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산업은 사실상 에너지·소재 산업이다. 에너지·소재의 공급이 불안해지면 반도체·자동차·조선·기계·섬유를 비롯한 후방 산업도 함께 몰락하고, 국민 생활도 불가능해진다. 중국이 우리에게 에너지·소재를 싼값에 안정적으로 공급해 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는 온전한 착각이다. 이는 요소수 사태를 통해 확인한 진실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범용 제품의 생산을 빠르게 줄이고, 고부가가치 스페셜티에 대한 신규 투자를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43만 명의 인력을 고용하는 2만7000여개 기업 모두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기적은 기대하기 어렵다. 고강도의 구조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좌고우면할 여유는 없다.
최소한의 내수 기반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석유화학 생산 설비를 과감하게 정리하고 값싼 중국산을 활용하자는 어설픈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는 더이상 설득력이 없다.
정부의 역할이 막중하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폭압적인 관치(官治)는 국민이 수용하지 않는다. 기업들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적극적인 교통정리 수준으로 만족해야 한다. 롯데와 HD현대의 대산 NCC 공장 설비통합이 이상적인 사례다.
공정거래법 담합 금지 조항도 풀어줘야 한다. 고강도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사업재편을 옥죌 뿐이다. 일본도 1980년대 석화산업 구조조정 당시 공정거래법 예외 규정을 뒀다. 현 시점에서 구조조정을 할 때 정부 역할은 규제 철폐가 핵심이다.
재난 상황임을 고려해서 기업들이 고통을 분담하는 묘책도 찾아줘야 한다.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필요한 행정·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상한 산업용 전기요금도 조정해야 한다. 사실상 ‘화학산업 퇴출법’으로 전락해버린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도 폐지 수준으로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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