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고기는 진리’라고 할 정도로 우리 식생활에서 축산물은 크게 자리하고 있다. 삼겹살과 치킨은 대중적인 외식 메뉴로 굳건한 자리를 점하고 있으며 치즈, 요구르트 등은 MZ세대에게도 인기가 높다.
으레 소비가 늘어나면 해당 분야의 산업이 발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축산물 소비가 늘어나는 와중에도 국내 축산업의 생산 기반은 반대 방향으로 역주행하고 있다. 늘어난 소비의 상당 부분을 수입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우리나라 최초의 FTA인 한-칠레 FTA 체결 이후 20년이 흘렀다. 20여 년이 흐른 오늘날, 축산업은 축종을 불문하고 본격적인 무관세의 파도에 휩쓸리고 있다. 이전까지도 파괴적이었던 FTA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더욱 거세질 것이란 의미다.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 과거 시대를 주름잡던 유행어 중 하나다. 하지만 축산관계자 중 누구도 이 유행어에 시원하게 웃지 못했다. 축산업에서는 실존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웃을 수 없는 질문 앞에 이제는 정부, 나아가 우리 사회의 응답이 절실하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2025년 올해는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가 잇따르는 상황이다. 경북 등을 중심으로 대형 산불이 덮쳤고 집중호우로 인해 지역 곳곳에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 여름 폭염도 심상치 않다.
이처럼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가 반복되자 ‘기후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오르내리고 있다. 자연재해로 농축산물 생산에 차질이 일어나며 밥상 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전체 농축산물 물가는 대체로 안정세를 지속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6일 발표한 통계청 7월 소비자물가지수 조사 결과 농축산물은 지난해 동월대비 1.4% 상승에 그쳤다. 이는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대비 2.1% 상승한 데 비하면 변동폭이 낮은 수치다.
축산물의 경우, 한우는 최근 2~3년 사이 공급과잉으로 인해 평년보다 가격이 낮은 상황이다. 돼지고기 역시 폭염과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으로 가격이 소폭 상승했지만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삼겹살과 목살은 지난해보다 재고량이 많아 수급이 안정적이라는 게 농식품부의 진단이다. 닭고기 및 계란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이지만 이 역시 9월부터는 빠르게 안정되리라 전망하고 있다.
농축산물은 수급 상황에 따라 물가 변동이 심할 수밖에 없는 품목이다. 정부가 당장의 물가변동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장기적 안목에서 생산을 안정화해 수급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이 요구되고 있지만 수입을 늘리는 할당관세 적용이나 가격을 교란하는 잦은 할인행사 등의 땜질식 처방만 반복되는 모습이다.
축산물 거래가 공개 놓고 시끌…“농가 끌려다닐 수 있어”
정부 또한 장기적 대책에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농식품부는 지난 2022년 12월 축산물 유통 및 가축거래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축산물유통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축산물유통법 제정은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는 축산물 유통체계 확립 필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축산물 유통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으로 추진되고 있다.
현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축산물유통법의 주요 내용을 보면 축산물 유통 구조 개선 및 축산물의 거래가격 보고·공고 등 다양한 신규 정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축산물품질평가원(이하 축평원)을 한국축산유통진흥원으로 개편해 품질평가를 넘어 축산물 유통 관련 공공기관으로 업무 범위를 더 넓히려 하고 있다.
하지만 축산물유통법 제정안은 제15조의 축산물 거래가격의 보고 및 공개 조항을 놓고 축산농가와 축산물 육가공업체 모두 반발하고 있다. 쟁점 내용은 전체 거래물량 중 경매로 거래되는 물량의 비중이 적어 경매가격이 해당 축산물 시장의 상황을 대표하기 어렵다고 농식품부 장관이 인정하면 농식품부에 축산물 거래가격을 보고해야 하며 농식품부는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건전한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그 가격을 공개할 수 있다고 명시한 대목이다.
이 경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축산물이 돼지고기다. 돼지고기의 경매비율(제주 제외)은 2000년 26.5%였으나 20년 뒤인 2020년에는 4.8%로 감소했다. 현재는 전체 거래물량의 2~3% 내외만 경매시장에 나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농식품부는 이처럼 경매가격을 대표가격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품목에 대해서는 직매출하 시 가격을 의무적으로 보고 및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거래가격 공개를 통해 시장참여자 간 공정한 정산체계가 구축되고 대형 계열화사업자들의 담합 등 시장지배력 행사를 방지해 가격 안정화를 이룰 수 있다고 국회와 한돈업계를 설득하고 있다. 다만 한돈업계에서는 생산자나 육가공업체 모두 회의적인 반응이다.
