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김소현 기자] 고교학점제가 시행 1학기 만에 위기를 맞은 가운데 학생과 학부모, 교원 등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보완책을 마련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사노동조합연맹·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18일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교원 3단체 연합 고교학점제 국회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김주영 교총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15일부터 22일까지 전국 4162명 교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교원 3단체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고교학점제가 고등학교 전반의 정책 이슈를 잠식해 버릴 정도로 학교 현장의 상황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김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고교학점제 계획 발표 당시 교원의 긍정 응답이 30%였으나, 2025년 전면 도입 이후 10%까지 감소했다. 또한 2개 과목 이상을 담당 중인 교원이 45.9%로 가장 많았으며, 4개 이상 과목을 맡고 있는 교원도 5% 존재했다.
각 과목에 대한 깊이 있는 수업 준비가 어려워지면서 수업의 질이 하락했다는 답변도 86.4%에 이르렀다. 김 선임연구원은 “교사를 늘리지 않고 1인이 담당하는 과목만 늘려서는 학생 선택권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라 학교 변화의 큰 핵심으로 여겨지는 최소성취수준 보장지도(이하 최성보)와 미이수제에서도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이수제를 향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교원 78.0%는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최성보 제도에 대해서도 80% 이상의 교원이 학생 성장에 긍정적 효과를 주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최성보와 미이수제도가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희정 교사노조 고교학점제TF팀장은 “미이수제와 최성보는 공교육 붕괴의 신호탄이라고 생각한다”며 “최성보는 교육이 아닌, 전시행정이며 서류로 이수 처리하는 가짜 교육이라고 교사들은 증언한다. 미이수를 막기 위해 거짓 서류를 작성하고 수행평가 점수를 퍼주거나 지필고사 난이도를 낮추는 등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교사들은 고교학점제로 인해 단순히 피로감을 호소하는 것을 넘어 교육력 손실로 인한 공교육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며 “현실에서 최성보는 미도달 학생의 낙인 장치가 됐다. 말뿐인 책임교육으로 인해 아이들은 큰 자괴감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김민건 전교조 정책2국장은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해선 교사 정원 확보가 필수라고 밝혔다. 그는 “고교학점제 도입 이후 업무를 위한 업무가 많이 늘었다. 과부하가 생길 정도”라며 “교원 3단체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별 평균 2.17과목을 담당하고 있는데, 저는 총 7과목을 가르친 적도 있다. 정부에서는 학생 수가 줄고 있기 때문에 교원 수를 줄여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다양한 교육 수요가 존재하므로 교원 수는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모든 학교 교육이 생기부 기록을 위한 교육 활동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고교학점제는 현재 고쳐 쓸 수 없는 상황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지정토론에서는 고교학점제로 인해 혼란을 겪은 학생들의 후기가 이어졌다.
곽동현 가야고 학생은 “고교학점제의 취지는 훌륭한데 학교에서는 취지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학생들은 원하는 과목은커녕 내신에 유리하다면 진로와 상관없는 과목을 선택하고 있다. 자연스레 등급 따기 쉬운 과목을 수강하게 되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오진 않는지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교학점제 도입 이후 쉬는 시간에 자는 친구를 깨우지 않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친구가 경쟁 상대이자 적이기 때문”이라며 “친구가 적이 아닌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근본 원인을 해결해 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학생 간 공동체 생활이 사라지면서 사회성 발달이 우려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안기백 개성고 학생은 “고교학점제로 이동수업이 생기면서 정말 친한 친구와도 떨어지고 혼자 반에 동떨어진 채로 수업을 듣고 있다”며 “생활 공동체도 약해지고 사회성 발달과 정체성 발전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1학년 때 진로를 선택해야 한다는 부담도 크다. 하루하루 꿈이 바뀌는데, 저처럼 꿈이나 진로가 매번 바뀌는 친구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대부분 학생이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는데, 10~11시가 되면 학원 숙제를 마저 하고 수행평가도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로를 고민할 시간이 없다”고 토로했다.
대학 입시와 고교 교육이 엇박자가 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송윤희 서울혁신교육학부모네트워크 공동대표는 “대학의 어느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필수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는 점은 정책 간 엇박자가 나는 것”이라며 “정부는 대학 서열화를 없애겠다고 하지만, 학생 수가 많을수록 대입에도 유리할 것이다. 대학 서열화는커녕 고교서열화를 앞당기는 고교학점제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정상명 교육부 2022개정교육과정지원팀 팀장은 “앞서 교육부에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개선 방안을 만들어 현장에 안내해 드리겠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한 바 있다. 현재 개선 방안을 만드는 과정 중에 있다”며 “학생, 학부모님들 기회가 되는 대로 만나 뵙고 의견 청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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