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미국 정부가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철강·알루미늄 관련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를 전격 확대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주요 수출국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대미 수출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중장비·자동차 부품·전기전자 분야까지 관세 적용이 확대되며 국내 제조업계 전반에 걸쳐 구조적 충격이 예상된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19일(현지시간)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기존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적용되던 50% 고율 관세 대상에 새롭게 407개 파생상품을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철강·알루미늄 함량에 비례한 관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새로 포함된 제품에는 풍력 터빈 부품, 불도저, 모바일 크레인, 철도차량, 펌프, 압축기, 냉장·냉동고, 가구, 전선·케이블 등 다양한 산업군이 포함됐다.
제프리 케슬러 상무부 차관은 "이번 조치는 미국 철강 및 알루미늄 산업의 회복세를 강화하고, 기존 관세 회피 경로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의 국가안보와 제조업 기반을 동시에 지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한국무역협회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번에 추가된 407개 품목 중 한국의 대미 수출 비중이 큰 품목이 다수 포함돼 있다. 무협은 "관세 적용 대상에 포함된 품목의 한국 수출액은 지난해 기준 약 118억 9천만 달러(한화 약 16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냉장·냉동고, 변압기, 트랙터 부품, 자동차 엔진 부품, 엘리베이터 등 기존에는 관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품목들까지 대거 포함됐으며, 일부 화장품 용기 등 비전통적 금속제품도 알루미늄 함량 비율에 따라 관세 대상이 될 수 있어 업계 전반의 주의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한 자동차 부품 업체 관계자는 "알루미늄이 부품 일부에만 들어간다고 해도, 전체 제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는 만큼 수출 채산성이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며 "일부 OEM 고객이 납기 변경이나 오더 자체를 줄이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전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이 자국 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의 수입 품목에 대해 대통령 직권으로 관세 또는 수입 제한 조치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이던 2018년, 철강(25%)·알루미늄(10%) 기본 관세 도입의 근거가 된 법적 장치이기도 하다.
이번 관세 확대는 그보다 더 높은 50% 관세율을 파생제품에 적용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중 조치' 성격을 지닌다. 미국 상무부는 "일부 국가가 부품 단위에서 관세를 피하면서 미국 제조업 기반을 침식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중국 등 특정국 수입품을 겨냥한 보호무역 조치로 시작됐지만, 한국과 유럽 등 주요 동맹국까지 영향을 받는 전방위적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 정부도 즉각 대응에 착수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조치로 수출 중소기업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제품 내 철강·알루미늄 함량 비율에 대한 증명 서류 지원, 원산지 인증서 발급 확대, 무역구제 컨설팅 지원 등을 포함한 패키지 대응책을 조속히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산업부는 미국 상무부와의 외교 채널을 통해 해당 조치가 한미 통상 관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협의할 방침이다.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제외 요청 절차를 활용해 수출 피해 최소화도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경제연구원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번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업계가 중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할 전략으로 △제품 내 금속 함량 비율 개선 △북미 외 FTA 시장으로의 수출 다변화 △현지 생산법인 활용 확대 △정밀 수출 전략 컨설팅 등을 제시했다.
특히 미국과 FTA를 체결한 멕시코·캐나다 등 USMCA 권역 내 현지 조립·생산 방식으로 관세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식이 유효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한 한국 내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는 친환경 차량 부품, 반도체 관련 금속 모듈, 차세대 배터리 케이스 등은 향후 협상에서 예외 품목으로 분류될 가능성도 있어 전략 품목 중심의 대미 수출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미국의 관세 확대 조치는 단순한 수출 제약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수출 채널 전환을 본격화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단기간 내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대응은 필수지만 산업계 차원의 중장기 대응 전략 역시 병행돼야 한다.
향후 미국 내 물가 상승, 세계 경기 둔화, 에너지 비용 불안 등 변수까지 고려할 때 보호무역은 미국의 통상 정책에서 기본 옵션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한국 역시 '저관세-고품질' 전략에서 '고부가가치-고인증' 중심의 새로운 수출 프레임을 구축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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