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올해 미국의 관세 수입이 사상 최초로 3000억 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제기되며 조세외 수입이 미국 재정 운용의 주요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8월 19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관세 수입 전망치를 대폭 상향하며 이를 연방정부 부채 상환과 국민 대상 보전 정책의 재원으로 활용할 뜻을 내비쳤다.
베센트 장관은 "나는 관세 수입이 올해 300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해왔지만 지금은 그 수치를 훨씬 상향 조정해야 할 상황"이라며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낮추기 위해 우선 국채 상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정 부분은 국민들에게 (소득) 보전 수단으로 환원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 연방정부가 관세수입을 단순한 보호무역 수단이 아닌 실질적 재정 전략의 일환으로 전환하려는 신호로 해석된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2025 회계연도 상반기 기준 누적 관세 수입은 약 1,48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2% 증가한 수치로 중국·인도·유럽 등 주요 무역 상대국과의 고율 관세 정책이 수입 증가의 핵심 배경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공정무역 회복'이라는 명분 아래 전략 물자, 에너지, 기술 제품을 중심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해 왔다. 베센트 장관의 발언은 이 관세 수입이 단기 무역 전략이 아닌 중장기 재정 운용의 한 축으로 제도화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셈이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현재 미국의 연방 정부 부채는 35조 달러에 육박, 이자 상환만 연간 1조 달러에 달한다"며 "관세 수입이 국채 상환에 직접 투입된다면 국가 신용등급 방어에도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베센트 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인도의 대(對)러시아 원유 수입 확대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중국의 석유 수입 중 러시아산 비중은 13%에서 현재 16%로 소폭 증가했지만 인도는 같은 기간 1% 미만에서 현재는 42%까지 치솟았다"고 밝혔다.
이어 "인도는 전쟁을 틈타 러시아로부터 값싼 석유를 수입한 뒤 정제해 제3국에 되파는 차익거래를 하고 있다"며 "이 같은 '전시형 차익거래'는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는 단순한 에너지 안보 차원을 넘어서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며 향후 인도산 제품에 대한 통상 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무역 갈등을 넘는 외교적 메시지로 해석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에너지정책센터는 "미국은 인도와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러시아와의 에너지 거래가 그 선을 넘는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향후 인도산 석유제품 및 기타 수출품에 대한 보복 관세 논의가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베센트 장관은 연방준비제도(Fed) 차기 의장 선출 관련 계획도 공개했다. 그는 "11명의 유력 후보를 노동절 직전 또는 직후 만날 예정이며 대통령에게 최종 명단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후보군에는 미셸 보먼 연준 부의장,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 필립 제퍼슨 부의장 등 현직 인사 외에도 케빈 해싯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릭 라이더 블랙록 CIO 등 민간 전문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베센트 장관은 특히 고금리가 가져오는 '분배적 충격'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높은 신용카드 부채를 안고 있는 저소득 가계, 그리고 주택 대출을 원하는 청년층에게 지금의 금리는 실질적 장벽"이라며 "금리 인하는 주택 공급 확대, 건설 경기 회복, 가계의 자산 축적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본지출은 양호하지만 주택 건설과 소비는 부진하다"며 "금리 인하는 물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주택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는 유효 수단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센트 장관의 발언은 2025년 미국 재정 운용의 키워드가 '관세수입의 전략적 전환'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국채 상환과 국민 환원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언급한 점은 단순한 세입 확대가 아닌 정치·경제·외교를 아우르는 다층적 전환 전략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관세 정책의 지속 가능성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상존한다. 수입 물가 상승, 무역 파트너의 보복, 세계 공급망 재편 등에 따른 반작용은 중장기적으로 소비자 가격, 생산자 마진, 글로벌 협력 구조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관세수입에 의존한 재정 운용이 일시적 부양 효과를 낳더라도 향후 세입 구조 다변화, 소비 진작, 산업 경쟁력 강화와 같은 구조 개혁과 병행되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당국의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