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반도체와 배터리에 이어 '포스트 반도체' 시대의 핵심 동력으로 부상한 '로봇 산업'을 둘러싸고 재계 서열 1, 2위 기업 간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1조원을 쏟아부어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삼성전자가 35% 지분을 확보한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앞세워 '로봇 패권'을 두고 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로봇 시장이 2034년까지 연평균 26.8% 성장해 2111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중국의 공격적인 투자 공세와 미국·일본의 기술 우위에 맞서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느냐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
정부 역시 'K-휴머노이드 연합'을 출범시키고 2030년까지 1조원 이상의 R&D 투자를 약속했지만, 전문가들은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한 근본적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뉴스락>뉴스락>은 정의선·이재용 체제가 이끄는 로봇 양강 구도와 한국 로봇 산업의 미래 전망을 조명한다.
현대차-삼성, ‘포스트 반도체’ 로봇 분야 같은 듯 다른 전략
재계 양대 산맥이 로봇 분야에서 운명을 건 '빅 베팅'에 나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각각 1조원과 3500억원을 투입하며 미래 먹거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두 총수의 전략은 극명하게 갈린다. 정의선 회장은 '빅 딜'로 글로벌 선도 기술을 한 번에 손에 넣는 방식을 택했다.
현대차는 2021년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를 9963억원에 인수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기술을 확보했다. 당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는 11억달러(1조 5280억원)로 평가됐다.
반면 이재용 회장은 국내 유망 기업을 단계적으로 키우는 '육성형' 전략에 무게를 뒀다.
삼성전자는 2023년 레인보우로보틱스에 868억원을 투자해 14.7% 지분을 취득한 데 이어, 작년 말 콜옵션을 행사해 2674억원을 추가 투입했다. 이로써 삼성은 총 35% 지분을 확보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양 기업의 공격적 투자 배경에는 로봇 시장의 폭발적 성장 전망이 있다.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로봇 시장 규모는 올해 478억달러에서 2034년 2111억달러로 연평균 16.6%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 기업의 로봇 투자 확대는 한국 제조업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10곳 중 8곳(82.3%)이 주력 제품의 시장이 경쟁 포화 상태인 '레드오션'에 접어들었다.
업종별로 보면 ▲전자(80.4%) ▲자동차·부품(81.2%) ▲기계(82.9%) 등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주력 산업들이 모두 성숙기 또는 쇠퇴기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더 심각한 것은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이 42.4%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양 기업은 최근 조직 개편을 통해 로봇 사업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대표이사 직속 '미래로봇추진단'을 신설했다. 초대 미래로봇추진단장에는 레인보우로보틱스 창업자인 오준호 카이스트 명예교수가 취임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후 제조·물류·건설 분야 로봇 기술 접목을 본격화했으며, 지난해 11월 산업용 웨어러블 로봇 '엑스블 숄더'를 공개하며 실용화 성과를 선보였다.
업계에서는 두 기업의 상반된 접근법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관계자는 <뉴스락> 과의 통화에서 "현대차의 '검증된 글로벌 기술 즉시 확보' 전략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며 "추가 기술개발에는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뉴스락>
그는 "보스턴다이내믹스 브랜드가 주는 이미지와 가치를 뛰어넘기 어려운 것이 객관적 사실"이라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레인보우로보틱스도 현장 자동화가 가능한 로봇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스턴다이내믹스 vs 레인보우로보틱스, 韓 로봇업계 양강 체제 본격화
현대차그룹과 삼성전자가 로봇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한국 로봇산업의 새로운 판도를 예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미국 로봇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 이후 로봇 기술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대표작인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은 이미 전 세계 3,000여 산업 현장에서 활용되며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다.
라이다·카메라·IMU 등 다중 센서 융합 기술로 위험 구역 자율순찰과 산업설비 점검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물류 자동화 로봇 '스트레치(Stretch)'도 팔레트 적재 작업에 특화된 비전 기술로 물류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
특히 올해 3월 공개된 신형 아틀라스는 기존 유압 방식에서 전자모터 기반 제어 시스템으로 전환하며 소음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 수준을 넘어서는 관절 가동범위를 구현했다.
현대차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완성도를 높여 2028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르면 올해 말 자사 생산공장에 시범 투입해 실증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김혜인 현대차 인사본부장은 “HR의 세계적 흐름을 선도하겠다”고 강조하며 인재경영 분야에서 로봇 기술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삼성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를 통해 로봇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자체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RB-Y1'은 7자유도 듀얼암 제어 기술과 고정밀 관절 구동부를 갖춘 이동형 양팔 로봇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월 국제 로봇 자동화 학술대회(ICRA 2025)에서 공개된 RB-Y1의 업그레이드 기술은 눈에 띈다.