대한한돈협회 관계자는 “현재는 경매가격이 농가와 육가공업체 간 거래의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런데 경매가격이 아닌 다른 가격이 기준이 되면 자칫 도매시장 자체가 없어져 더 큰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매시장이 없어지면 대형 육가공 업체들이 가격을 정할 가능성이 높고 농가들은 끌려 다닐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육가공 업체들 또한 농가에서 돼지를 공급받는 원가가 공개되다 보니 마뜩치 않은 분위기다. 이에 “생산원가를 다 공개하는 산업이 어디 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업계 내부에서는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인위적으로 원가부터 개입을 할 수 있는 포석을 마련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있는 실정이다.
이병석 한돈미래연구소 부소장은 “도매시장은 이미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다. 그런 만큼 도매시장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우는 도매시장이 활성화돼 있다. 한돈 역시 충분히 정책적으로 도매시장을 활성화할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축부터 빠르면 3일 만에 소비지까지 출하돼
한편, 축산물유통법 제정안을 보면 제14조에 축산물 유통 구조 개선 사업에 관한 조항이 설치돼 있다. 이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축산물 유통 시설에 대한 개·보수 및 현대화 ▲직거래·온라인거래 등 축산물 거래제도 구축 및 활성화 ▲축산물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한 교육 및 홍보 등의 사업을 추진하거나 이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
이는 축산물에 관한 물가 관리를 거론할 때마다 제기되는 중간 유통 마진 감축 및 유통 단계 단축 방안과 연계된 내용으로 해석된다. 실제 농식품부는 지난 6월 25일 농식품 수급·유통구조 개혁 TF를 구성하고 착수 회의를 열기도 했다. 이 TF에는 축산물도 각 분과 중 하나로 두고 있다. 각 분과에는 수급안정소분과와 유통구조개선 소분과를 설치했다.
대체적인 돼지고기 유통 과정은 한돈농가가 계약한 육가공 업체가 지정한 도축장으로 돼지를 출하하면서 시작해 최종적으로 소비자가 돼지고기를 구매하는 단계까지를 일컫는다. 도축장에서 도축된 돼지고기는 2~3차에 걸친 육가공을 거쳐 소비지 유통 단계에서 소비자를 만나게 된다. 가공식품으로 생산한다면 가공 단계가 더 추가되기도 한다.
대형 육가공 업체들은 이미 논스톱에 가까운 육가공 및 유통 구조를 구축한 상태다. 도드람양돈농협(이하 도드람)은 경기 안성시 일죽면(안성LPC)과 전북 김제시 백산면(김제FMC)에 대형 축산물 유통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도드람은 도축, 가공, 유통을 통한 판매까지 아우르는 대표적인 협동조합형 축산물 대형 패커(Packer)다.
도드람 김제FMC는 2018년부터 본격 가동됐으며 1일 3000두의 돼지를 도축하고 최대 5000두를 예냉 보관할 수 있는 대형 종합식육가공센터다. 당시 도드람은 덴마크와 독일 등 축산 선진국의 최첨단 도축 기술을 도입하는 등 총 사업비 약 1000억원을 투입할 정도로 과감한 설비 투자를 단행했다.
도드람 안성LPC는 수도권지역 최초의 HACCP 인증 거점도축장이다. 2011년에 정부로부터 제1호 우수축산물유통센터로 지정되기도 했다. 두 유통센터 모두 도축, 가공, 처리까지 외부 노출이 없는 논스톱 구조이며 콜드체인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도드람의 콜드체인 시스템은 가공장에서 급랭터널 등 최첨단 도축 시설을 통해 미생물 발생 억제 온도인 15℃를 유지한다. 또, 타코메타(온도기록계)를 장착한 배송차량 온도는 2℃로 유지하며 택배 배송시 아이스팩 온도도 5℃ 이하로 유지한다. 이를 통해 돼지고기를 최대한 신선한 상태로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있다.
