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국내 주요 대기업이 지난해에만 계열사로부터 상표권 사용료, 이른바 '간판값'으로 무려 2조원 넘는 수익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입 구조는 기업마다 산정 방식이 제각각이어서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통로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실이 18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자산 기준으로 대기업 집단에 속하는 총 92개 그룹 중 72개 그룹(897개 계열사)이 지난해 상표권 사용료 명목으로 총 2조1,530억원을 받았다. 이는 2023년의 2조354억원보다 1,176억원 늘어난 액수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업별로는 LG가 3,545억원으로 가장 많은 간판값을 수취했으며 SK(3,109억원), 한화(1,796억원), CJ(1,347억원), 포스코(1,317억원), 롯데(1,277억원), GS(1,042억원), 효성(617억원), HD현대(534억원), 현대자동차(521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간판값이란 대표회사가 계열사로부터 상표권을 유·무상으로 양도받거나 CI(기업이미지) 변경 등을 통해 대표회사가 신규 상표권을 보유할 때 발생하는 사용료를 말한다. 이는 상표권 보유자가 사용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받는 행위로, 위법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마다 간판값 산출 방식이 달라 불투명성을 키우고 있다는 문제는 지적된다. 대부분 기업은 매출에서 광고선전비를 제외한 뒤 일정 수수료율을 곱해서 수치를 산출한다. 예컨대 LG·SK는 0.2%를 적용하는 반면, 한국앤컴퍼니는 0.5%, 쿠팡은 관련 매출 기준 0.2%, 한솔은 매출액의 0.28%를 간판값으로 계산한다.
이양수 의원은 "광고와 마케팅이 계열사 브랜드 가치를 높인 공로가 큰데도, 지주사 등 대표사에 상표권이 있다 하여 대가를 지출하는 구조는 계열사의 이중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며 "공정위는 그룹별 간판값 산출 방식을 면밀히 분석하고, 부당 지원 여부를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판값을 전혀 받지 않는 방식 역시 존재하는데 지난해엔 셀트리온이 대표적이다. 셀트리온은 상표권을 그룹 총수인 서정진 회장이 지분을 가진 계열사 두 곳에 무상으로 제공한 사실이 적발되며 총수 친화적 편익 제공 수단으로 활용된 사례로 꼽혔다.
이처럼 일률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지주회사나 대표회사가 과도한 수익을 챙기거나 반대로 계열사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상표권 사용료를 회피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공정거래 측면에서 상표권 사용료는 계열 간 내부거래로 분류되며 지배력이 높은 그룹에서는 자칫 내부거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공정위는 현재 이 같은 사례들을 부당지원 또는 사익편취 여부로 분류해 조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기업들도 일정 수준 이상 투명한 산정 방식의 마련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다. 간판값이 기업 이미지와 상표 권리를 정당하게 보상하는 구조라면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이를 둘러싼 의혹과 불신이 계속되는 한 기업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소지가 크다.
일각에서는 정해진 수수료율 대신 제3자(외부 평가기관)의 독립된 평가 방식이나, 분기별 고시 형식의 모니터링 체계를 도입하는 방안도 제안되고 있다.
이양수 의원은 "간판값을 둘러싼 논란은 대기업 특혜나 사익편취가 아니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공정위는 단순 통계 공개에 그치지 말고 각 기업의 산출 방식이 합리적인지, 지배주주 편익 제공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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