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한채연 기자】 한국에서는 언제든 배달 앱만 켜면 30분 안에 주문한 음식이 배달된다. 외국인 여행 프로그램에서는 이를 놀라운 한국의 배달 문화라며 소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편리함의 이면에는 배달 노동자의 죽음이 있다. 빨라진 배달 속도만큼 도로에서 숨진 노동자의 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
19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사망한 배달 노동자는 16명에 달한다. 이는 배달 노동자가 도로에서 2주에 1명 꼴로 사망한 셈이다. 실제 배달의민족은 올해까지 4년 연속 산업재해 건수 1위를 기록했고 쿠팡이츠는 2위로 뒤를 이었다.
지난 5일 고(故) 김용진씨는 폭염에도 쿠팡이츠의 리워드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배달을 하다가 경기 군포시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마을버스에 치여 사망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반포역에서도 배달의민족 소속 노동자가 버스에 치여 숨졌다.
노동계는 이런 잇따른 배달 노동자의 죽음이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닌 배달 플랫폼 기업의 착취적 구조가 불러온 비극이라고 주장한다. 배달 단가가 낮아져 생계유지를 위해서는 배달 성과에 따라 수수료에 차등을 두는 ‘미션제’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더 빠르게 많이 일해야 하는 구조가 과속·과로로 이어져 사고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에 라이더유니온은 배달 노동자에 대한 안전 종합 대책을 촉구하며 지난 12일부터 대통령실 앞에 산재 사망 라이더들의 분향소를 설치해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지난 18일 찾은 분향소에는 배달 노동자들이 김용진씨를 비롯한 산재 사망 배달 노동자 16명의 영정사진 앞을 지키고 있었다. 영정사진 앞에는 라이더 동료들과 시민들이 놓고 간 국화가 놓여 있었다. 그들은 31도가 넘는 더위에도 천막 없이 “산재 문제를 직접 챙기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조문 오길 바란다”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라이더유니온 주승균 사무부장은 흐르는 땀을 닦으며 “동료들이 야간에도 2인 1조로 자리를 비우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향소에서 만난 라이더유니온 구교현 지부장은 배달 노동자의 죽음을 멈추기 위해서는 그들이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호 위반을 해야만 돈이 되는 구조를 벗어나려면 적정 수준의 기본운임을 보장하는 안전운임제가 필요하다”며 “배달 단가도 계속 낮아지는 추세인데 교통법규를 지키며 무리하게 주행하지 않고 일했을 때 얼마나 배달할 수 있는지 등을 측정해서 적정한 배달료가 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전운임제는 과속·과로를 막기 위해 최저 운임선을 법으로 보장하는 제도다. 이는 화물 운송 업계에 도입된 선례가 있어 전문가들도 그 효과와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온 바 있다. 그러나 배달 플랫폼 기업은 배달비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검토조차 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는 과도한 미션제가 사고의 주범이라고 평가했다. 구 지부장은 “배달 업계가 24시간 배달 가능한 시스템을 유지하며 사업을 불려나갈 수 있는 것은 전업 라이더들이 있기 때문이다”며 “무리한 미션을 내걸고 돈 벌 사람만 참여하라는 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고 꼬집었다.
이어 “산재 발생 시간대와 유형 등에 관한 보고가 올라가니 배달업계에서도 사고 원인이 과도한 미션에 있다는 것을 알텐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건 라이더들의 생명과 안전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달 노동자의 요구는 크게 세 가지다. △배달 업종의 ‘산재 감축 최우선 업종’ 지정 및 사망사고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안전운임제 도입 및 과도한 미션 자제 △라이더자격제와 대행사등록제 도입이다.
구 지부장은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하겠다고 밝혔다면 대한민국에서 산재가 가장 많이 발생하며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업종부터 살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정부에 빠른 대응을 촉구했다.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달 노동이 누군가의 몸을 움직여서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배달업체가 무료 배달 서비스를 운영하다보니 무료 노동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며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이 업계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라이더유니온은 배달 노동자 안전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분향소를 지키며 24시간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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