기자가 직접 찾은 안성LPC는 급랭한 돼지도체를 하루 동안 예냉보관한 뒤 곧바로 육가공 처리를 하고 있었다. 육가공장 옆에는 바로 목심, 등갈비, 앞다리, 삼겹살, 목심갈비 등 부위별로 포장작업이 이뤄져 배송준비까지 논스톱으로 진행됐다. 부위별 체계적인 가공라인을 갖추고 등급별로 품질관리를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도드람푸드 김주연 영업본부 본부장은 “가공된 원료육은 메인 허브 센터에서 출하를 한다. 리테일업계와 주로 거래하지만 전국 56개 대리점에서도 유통을 하고 있어 여러 채널을 갖고 있다”라며 “소비지까지 빠르면 도축 이후 3일 내외로 출하된다고 보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절기에는 작업자들이 내부와 외부 온도차가 심해서 힘들지만 콜드체인 시스템을 유지하며 품질관리에 노력하고 있다”라며 “돼지고기는 바짝 익혀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품질 및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면 굳이 바짝 익히지 않아도 문제가 안 된다. 그래서 통안심가스 같은 메뉴가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원료육 판매만으로는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 가공 또한 유통단계에서 빠질 수 없다. 돼지고기는 삼겹살과 목살에 대한 선호가 높아 그 외 부위육에 대한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도드람처럼 협동조합형 패커는 국내 농가가 생산한 돼지만으로 원료육을 쓰다보니 단가가 낮은 수입육을 활용할 수 있는 민간 육가공업체와의 경쟁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에 김 본부장은 “도드람은 푸르샨식품이란 계열사에서 내장류 가공식품을 유통하고 있다. 도드람은 원물 물량이 뒷받침되기에 각종 부산물이나 특수부위를 상품화할 수 있다”라며 “안심 슬라이스 제품은 돈가스용 안심을 생산한 이후 나오는 살코기로 만들었는데 이 역시 100% 안심살로 마리당 생산되는 물량이 아주 적다. 우리는 이를 훈제용으로 만들어 슬라이스 제품으로 특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틈새시장을 공략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국내산 돼지의 가치 또한 높이고 있는 셈이다.
돼지 유통비용률 46%, 대다수는 소매 단계서 발생
이는 정부의 축산물 유통 정책의 중심이 과연 물가관리에만 집중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한우처럼 국내산 돼지고기 역시 한돈으로 차별화를 할 수 있도록 유통 정책의 방향부터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지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돼지고기의 트렌드는 품종이다. 스페인 이베리코 돼지고기가 유행이었던 때를 생각해보라”면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먹는 돼지고기는 3원 교잡종(YLD)인데 소비자에게 다양한 품종의 돼지고기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소비자들이 국내산 돼지고기의 높은 가격에 불만을 갖는다면 유통 구조를 잘 봐야 한다. 마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최종 판매처 아닌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삼원교잡은 다산성이 좋은 요크셔(Y)와 포유능력이 좋은 랜드레이스(L)를 교배해 어미 돼지를 만들고 이 어미돼지를 육질이 우수한 듀록(D)과 교배해 최종적으로 생산한 돼지를 일컫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YLD 일변도의 시장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도드람은 2023년 랜드레이스 대신 육질이 좋은 버크셔(B)로 삼원교잡한 YBD 품종의 돼지고기 브랜드 ‘THE짙은’을 출시했다. 일부 농가에서는 자체적으로 국내산 재래돼지를 되살리려는 시도도 계속하고 있다.
축평원이 지난해 8월 발간한 2023년 축산물유통정보조사 보고서를 보면 2023년 기준 국내산 돼지고기의 생산단계 가격은 두당 46만9799원이다. 그러나 소매단계 가격은 두당 87만26원으로 유통 비용률이 46.0%에 달한다.
유통단계로 구분해서 보면 도매단계 가격은 두당 56만384원에 불과하다. 상당수 유통비용 발생이 소매단계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소매단계에서 소매 종류별로 구분하면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이 중에서 백화점은 두당 135만2676원, 대형마트는 두당 101만215원으로 두당 100만원이 넘는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농협 하나로마트는 두당 74만2273원으로 가장 낮았다.
정부가 유통비용을 줄여 국내산 돼지고기 가격을 관리하고 싶다면 도매와 소매 중 어느 단계를 중점적으로 관리해야 하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결과다. 일각에서는 도매단계의 유통 효율화는 시장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저절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소매단계에서 도매가격에 거품이 끼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돼지고기 유통에서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점은 등급제라는 여론도 높다. 돼지는 소와 마찬가지로 축평원의 축산물 등급판정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등급제를 통해 한우는 수입 소고기와 차별화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국내산 돼지고기는 소비단계에서 등급제가 소비자의 판단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축평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돼지 등급별 가격 차이는 오히려 좁혀지고 있는 실정이다.
2013년 국내산 돼지 1+등급과 1등급간 경매가격 차이는 ㎏당 342원이었다. 그러나 2022년 국내산 돼지 1+등급과 1등급간 경매가격 차이는 ㎏당 61원에 불과했다. 2022년 축평원이 징수한 등급 판정 수수료는 총 115억5000만원인데 이 중 돼지 등급 판정에서만 74억2000만원을 수수료로 징수했다.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등급제에 수십억원의 수수료만 지불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서 의원은 “지난 2018년, 2020년에 돼지등급제 실효성을 지적했으나 노력하겠다는 답변뿐 개선된 점이 없다”라며 “축평원의 역할을 등급판정이 아닌 품질향상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농식품부, 축평원 등은 오랜 기간 동안 생산자 및 육가공업계와 등급제 개편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왔지만 좀처럼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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