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광복은 식민지 시기 억눌린 인재와 기술을 되살리는 출발점이었다. 전쟁으로 산업 기반이 무너진 폐허 속에서 시작된 한국의 과학기술은 기상·천문·의학 등 기초과학 복구를 발판 삼아 중화학·전자산업의 자립을 이뤘다. 그 토대 위에서 한국은 80년 만에 반도체·원전·우주항공·AI 등 세계 최고 수준의 핵심 산업을 이끄는 기술 강국으로 도약했다.
◇광복~1980년대···폐허 딛고 산업화 기반 구축
광복 직후 한국은 산업 기반이 거의 파괴, 1950년대 초까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외국 원조에 의존했다. 전쟁 상흔 속에서도 서울대와 부산대에 공과대학이 세워져 고등공학 교육이 재개됐다. 1954년 한미 협정으로 시작된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교수 연수와 장비·교재 지원으로 교육 인프라 복구에 숨을 불어넣었다. 같은 시기 귀국한 한국인 최초 이원철 이학박사는 국립중앙관상대 초대 대장으로 기상·천문 행정을 독자 체계로 전환, 기초과학 재건 초석을 놓았다.
교육과 연구의 불씨가 살아난 1960년 과학기술 행정을 국가 차원에서 정비했다. 1961년 과학기술국 발족으로 전담 조직이 마련됐고 이듬해 제1차 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통해 연구 기관 설립, 기초과학 육성, 기술 인력 확충이 동시에 추진됐다. 1965년 한미 협정을 계기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창립 준비가 본격화되면서 과학기술은 경제개발계획 속 산업정책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1970년대 경제개발 3·4차 계획을 앞세워 중화학공업과 기술 자립을 가속했다. 1972년 현대조선소 착공과 1973년 포항제철 가동은 조선·철강 기술 축적의 기점이었고, 전략 산업별 연구개발 투자와 인력 양성이 병행됐다. 금속·재료·조선공학의 국산화 성과는 자동차·가전으로 확산돼 현대 포니와 컬러TV 생산으로 이어졌다. 이는 수출 경쟁력 향상과 함께 산업 전반의 과학기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화학공업으로 넓힌 제조업 기반 위에 1980년대 정부는 산업구조 고도화를 추진하며 반도체·통신 등 첨단 분야 투자를 확대했다. ‘과학기술입국’을 국정 기조로 삼아 장기 개발계획을 수립했고, 1983년 삼성의 64K D램 개발 성공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일본·미국 중심 국제 경쟁에 진입에 도전하는 분기점이 됐다. 이는 이후 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경쟁력 강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1990년대~현재···반도체 초격차, 디지털 질주
1990년대 들어 디지털 전환이 국가 전략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정부는 1994년 정보통신부 신설과 함께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에 착수해 전국에 광케이블 인프라를 확산했다. 이를 토대로 1996년 세계 최초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이동통신 상용화에 성공, 통신 기술 자립과 표준 수출의 전기를 마련했다. 2000년대 초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OECD 1위는 한국이 ‘추격자’를 넘어 ICT 강국으로 도약했음을 보여줬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의 과학기술은 원전·우주·에너지 등 전략 산업으로 확장됐다. 2009년 한국전력 컨소시엄이 UAE 바라카 원전 4기 수주에 성공, 원전 설계·건설·운영 역량을 세계에 입증했다. 같은 해 나로호 1차 발사는 러시아제 1단을 사용했지만, 국내 제작 위성과 발사 운용 능력을 확보하며 한국형 발사체 개발 출발점이 됐다. 리튬이온 배터리와 연료전지 상용화도 본격화돼 차세대 에너지 산업 기반을 다졌다.
스마트 디바이스 시대로 접어든 2010년대 초, 한국은 스마트폰 세계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시리즈로 2012년 출하량 2억 대를 돌파하며 애플을 제쳤고, 모바일 AP·디스플레이·메모리까지 자급하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LG전자는 2013년 세계 최초 대형 OLED TV 상용화로 프리미엄 가전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이 시기 ICT·가전 전반에서 완성된 부품과 완제품 통합 역량은 이후 5G·스마트홈 경쟁의 기반이 됐다.
최근 10년간 한국 과학기술 핵심 키워드는 인공지능(AI)이었다. 2019년 ‘국가 AI 전략’ 발표를 계기로 초거대 언어모델과 메모리 내 처리 기술(PIM) 기반 AI 반도체 개발이 속도를 냈고, 의료·제조·금융 등 산업 전반으로 활용이 확산됐다. AI 연산을 뒷받침하는 GPU·고대역폭 메모리(HBM) 기술 경쟁은 반도체 초격차 전략과 맞물려 시너지를 키웠으며 차세대 산업 패권 경쟁의 교두보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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