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1902~1950년)은 충북 옥천 출신으로 한국 근대시의 선구자다. 1922년 휘문고보를 졸업한 정지용은 1929년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마친 뒤 귀국해 <카톨릭 청년> , <문장> 등에 시를 발표하며 활동했다. 대표작으로 ‘향수’, ‘고향’, ‘유리창’ 등이 있다. 섬세한 서정과 언어 감각으로 ‘한국 현대 서정시의 아버지’라 불린다. ‘향수'는 이십대 초반의 시인이 일본으로 유학 가기 전인 1927년에 고향인 충북 옥천을 다니러가며 쓴 시다. 지용은 1950년 한국전쟁 중 납북되어 생을 마쳤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 정지용문학관이 있다. 문장> 카톨릭>
박돈 ‘성지’(1957년). 캔버스에 유화 물감, 161.9×130.3cm, 리움미술관.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난 박돈(1928–2022)은 1949년 남하한 화가로 한국적 정서와 조형 의지를 담은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의 그림에는 토기와 백자, 피리를 부는 소년·소녀와 동물 등 고향의 향토적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고향에서 보낸 유년기의 체험은 향토적 소재로 변주되어 나타나면서 상실된 고향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런 향토적 소재와 망향적 분위기는 그의 작품세계를 지탱하는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다. ‘성지’는 둥근달이 떠 있는 밤하늘 아래 나무에 기대어 피리를 부는 소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고향/정지용 시, 채동선 작곡/바리톤 황병덕 & PHOTO BY 모모수계
믹스 - 향수 (鄕愁)이동원 & 박인수, 자막수록 (HD With Lyrics)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채동선(1901~1953년)은 정지용의 시를 가장 많이 작곡했다. 채동선은 정지용의 시 8편을 가곡으로 작곡했다. ‘고향’과 ‘향수’가 대표적인 곡이다. 채동선은 1933년 '고향'을 일본에서 발표해 도쿄 유학생들의 심금을 울렸다. 정지용이 납북 시인이란 이유로 한국전쟁 이후 교과서에서 사라지면서 노래도 잊혀져갔다.
특히 가곡 ‘고향’은 박화목과 이은상의 다른 가사로 바꾸어 불리기도 했다. 그 후 ‘향수’는 1989년 김희갑이 다시 작곡해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듀엣으로 불러 유명해졌다.테너 박인수는 대중가수 이동원과 함께 노래했다는 이유로 국립오페라단에서 제명당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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