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귀를 닫기로 한 사람들…'듣지 않는 자들의 공화국'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폭력에 귀를 닫기로 한 사람들…'듣지 않는 자들의 공화국'

연합뉴스 2025-08-20 08:08:37 신고

3줄요약

우크라이나 출신 미국 시인 일리야 카민스키 서사시

'듣지 않는 자들의 공화국' 표지 이미지 '듣지 않는 자들의 공화국' 표지 이미지

앞면(왼쪽)과 뒷면. [가망서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평화롭던 마을 바센카에 침략한 군대는 모든 집회를 금지한다. 중앙 광장에서 열린 소냐와 알폰소 부부의 인형극에 사람들이 모여들자 군인들은 해산하라고 명령한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소년 페탸는 군인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인형을 보며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곧이어 총성이 울리고, 페탸는 땅에 쓰러진다. 그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페탸처럼 군인들이 내는 어떤 소리도 듣지 않기로 한다.

22일 출간되는 우크라이나 출신 미국 시인 일리야 카민스키(48)의 서사시 '듣지 않는 자들의 공화국'(가망서사)은 가상의 마을 바센카를 배경으로 군인들에게 맞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소년의 죽음은 마을이 한마음으로 뭉쳐 침략군에 맞서는 계기가 된다. 가장 강하게 저항하는 것은 페탸의 사촌 누나인 소냐와 그 남편인 알폰소 부부다.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에게 수어를 가르치며 군인들의 눈을 피해 말없이 소통할 방법을 전파한다.

하지만 총칼로 무장한 군대 앞에서 마을 사람들은 약자에 불과하다. 소냐와 알폰소는 군인들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두 사람의 아들인 갓난아기 아누슈카는 고아가 되어 마을의 인형극장 주인 갈랴에게 맡겨진다.

'듣지 않는 자들의 공화국'은 설명을 최대한 배제하고 함축적인 시어로 끔찍한 사건을 표현해 슬픈 정서를 강조했다. 마을 사람들이 사용한 수어의 손 모양을 삽화로 실어 현장감을 더했다.

전쟁을 소재로 서사시를 쓴 것은 카민스키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

시인은 옛 소비에트연방(소련) 영토였으며 현재 우크라이나 땅인 오데사에서 태어났다. 소련이 해체된 직후인 1993년 반유대주의를 피해 가족과 함께 미국 정부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망명했다.

그는 유년 시절 소련이 무너지는 과정 내내 크고 작은 전쟁과 분쟁을 겪었고, 미국으로 망명하는 과정에서 극도의 혼란과 공포가 몸 깊숙이 각인됐다고 한다.

이 서사시에 등장하는 바센카는 가상의 마을이고 이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일이지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무력 분쟁을 연상시킨다.

'듣지 않는 것'이 폭력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등장하는 것 역시 시인의 경험과 닿아 있다. 시인은 네 살 때 유행성이하선염에 걸려 청력을 잃었다. 그는 "소리가 사라진 후 목소리를 보게 되었다"며 청력 상실로 오히려 언어의 다른 측면을 느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2019년 미국에서 출간된 '듣지 않는 자들의 공화국'은 그해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LA타임스' 북어워드, 애니스필드-울프 북어워드를 수상했다. 카민스키는 그해 영국 BBC가 선정한 '세계를 바꾼 12명의 예술가'에 이름을 올렸다.

박종주 옮김. 96쪽.

jaeh@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