝은 관계자는 “정부는 정유사 중심으로 합치고 싶어하지만 다른 기업들의 반대로 진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결국 정유사들이 NCC를 인수할 만한 유인책을 정부가 줘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여수에는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DL케미칼, GS칼텍스 등 국내 내로라하는 석유화학 및 정유기업들이 밀집해 있다. 여수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연간 627만t으로 대산(478만t)과 울산(176만t)을 훌쩍 웃돈다. 여수 구조조정이 성공해야 국내 석화산업 재편이 성공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서로 문을 닫고 싶겠지만, 그렇다고 헐값에 팔아넘기긴 싫을 것”이라며 “먼저 가동을 중단하면 매각 협상에서 불리하니 손해를 보면서까지 억지로 공장을 돌리는 치킨게임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LG화학은 2023년부터 여수 NCC 2공장을 국내외 업체들에 매각하려 했으나, 가격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쿠웨이트석유공사(KPC)에 매각을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불발됐다.
◇‘내년 가동’ 샤힌 프로젝트 촉각
이런 상황에서 NCC 감축 대상에 에쓰오일이 포함된 것은 다행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다만 에쓰오일이 내년 가동 예정 중인 석유화학 설비(샤힌 프로젝트)는 효율성이 뛰어나 가동에 들어가면 기존 업체들이 완전히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정부는 이번 사업재편을 시작으로 핵심 소재산업인 국내 화학산업 육성정책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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