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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의 상당수는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에서 비롯한다. 이는 단순 부주의뿐만 아니라 최저가낙찰제, 다단계 하도급, 안전불감증, 부적절한 작업환경 등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경영의 책임으로만 환원시키면서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전활동은 ‘법적 의무 이행’과 ‘작업 지속 여부’라는 좁은 틀에 갇히게 된다.
정부 데이터를 보면 중대재해의 절반 이상이 상시근로자 50인·건설공사 50억원 미만 사업장·공사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이들의 안전역량은 취약해 사업주 책임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안전 전문기관의 맞춤형 기술지도와 컨설팅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업종 특성상 하도급이 불가피한 대기업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도급업체의 영세성과 안전투자 여력 부족은 본질적 제약으로 작용한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포스코이앤씨 역시 중처법 시행 초기에는 정부가 모범사례로 꼽았던 기업이다. 그간 동사의 안전관리가 뚜렷이 후퇴하지 않았다면 잇따른 중대재해의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결과만 보고 제재를 강화하는 처방이 과연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제재와 지원이 균형을 이루고 현장을 중심으로 실효성을 확보하는 ‘작동하는 안전’이다. 그 무엇보다 제재에 앞서 재해의 구조적 원인을 치유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첫째, 재해는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고 같은 재해의 반복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사후 처벌의 ‘보이는 안전’에서 사전 예방의 ‘작동하는 안전’으로 전환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는 중처법의 반기별 자율점검을 보완해 ‘외부안전감사제도’를 도입하고 독립적인 진단과 예방 조치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중소사업장의 안전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50인(억원) 미만 사업장·공사의 안전관리자 배치·교육 의무를 복원하고 전문기관이 업종별 공동 안전관리나 안전관리 대행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 재정지원과 결합하면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셋째, 통합적인 안전관리와 안전관리비 의무화가 필요하다. 원·하청 공동안전관리 시스템과 하청 근로자 참여형 안전거버넌스를 법제화하고 안전감리와 안전조정자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아울러 비제조업에도 ‘연구실안전환경조성법’처럼 인건비의 1% 이상을 안전관리비로 반영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넷째, 안전인의 전문성과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자격·학력·경력을 종합해 등급별로 관리하는 ‘경력관리제’를 도입하고 안전관리자의 작업중지 권한을 법으로 보장해 경영자가 합리적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인센티브 기반 안전관리 촉진책을 도입해야 한다. 안전시설·장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안전전문기관 인증·평가 결과의 정부 감독·제재 반영, 우수업체에 대한 입찰 가점·금융·보험 인센티브 제공 등이 필요하다.
여섯째, 살아 있는 안전문화를 확산해야 한다. 교육·홍보·평가를 통해 안전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보여주는 안전’이 아닌 ‘살아 있는 안전문화’가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의 안전명장제, 중앙정부·지자체 협력으로 지역 안전교육문화회관 설치도 검토할 만하다.
안전은 무엇보다 정부와 공공부문이 모범적인 사용자로서 솔선수범해야 한다. 발주자 책임, 계약 조건, 원가 반영 등에서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지 않으면서 민간에만 제재를 강화한다면 실용정부의 안전대책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제도와 현실의 공백을 메우고 안전인의 역할이 살아 숨 쉬도록 할 때 비로소 ‘실용’과 ‘안전’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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