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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변호사·안다상속연구소장] 인지증은 치매라고 불리던 것을 일본에서 완화하여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다. 치매라는 단어가 장애로서 폄훼하는 의미가 있어서 새로운 용어인 ‘인지증’으로 부른 것이다.
인지증은 고령자에게만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65세 미만의 노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이 걸린다. 그러나 주된 환자가 고령층이고, 고령화가 심할수록 인지증 환자가 대폭 늘어난다. 우리나라 2025년 인지증 환자 수는 97만명으로 고령자 중에 10명당 1명의 비율로 인지증을 앓고 있다. 인지증보다 낮은 경도인지장애 진단자의 수는 올해 300만명에 이른다. 인지증 유병률은 75세 이후로 높아지고, 85세 이상은 20%가 넘으며, 대부분 1인 가구로 살고 있고, 여성의 비율이 높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인지증은 기억력과 판단력이 서서히 저하되기 때문에, 초기 진단 이후에는 본인이 재산과 생활에 관한 법률적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진다. 인지증은 발병 후의 대처가 어렵고 장기적인 돌봄을 필요하므로, 발병 전 단계에서 법률적·경제적 대비를 마련하고, 지역사회가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아직 의사결정 능력이 남아 있는 경우라면 인지증 이후를 법률적·경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우선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향후 의식이 없는 상태나 의사표현이 불가능할 경우를 대비해 연명치료 여부, 돌봄 형태 등을 미리 결정할 수 있다. 일본이나 유럽 일부 국가에서 시행하는 제도로서 ‘사전돌봄계획’이라는 서류 작성이 있는데 이는 인지증 이후의 돌봄 방식·의료 선택·거주지 결정 등을 미리 가족과 상의하여 작성하는 것이다.
인지증으로 의사결정 능력이 상실되면 스스로 자신의 재산관리나 생활 유지를 할 수 없다. 미리 법원에서 선임된 후견인을 통하여 피후견인의 재산과 생활을 보호하도록 하는 제도가 성년후견제도다. 성년후견제도는 ‘성년후견·한정후견·특정후견’으로 나뉘는데, 초기에는 특정후견을 활용해 일부 사무만 후견하도록 지정하고, 진행에 따라 확대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일본의 경우에는 후견인을 지정할 수 있는 임의후견계약이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후견제도의 진행으로 인지증이 발병하더라도 가족간의 분쟁을 예방하고, 피후견인의 재산을 피후견인을 위하여 적정하게 사용할 수 있다.
재산관리 및 비용마련을 위하여 다양한 신탁 내지 보험제도도 활용할 수 있다. 치매대비신탁은 본인이 건강할 때 금융기관이나 신탁회사와 계약을 맺어 인지증 발생 이후 재산 관리권을 신탁회사나 지정수탁자에게 이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본은 치매신탁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생활비 내지 간병비의 지급, 부동산의 관리를 수탁자인 금융기관이나 신탁회사가 수행하고 있다. 장기요양보험 이외에 치매 전용보험을 체결해 놓으면 나중에 치료 및 돌봄 비용으로 추가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지자체에서 ‘치매가족지원기금’을 만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인지증 환자나 가족에게 지원하고 있다.
인지증에 대한 대비를 개인적으로만 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인지증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지역사회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지금도 지자체마다 설치된 치매안심센터의 기능을 확장해 법률상담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인지증 환자를 돕는 ‘지역포괄지원센터’에서 법률재산관리 코너를 따로 두어 후견제도 내지 신탁제도에 대해 잘 알려주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은 의료, 복지, 돌봄을 하나로 묶어서 고령자가 거주지에서 죽을 때까지 생활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 돌봄센터, 자원봉사단체, 지자체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우리 지자체도 돌봄협의체를 만들어서 의사, 사회복지사, 변호사, 간호사, 자원봉사자 등이 협의해 인지증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보장이 인지증 환자와 가족에게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도 누구라도 인지증 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나의 재산과 의료는 내가 결정한다’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캠페인을 지자체, 언론, 전문가 단체 등이 지속적으로 추진해 인지증 발생 후의 문제와 사전 준비의 필요성을 알려야 한다. 그러한 방법으로 치매 예방의 날을 만든다거나 노인복지관 등에서 인지증에 대한 세미나를 하거나 공익광고를 제작해 배포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듯, 인지증 발병 전부터 법률·경제적 준비를 마친 사람은 돌봄의 질이 높고 가족 갈등이 적다. 반대로 준비가 부족하면 재산 분쟁, 사기 피해, 무계획 돌봄으로 가족이 붕괴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인지증을 대비하기 위해 개인적으로는 법률적·경제적으로 사전 준비하도록 하고, 사회적으로는 지역사회 내에 촘촘한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인지증이 두려움이 아닌 ‘관리가능한 병’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만들어 가야 한다.
■조용주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사법연수원 26기 △대전지법·인천지법·서울남부지법 판사 △대한변협 인가 부동산법·조세법 전문변호사 △안다상속연구소장 △법무법인 안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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