메카넘 휠 시스템으로 360도 전방향 이동이 가능하고, VR 헤드셋을 포함한 다양한 원격 조작 인터페이스를 지원한다.
또한 다양한 모듈과 호환되는 통합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로 연구개발 애플리케이션 맞춤형 활용이 가능하다.
이미 삼성과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시너지는 일부 결실을 맺고 있다. 양사가 협력한 군사용·치안용 특수 로봇 분야에서 앞선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정부 주도 산불 진화용 4족 보행 로봇 개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며 기술력을 높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의 풍부한 자본력과 R&D 지원을 바탕으로 레인보우로보틱스의 4족 보행 및 휴머노이드 기술 경쟁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레인보우로보틱스 관계자는 <뉴스락> 과의 통화에서 "RB-Y1은 미국 시장에서 수십 대가 판매 및 도입 완료됐으며, 실제로 아마존, EKA 로보틱스, 마이크로소프트, 어슈어드 로봇 인텔리전스 등의 기업에서도 해당 제품을 활용 중" 뉴스락>이라고 밝혔다.
다만 양사 모두 수익성 개선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24년 매출 1161억원을 기록했지만 당기순손실은 4,405억원에 달했다.
올해 1분기에도 1,197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분기마다 약 1,000억원 수준의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도 2024년 매출 193억원에 2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전년도에는 매출 152억원 대비 영업손실 445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양사 모두 로봇 분야에서 단기 수익보다는 미래 잠재력에 투자하는 전략"이라며 "2030년대 본격 성장할 휴머노이드 시장을 미리 준비하는 장기전"이라고 평가했다.
휴머노이드 상용화 원년? 업계 "10년 더 걸릴 것... 중국과 격차 심각"
올해를 휴머노이드 로봇 상용화 원년으로 선언한 정부와 기업들의 장밋빛 전망과 달리, 업계에서는 "중국과의 기술·가격 격차가 심각해 실질적 상용화까지 최소 10년은 더 걸릴 것"이라는 냉혹한 현실 진단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와 삼성 등 국내 대기업들이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양사 간 '경쟁적 협력'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올해 2월 삼성SDI와 현대차·기아가 체결한 '로봇 전용 배터리 공동 개발 협약'이 대표적 사례다.
현재 로봇 시장에서는 전용 배터리 부재로 전동공구나 경량 전기이동수단용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어 에너지 효율성과 작동 시간의 한계가 뚜렷한 상황이다.
삼성SDI는 고용량 소재 개발과 설계 최적화를, 현대차는 배터리 성능 평가와 현장 적용 테스트를 분담하며 시너지 창출에 나섰다.
이러한 협력 모델은 글로벌 경쟁 대응을 위한 K-로봇 연합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정부도 지난 4월 'K-휴머노이드 연합' 출범을 통해 2030년까지 1조원 이상의 R&D 투자를 약속하며 휴머노이드 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했다.
40개 기관이 참여한 이번 연합체는 로봇 공용 AI 모델 개발, 핵심 하드웨어 기술 개발, AI 반도체·배터리 개발 등 5개 주요 과제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업계의 현실 인식은 정부의 전망과 상당한 온도차를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중국은 가격 경쟁력과 기술 경쟁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수준에 이르렀고, 휴머노이드 로봇을 구동하는 감속기, 로봇 핸드, 센서 등 부품의 단가도 우리나라에 비해 1.5~3배 이상 저렴해 영업 측면에서도 견제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중국은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전략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70% 점유율을 목표로 시장 장악에 나서고 있다.
올해 8월 중국 '세계로봇대회 2025'에서는 50여 개 회사가 휴머노이드를 공개해 작년 27개 모델 대비 대폭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
인스파이어나 유니트리 등 중국 기업 제품들은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에도 높은 성능을 갖춰 이미 국내에 대량 수입되고 있다.
2025년 상용화 원년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업계는 회의적이다.
현재 휴머노이드 로봇 부품들은 이미 상용화되어 연구개발 단계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여전히 대기업과 연구기관에서 대부분의 수요를 차지하고 있어 일반 상용화와는 거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2025년이 휴머노이드 로봇 상용화의 원년으로 보는 의견도 일리는 있으나 아직 이상적"이라며 "검증된 규정이나 법적 정책이 없어 사람을 대신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실제 사용하기까지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로봇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을 지낸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정부가 휴머노이드 로봇을 국가첨단전략기술로 격상하는 등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국가 차원의 산업 진흥 정책과 기업의 기술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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