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한국전력(한전)이 올해 초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체결한 '지재권 분쟁 합의' 이후 북미·유럽·우크라이나 등 주요 원전 시장 진출이 사실상 막힌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한국은 중동,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 특정 지역에만 수출 가능 국가가 제한되는 등 글로벌 원전 수출 전략에 긴급한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20일 원전 업계 공시에 따르면 한수원과 한전, 웨스팅하우스는 올해 1월 '글로벌 합의문'을 체결하면서 해당 문서에 수주 가능 국가 및 제외 국가 목록을 명시했다. 한수원·한전이 원전 수주 활동이 가능한 지역으로는 △동남아시아(필리핀·베트남)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중남미(브라질·아르헨티나) △북아프리카(모로코·이집트) △남아프리카 △요르단, 터키,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북미(미국·캐나다·멕시코), 유럽연합(EU) 회원국(체코 제외), 영국, 일본, 우크라이나 등은 웨스팅하우스만 진출할 수 있는 지역으로 한정됐다. 체코는 한국이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예외로 인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1월 한수원과 한전은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 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며 글로벌 협력 체계를 회복하기로 했다. 이는 원전 수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협력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다만 협상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에 조단위 로열티 지급, 수주 권한 양보 등 상당한 양보가 뒤따랐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 바 있다.
이번 합의로 한국 원전 업계는 전통적으로 강세였던 북미·유럽·체코 외지역 시장 진출 길을 사실상 잃었다. 그에 따라 시장 다변화가 아닌 지역 제한 수출 구조에 직면하게 됐다. 특히 해당 합의에는 원전 1기당 4억 달러 규모의 신용장 발급이라는 재무적 부담 조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중소형 또는 재무 기반이 약한 수출 기업에게 큰 부담이 될 우려가 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회의에서 폴란드 원전 사업 철수 계획을 공식 확인했다. 황 사장은 "폴란드 새 정부가 국영기업 사업 자체를 추진하지 않기로 해 기존에 운영하던 투 트랙 전략이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한수원은 현지 사무소를 철수했으며, 이는 체코를 제외한 유럽 시장에서의 전략적 거점을 상실한 셈이다.
유럽 시장에서는 지난해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것을 기회로 네덜란드 등지로 진출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재권 합의 이후 스웨덴, 슬로베니아, 네덜란드에서도 연속 철수 및 사업 중단이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향후 한수원과 한전은 중동, 동남아, 중남미 중심의 신흥 시장 공략으로 전략을 선회할 전망이다. 특히 한전은 사우디아라비아 및 베트남과의 원전 수출 사업을 적극 추진 중이며, 한수원 역시 유럽 대신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 등 차세대 원전 기술 중심으로 새로운 진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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