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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윤 기자] 임금이 10% 오르면 기업의 자동화 도입 비율도 최대 2.8%포인트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 상승이 자동화 도입을 직접적으로 자극한다는 연구 결과다. 또한 자동화 이후에는 기업이 고용을 줄인 것으로도 조사됐다. 임금 정책이나 노동제도 변화가 기업의 기술 도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로, 연구진은 AI 시대 해당 연구 결과를 유의미하게 반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지윤 명지대 교수와 라이언 마이클스 미국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이코노미스트는 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학자대회에서 1982~1995년 사이 한국 제조업 공장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이 기간 직원 10명 이상의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한 한국 제조업 연간조사(KASM)를 활용해 분석에 나섰다.
분석 결과 임금이 10% 상승하자 자동화 도입 비율도 최대 2.8% 올랐으며, 기계 설비에 투자한 공장 중 38%는 동시에 고용을 줄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저임금제 도입(1988년)과 주 44시간 근무제(1989년) 등을 거치며 기업이 지불할 노동 비용이 급증하면서 자동화 비율 역시 크게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이 급격히 오른 1987~1992년 사이 기계 투자와 고용 감축이 동시에 발생한 기업의 비중은 전체의 43.8%까지 치솟았다.
이 중 생산직 근로자(-21.2%)의 감소율이 비생산직(-11.9%)보다 컸다. 생산직 중에서도 여성 노동자가 자동화 도입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내내 제조업 고용에서 여성 집단의 비중이 뚜렷하게 줄어들면서, 자동화가 고용 구조 변화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연구진은 도구변수 분석을 통해 임금과 자동화가 단순한 상관관계가 아니라, 임금 상승이 자동화를 촉발하는 인과관계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즉, 자동화가 평균임금을 끌어올린 것이 아니라 임금이 인상한 결과에 따라 자동화가 뒤따랐다는 설명이다. 오 교수는 “단순한 상관관계가 아니라 임금 인상이 곧바로 자동화 투자의 확률을 끌어올리는 요인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오늘날 인공지능(AI)·로봇 확산을 고려할 때 이번 연구 결과가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봤다. 오 교수는 “임금정책과 노동제도 변화가 기술 확산과 고용구조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줄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동화와 AI가 생산성 향상과 효율성을 약속하는 동시에 임금 붕괴, 노동 몫 축소, 소비 불평등 등 심각한 부작용도 초래할 수 있다”며 “정책 당국은 자동화 속도를 조절하고, AI 활용 방향을 설계하며, 분배 문제에 대응할 준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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