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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조정 불발 시 사업 철수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이번 사안은 단순한 가격 다툼을 넘어 국내 면세 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공공기관의 역할, 나아가 변화하는 글로벌 여행 시장에 대한 대응 전략의 부재를 드러내고 있다.
현재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은 경쟁입찰을 통한 선정 방식을 택하고 있다. 사업자는 여객당 임대료(공항 이용객 수에 제안단가를 곱하는 방식)를 제시하며 경쟁하는데, 지난 2023년 당시 신라·신세계 면세점은 최저수용금액의 160%가 넘는 고가 투찰로 사업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중국인 단체 관광객 회복 지연과 환율 급등, 소비 형태 변화로 매출은 곤두박질치고 있고, 높은 임대료 부담 등으로 적자 폭이 확대되고 있다. 사업자들이 임대료 인하 요구에 나선 배경이다.
공항 공사는 계약 불이행(임대료 인하)시 배임 논란과 입찰 질서 붕괴를 우려한다. 고가로 낙찰받은 뒤 매출 부진을 이유로 감면을 요구하는 관행이 굳어진다면, 공개입찰의 근간이 무너지고 시장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논리다.
면세업계의 위기는 단순히 손익 계산서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 이전 면세 매출의 핵심은 중국 보따리상(따이공)과 단체 관광객이었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이들은 사라지고, 중국인 관광객은 개별 자유여행 위주로 재편됐다. 쇼핑보다 체험과 문화를 소비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졌고, 로드숍·온라인 직구·전문 브랜드 매장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는 얘기다.
해외 주요 공항은 임대료 정책에서 훨씬 유연하다. 대표적으로 싱가포르 창이공항, 태국 수완나폼·돈므앙공항은 코로나, 경기 하락, 관광객 변화 등 복합 악재에 대응해 임대료 감면, 최소보장금액(MG) 인하, 계약 재협상을 병행했다. 태국은 ‘위기대응팀’을 따로 운영하며 시장 상황을 반영한 임대료 산정을 정례화했다.
이처럼 글로벌 공항들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임대료 조정을 통해 면세점 산업 생태계의 지속성, 여행객 유치, 소비시장 확대라는 전략적 이점을 취하고 있다. 반면 인천공항은 국내 법률상 조정 사유 제한, 입찰공정성 원칙을 앞세우는 보수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금의 면세점 임대료 논란은 단순히 비용 분쟁을 넘어, 변화하는 여행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한 면세점 산업과 공공기관의 제도적 미비가 겹친 구조적 문제다. ‘정책의 묘’가 산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좌우할 시점이다.
공사 측은 원칙론만 앞세우기보다는 시장 변화와 산업 생태계 유지를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사업자들이 우선 생존해야 다음 스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장 변동에 대응할 안전장치를 입찰 제도 안에 설계하고, 위기 시 업계와 조율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면세점 업계 역시 소비자 중심의 혁신과 산업 재구성, 새로운 여행자 네트워크 창출 등 적극적 대응이 요구된다. 그동안 면세 특권을 이용해 연명만 해왔지 제대로 혁신조차 시도하지도 않았던 ‘본질’은 외면한 채 지원만 받으려 한다는 뼈아픈 지적을 되새겨야 한다.
면세점 임대료 논란은 구조적 전환의 시험대이자, 우리 관광산업의 미래에 대한 숙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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