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의료데이터 패권 선점···한국, ‘제도 공백’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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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의료데이터 패권 선점···한국, ‘제도 공백’ 발목

이뉴스투데이 2025-08-18 15:19:2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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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디파짓포토스]
[사진=디파짓포토스]

[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글로벌 헬스케어 데이터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은 의료데이터를 환자 권리이자 산업 자원으로 규정하며 제도화를 마쳤다. EU가 보호와 활용을 동시에 담보하는 규칙을 마련해 표준 선점에 나섰지만, 한국은 아직 시범사업 수준에 그치면서 제도적 기반이 미비, 기업들의 연구·산업 활용 기회가 제약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보건의료 데이터 산업은 2025년부터 급성장해 지난해 7837억원에서 2030년 5조3192억원, 2032년 10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는 이 같은 통계를 통해 의료 데이터가 단순 진료 기록이 아닌 산업 성장의 핵심 자원으로 재평가되고 있다고 해석한다.

지난 3월 EU는 ‘유럽 건강데이터 공간(EHDS)’ 규정을 공식 발효했다. EHDS는 27개 회원국의 의료 데이터를 보호하면서도 국경을 넘어 상호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통합 프레임워크다. 환자는 전자건강기록(EHR)을 자유롭게 조회·공유할 수 있고, 연구·산업적 활용은 각국이 설치한 건강데이터접근기구(HDAB)의 심사를 거쳐 가능해졌다.

EU는 2029년까지 의료기관 간 데이터 상호운용을 정착시키고, 2031년부터 본격적인 활용 단계에 들어갈 방침이다. 이를 통해 연간 110억유로(약 16조원)의 경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각 회원국이 설치한 HDAB를 공동 플랫폼인 ‘MyHealth@EU’와 연계해 사실상 단일 데이터 시장을 구축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미국은 ‘건강보험 양도 및 책임에 관한 법(HIPAA)’을 통해 환자 정보 보호에 방점을 찍으면서 민간 활용은 제한적인 구조다. 중국은 공공기관 주도의 강력한 통제 모델을 유지한다. 반면 EU는 보호와 활용을 아우르는 법제와 기술 표준을 동시에 마련해 글로벌 규칙 경쟁에서 한발 앞섰다는 의견이다. EU 표준이 국제 규범으로 굳어지면 한국은 발언권조차 확보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에서는 관련 제도화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2021년 ‘마이헬스웨이’ 도입 방안을 발표해 240여 의료기관에서 시범 개통을 진행했지만, 환자 권리와 산업 활용을 아우르는 법제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2022년 발의된 ‘의료데이터 활용 특별법’과 데이터 3법 개정안도 의료계·시민단체의 반발로 2년째 국회 심의가 지연되고 있다.

이 같은 격차는 산업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신약을 개발하는 데는 통상 10~15년, 20억달러 이상이 소요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AI를 활용해 기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 인실리코메디슨은 AI가 설계한 섬유화 치료제를 18개월 만에 임상 1상에 진입시킨 바 있다.

핵심은 방대한 임상·진료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게 확보하느냐다. 데이터 규모와 다양성이 AI성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법제 지연으로 성장을 산업 자산으로 전환하지 못할 경우 환자 데이터를 해외 기업에 의존하는 ‘데이터 공급국’으로 머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도 국가 주도의 통합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국가통합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을 통해 77만2000명 규모 유전체 자료를 수집하는 1단계를 추진하고 있다. 환자의 임상·유전체 정보를 통합해 정밀의료, 신약 개발, 맞춤형 치료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다만 참여자 모집이 지연되고 의료기관 참여도 저조해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개인정보 비식별화·가명 처리 기술 고도화, EMR·의료영상·유전체 데이터의 국제 표준화, 첨단 오믹스 데이터 개방 확대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진단한다.

민간 차원의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이노그리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추진하는 ‘빅데이터 개방시스템’ 고도화 사업을 맡아 클라우드 기반의 AI 분석 플랫폼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AI‧클라우드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 오케스트로는 국제 의료 AI 데이터 이니셔티브(IHDSI)에 참여해 국립암센터와 유럽 연구 기관과 함께 분산형 의료데이터 인프라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삼성 헬스’는 현재 전 세계 70개 언어를 지원, 미국 b.well 플랫폼과 연계해 현지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과의 통합을 추진 중이다. 카카오헬스케어 역시 20여 개 병원이 참여하는 연합학습 기반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 구글 클라우드와의 분석 협업을 확대하며 해외 연구 협력 기반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한국의 개인정보 보호법 제28조의8은 개인정보의 국외 이전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예외적으로 허용되더라도 엄격한 안전 조치와 절차적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 등 국내 규제가 국가 간 직접 연계를 사실상 제한하면서 글로벌 확장에는 제약이 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규제 공백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한국이 국제 표준 논의에서 발언권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데이터 3법 재추진, EMR 표준(KR-Core) 마련, EU 주도의 글로벌 컨소시엄 참여 등 선제 대응 전략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의학 전문 변호사는 “보건의료 데이터는 산업 경쟁력과 국민 건강권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핵심 자원”이라며 “단순히 축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안전과 혁신을 균형 있게 담아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법과 제도가 장애물이 아닌 촉매제가 될 때 비로소 산업과 사회가 함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며 “지금이 그 변화를 만들어낼 결정적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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