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정부가 국정과제에 ‘북극항로 시대를 주도하는 K-해양강국 건설’을 포함시키면서 북극항로 논의가 다시 본격화되고 있다. 단순한 해상 루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물류·조선·에너지·항만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국가 전략으로 격상되는 분위기다.
북극항로는 부산에서 유럽까지의 항해 거리를 최대 40% 줄일 수 있다. 항해 기간은 기존 30일에서 18일 수준으로 단축돼 연료비와 운항 비용이 줄어들며 탄소 배출 감축 효과도 기대된다. 기후변화 대응과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물류 효율성과 환경 가치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카드인 셈이다.
지정학적 가치도 주목된다. 분쟁이 잦은 중동과 남중국해를 우회할 수 있어 글로벌 공급망 불안을 완화할 수 있으며, 부산항이 북극항로의 출발점으로 자리 잡는다면 환적항을 넘어 금융·조선·서비스 등 연관 산업 전반에 걸친 파급 효과도 기대된다.
“부산 중심의 동남권 거점 전략 마련해야”
북극항로를 실질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선행돼야 할 과제가 있다. 핵심은 항만 인프라 고도화다. 대형 선박을 수용할 수 있는 접안 시설은 물론, 혹한에서도 안정적으로 가동되는 하역 장비와 기상 악화에도 중단 없는 운영을 뒷받침할 물류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런 인프라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북극항로는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시각이다.
김기태 영산대 북극물류연구소 교수는 먼저 부산항의 기능 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부산항이 단순 환적항을 넘어 북극항로 선박이 반드시 들러야 하는 항만이 돼야 한다”며 “수리, 급유, 선용품 공급, 선원 교체까지 한 곳에서 가능한 원스톱 서비스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북극항로를 현실적으로 관할하는 러시아와의 협력도 강조됐다. 김 교수는 “북극항로는 러시아 수역을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정치·외교적 난제를 넘어 관계 복원이 이뤄져야 항로 활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항만 서비스 데이터 축적이 필요하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현재도 북극항로 선박이 부산 외항에 들러 서비스를 받지만 관련 데이터가 없다”며 “선박 수요를 분석해 맞춤형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역할을 전담할 북극해운정보센터 설립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항만 기능 분담과 안전 체계 강화 필요
북극항로 논의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항만 기능의 재편과 안전 체계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항만마다 거점을 주장하는 현재 방식은 자원 분산과 중복 투자를 불러올 수 있어 비효율적이다. 컨테이너는 부산, 액체 화물은 울산, 석유화학은 여수·광양, 철강은 포항처럼 기능을 분명히 구분해야만 국가적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빙해역 특유의 기후와 환경 리스크를 고려하면, 기름 유출이나 화물 유실에 대비한 안전 장비와 대응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북극항로 논의가 실효성을 갖추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부터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북극항로는 기회 못지않게 과제가 뚜렷한 사안”이라며 “지금 필요한 건 장밋빛 전망이 아니라 구체적 준비”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항만 간 역할이 겹칠 경우 국가적 효율성을 해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국 여러 항만이 앞다투어 ‘북극항로 거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자원 분산과 과열 경쟁을 불러올 수 있다. 구 회장은 “부산은 컨테이너, 울산은 액체 화물, 여수·광양은 석유화학, 포항은 철강처럼 항만별 기능을 명확히 구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선택과 집중이 없으면 국가적 효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환경 리스크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빙해역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기름 유출이나 화물 유실은 되돌릴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는 “지속 가능한 북극항로 활용을 위해선 안전 장비와 대응 체계를 선제적으로 갖춰야 한다”며, 이를 국가 전략의 핵심 축으로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균형 잡힌 추진으로 피해 줄여야
전문가들은 북극항로가 단순한 해상 루트를 넘어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 전략 자산이라고 강조한다. 물류 효율화와 공급망 안정은 기본이고, 부산항이 거점으로 자리 잡을 경우 조선·금융·서비스 산업까지 연계되는 연쇄적 파급 효과가 뒤따른다는 분석이다. 제대로 준비만 된다면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기태 교수는 “부산이 북극항로의 관문으로 기능하면 단순 환적항을 넘어 글로벌 해양 서비스 허브로 성장할 수 있다”며 “이는 곧 조선·항만·물류 산업 전반을 하나의 클러스터로 묶어내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준비 과정에서 부산의 역할을 확실히 하고 국제 협력 기반을 다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구교훈 회장도 “항만 기능을 분담하고 안전 체계를 강화한다면 국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북극항로는 긍정적인 전망만으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라, 현실적 과제를 차근차근 풀어낼 때 비로소 한국 산업의 새로운 먹거리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