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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61년 만에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지난달 23일 열린 재심에서 검찰은 과거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최씨에게 무죄를 구형한 것이다. 검찰은 법정에서 이렇게 밝혔다. “피고인의 행위는 성폭력 범죄에 대한 피해자의 정당한 방어 행위다. 과하지도 위법하지도 않다. 피고인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해달라”. 그리고 덧붙여 “검찰의 역할은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인데 검찰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았어야 하는 최말자님께 고통과 아픔을 드린 것을 사죄드린다”는 말까지 전했다. 법과 사회가 61년 만에 한 개인의 생존을 위한 저항 행위를 ‘범죄’로 낙인찍었던 과거를 바로잡는 순간이었다.
최말자씨 사건은 법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판례다. 형법 교과서에는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대표적인 판례로 소개돼 왔다. 필자 역시 20년 전 이 사건을 공부하면서 이게 정당방위가 되지 않는다면 대체 그러한 상황에서 피해자는 어떻게 대응하라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법적으로 많은 다툼이 있는 게 바로 정당방위의 인정 범위다. 오죽하면 변호사들이 자칫 ‘쌍방 폭행’으로 엮일 수 있으니 웬만하면 상대의 싸움에 응하지 말고 차라리 맞고 있는 게 낫다는 조언을 할 정도로 실무상 정당방위의 인정 요건은 매우 까다롭다. 대법원은 “어떠한 행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되려면 그 행위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서 상당성이 있어야 하므로 위법하지 않은 정당한 침해에 대한 정당방위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때 방위행위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것인지는 침해행위로 침해되는 법익의 종류와 정도, 침해의 방법, 침해행위의 완급, 방위행위로 침해될 법익의 종류와 정도 등 일체의 구체적 사정을 참작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에 따라 실무에서는 방위행위로 침해되는 법익과 정도, 침해행위로 침해되는 법익과 정도를 따져 정당방위 여부를 판단하는데 방위행위가 상당성을 초과했다고 보는 경우에는 정당방위는 물론 과잉방위도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인정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까다로운 정당방위 법리로 따져봐도 최말자씨의 행위는 명백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 시대에 따라 법리와 법 해석이 변해서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없던 행위가 뒤늦게 정당방위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최씨의 행동은 위법하고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 성인 남성이 몸을 덮쳐 성폭행을 시도하는 위법하고도 급박한 상황에서 열여덟 살 소녀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결국 최씨가 겪은 고초는 법의 문제가 아니라 법을 다루는 사람들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다. 법원은 최씨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가해자에게 길을 안내한 최씨의 행동이 성폭력을 유도한 것이라고 판시하기도 했고 재판 과정에서 ‘처음부터 호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 결혼해서 함께 할 생각은 없느냐’ 같은 2차 가해도 서슴지 않았다. 당시 검찰과 법원의 남성 위주의 그릇된 성 인식,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만들어낸 폭력이었던 것이다.
최씨는 최후 진술에서 “국가는 1964년 생사를 넘어가는 악마 같은 그날의 사건을 어떤 대가로도 책임질 수 없다. 피해자의 피를 토할 심정을 끝까지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고 꼭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이제 최씨의 사례는 형법 교과서에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 대표적인 판례로 소개될 것이 아니라 법을 다루는 사람들의 왜곡된 인식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판례로 소개해야 할 것이다. 법률가들은 최씨의 최후 진술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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