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오는 21일 당 복당을 완료하고 정치 일선에 공식 복귀한다. 지난해 말 피선거권 상실로 당적을 잃었던 그는 이재명 정부의 광복절 특별사면·복권으로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복귀의 첫 메시지와 행보가 벌써부터 정치권 안팎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 전 대표는 현충원에서 기자들에게 “제가 몇 번 사과한다고 2030이 마음을 열겠나”라는 발언을 했다. 동시에 출소 직후 SNS에 올린 ‘된장찌개 영상’은 실제로는 강남의 고급 한우집 식사로 드러나 ‘서민 코스프레’라는 비판을 받았다. 언어와 장면이 동시에 역풍을 맞으며, 그의 복귀는 ‘새로운 출발’보다는 ‘과거 논란의 연장선’으로 비춰지고 있다.
정치 일선 복귀의 제도적 관문
조 전 대표는 지난 18일 저녁 복당 원서를 제출했고, 19일 당원자격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21일 최고위원회 의결을 통해 복당이 확정된다. 혁신당은 오는 11월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할 예정인데, 김선민 당 대표 직무대행 등 현 지도부의 임기가 내년 7월까지임에도 불구하고 조 전 대표의 복귀를 위해 조기 퇴진을 선택했다.
이 절차는 단순한 ‘복당’의 의미를 넘어선다. 창당 주역이자 실질적 ‘대주주’인 조 전 대표가 다시 무대에 서면서, 당 권력의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나아가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정치적 역할이 남았다는 걸 보여주려면 선거를 피할 수 없다”며 6월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출마 의지를 내비쳤다. 복귀가 곧 당권 장악과 선거 도전으로 이어지는, 다층적 정치 행보의 시작점인 셈이다.
‘사과 거부’ 논란, 정치 문법의 충돌
정치는 언어로 작동한다. 조 전 대표의 복귀 일성은 ‘사과 거부’였다.
지난 15일 광복절 특사로 출소한 조 전 대표는 첫 공개 일정으로 18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이날, 과거 자녀 입시 비리 문제에 대한 일각의 사과 요구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제가 몇 번 사과한다고 2030이 마음을 열겠나”며 “절 싫어하는 분이 있다면 왜 싫어하는지 분석하고 할 일을 하면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 발언은 즉각 국민의힘의 정면 공격을 불러왔다.
정광재 국민의힘 대변인은 “반성과 사과를 모르는 전형적인 가해자의 논리”라고 비판하며 “차라리 정계 은퇴를 선언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정 대변인은 과거 조 전 대표가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 시절 ‘죽창가’를 올리며 반일 정서를 자극하고 일본에 사과를 요구했던 사례를 들며 “일본에 대한 사과 요구는 정치적 선동이었나”라는 반문도 제기했다.
즉, 정치 문법상 사과의 언어는 반성과 책임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지층과의 접점을 마련하는 정치적 행위다. 그러나 조 전 대표는 이 언어를 거부함으로써,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중도층과 청년층과의 간극을 더 벌릴 위험을 감수한 셈이다.
된장찌개 논란, 장면의 이중성
정치는 장면으로도 작동한다. 조 전 대표가 출소 첫날 자신의 SNS에 올린 된장찌개 사진도 정치적 논란을 일으켰다. 서민음식을 대표하는 된장찌개 사진은 ‘서민적 귀환’을 연출하려는 의도로 의심을 받았고, 곧 해당 식당이 강남의 고급 한우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위선’ 논란으로 번졌다.
정광재 국민의힘 대변인은 “사회 복귀를 알린 첫 SNS에는 서민음식인 된장찌개가 담겼으나, 정작 사진의 식당은 ‘투 뿔 한우’로 유명한 고급식당으로, 본인이 그동안 대중을 속여 왔던 가식과 위선을 그대로 보여줬다”면서 공정과 정의 뒤에 숨겨진 불공정과 불법을 동원해 본인과 주변의 잇속을 챙겼던 이중성을 보여줬다고 일갈했다.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도 “비싼 한우 먹고 된장찌개 사진을 올린 건 서민 코스프레냐. 엉터리 사면 받고서 독립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말한다”고 비판했다.
김근식 국민의힘 최고위원 후보도 “참 변하지 않는 조국”이라며 “고급 한우를 먹고도 서민적인 가족식사로 위장했다”고 꼬집었다.
혁신당은 서둘러 해명에 나섰다. 김선민 당 대표 권한대행은 “가족 식사였고, 조 전 대표가 워낙 고기를 좋아한다”며 “고깃집에서의 첫 식사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미 장면은 독립적으로 작동한다. SNS 한 장면이 정치인의 언어와 태도를 압축해 보여주는 순간, 해명은 부차적 의미에 머무른다.
PK 방문, ‘정통성 계승’의 상징
조 전 대표의 복귀 일정은 철저히 상징적이다. 24일 부산민주공원을 방문하고, 같은 날 양산 평산마을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한다. 이어 25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다.
이는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정치 문법상 정통성 계승의 의식이다. 부산민주공원은 조국혁신당 창당 선언의 장소로 ‘초심 복귀’를 상징한다. 평산마을·봉하마을은 문재인·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징성과 직접 연결되며, 민주개혁 진영 정통성의 계보를 강화한다.
즉, 조국의 귀환은 개인의 정치적 부활이 아니라, 민주개혁 진영 내에서의 정치적 위상을 재확인하려는 전략적 연출이다. 이는 민주당과의 합당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동시에 민주개혁 진영의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이중적 문법이다.
승부수냐 자충수냐
조 전 대표의 복귀는 ‘승부수냐 자충수냐’ 두 가지 상반된 전망을 낳는다.
승부수 시나리오 경우, 사면·복권을 계기로 당권 장악과 선거 출마에 성공하고, 문재인·노무현의 상징 자산을 활용해 지지층을 재결집한다면 그는 단숨에 정치 전면으로 복귀할 수 있다.
반면 자충수 시나리오라면, 사과 거부와 위선 논란은 중도층과 청년층의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 언어와 장면이 불일치하는 정치인은 신뢰를 얻기 어렵고, 이는 정치적 생존의 가장 큰 위협 요인이다.
정치의 문법은 결국 “누가 더 설득력 있는 언어와 장면을 선점하느냐”에 달려 있다. 조국의 귀환은 ‘정통성 계승을 통한 재도전’과 ‘사과 없는 복귀의 위선 논란’이라는 두 서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조 전 대표의 귀환은 단순한 개인의 정치 복귀가 아니다. 이는 민주개혁 진영 내 권력구조의 재편이자, 청년·중도층과의 관계 회복 여부를 시험하는 정치적 실험이다.
조국의 귀환이 새로운 서사의 시작이 될지, 과거 논란의 반복이 될지는 결국 향후 그의 언어와 장면, 즉 메시지와 행보가 어떤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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