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의 출범 2개월여가 지났다. 새 정부의 당면 과제는 단연 경기 부양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 경제는 침체의 터널을 지나오고 있다. 성장률은 둔화됐고 기업들은 대내외 악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정치적 불안정 상황도 더해져 경기 반등에 악재가 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다. '대한민국호'는 악재를 딛고 재도약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제 정치적 불확실성도 해소됐다. 새 정부는 출범 초부터 각종 경기부양책을 펼치고 있다. 이를 마중물로 경제 대도약을 이끌 주요 산업군의 핵심 기업들도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다행히 'K'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제품과 기술의 브랜드가 성과를 내고 있다. 주요 성과를 기반으로 경제의 새 활로를 이끌어내고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새롭게 만들어야 할 때다. <비즈니스플러스> 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주요 산업군의 도전과 성과 등을 조망해본다.[편집자주] 비즈니스플러스>
국내 방산·조선업계가 글로벌 안보 리스크, 미국 조선업 재건을 기회로 글로벌 진출길이 활짝 열리며 국내 경제 대도약을 이끌 '쌍두마차'로 부각되고 있다.
방산업계의 경우, 유럽의 재무장 속도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맞물리며 '골든타임'이 찾아왔다는 분위기다. 수주·생산·납품 역량을 앞세운 K방산의 질주는 당분간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IG넥스원 등 K방산 빅4 업체가 글로벌 무기 시장의 판을 흔들고 있다. 방위산업은 단순 제조업을 넘어 전략 수출 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올해 2분기 K방산이 사상 최대 실적과 수주고를 동시에 기록하며 글로벌 방산시장의 '게임체인저'로 부상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56.3% 증가한 8644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매출은 6조2735억원, 순이익은 2877억원으로 각각 168.7%, 79.9% 증가했다.
역대급 실적의 배경에는 지상무기 수출 급증이 있다. 폴란드로 향한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등의 수출이 본격화되면서 지상방산 부문이 실적을 견인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 1조4251억원, 매출 11조8577억원으로 반기 기준 최대 실적을 기록했으며 지난 7월 4조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현대로템도 방산 호황에 힘입어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2분기 영업이익은 257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8.4% 증가했으며 매출은 1조4176억원으로 29.5% 늘었다. 특히 수주잔고는 21조6368억원에 달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 4일 발표된 폴란드 K2 전차 2차 수출 계약은 총 9조원 규모로 K2 계열 전차 180대와 파생형 81대 공급이 포함된 대형 계약이다. 폴란드 2차 계약 금액은 3분기 실적에 반영될 예정이다.
항공 부문에서도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갔다. 2분기 영업이익은 852억원으로 전년 대비 14.7% 증가했고 순이익은 571억원으로 3% 늘었다. 다만 매출은 8283억원으로 7.1% 감소했다.
KAI는 KF-21 전투기 개발, LAH 양산, 상륙 공격헬기 등의 국내 사업 외에도 FA-50 전투기를 중심으로 말레이시아, 폴란드 등과의 수출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LIG넥스원은 매출 9454억원, 영업이익 77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56.3%, 57.9% 각각 늘었다. 유도무기 분야 수출 확대와 UAE 수출이 실적 개선의 주요인이다.
국내 방산업체들이 고르게 견조한 실적을 보이며 'K방산 4강'의 수주잔고는 100조원을 돌파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31조7000억원, KAI가 26조6733억원, 현대로템이 21조6370억원, LIG넥스원이 23조4665억원으로 각각 수년치 일감 확보에 성공했다.
올 상반기 기준 이들 빅4 기업의 수주 실적은 역대 최대 수준이며 수익성과 성장성 모두에서 황금기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수주 호조의 배경에는 유럽의 재무장 기조가 있다. 나토는 2035년까지 회원국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까지 확대하기로 합의했으며 특히 러시아 재침공 가능성에 직면한 동유럽 국가들은 노후화된 무기 체계를 전면 교체 중이다.
러시아는 2024년 기준 약 3만6000대의 주요 무기를 보유 중이나 이는 전쟁 전보다 절반 가까이 감소한 수준이다. 반면 부카레스트 나인(B9), 독일, 프랑스, 북유럽 등 주요 나토 회원국들의 무기 총량을 모두 합쳐도 러시아 전력의 3분의 2 수준에 그쳐 향후 무기 수요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이러한 안보 수요 확대는 K방산에 새로운 기회로 부각되고 있다. EU는 '바이 유러피안'(Buy European) 정책을 강화하며 자국산 무기 우선 구매를 강조하고 있지만 공동 생산 및 기술이전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수입을 허용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산 K9 자주포, K2 전차, FA-50 경공격기 등은 이미 폴란드, 루마니아, 핀란드 등에서 실전 배치돼 성능을 입증한 바 있다. 빠른 납기와 유연한 조건 협상 역량까지 더해져 유럽 시장 내 경쟁력을 인정 받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성능 입증을 마친 무기 플랫폼과 납기·가격 경쟁력을 모두 갖추고 있어 유럽 방산 시장 내 대체 불가능한 공급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선업, 미국 조선업 부활 프로젝트에 수주 확대 기대
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정 후속 조치로 일명 '마스가(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조선업계가 주목받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 입장에서는 이참에 미국 내 조선 프로젝트를 대거 수주할 것이란 기대가 큰 상황이다.
정부는 최근 미국과의 무역 협의를 통해 1500억달러(약 209조원) 규모의 조선 협력 펀드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전체 3500억달러(487조원) 대미 투자 펀드의 43%를 차지하는 단일 업종 최대 규모 펀드로, 국내 조선사들의 대미 투자를 공적 금융 중심으로 뒷받침하는 구조다.
조선업이 쇠퇴한 미국으로서는 당장 중국의 해군 군비 증강에 대응하기 위해 함정 MRO(Maintenance, Repair & Overhaul) 사업 강화가 절실하다. MRO는 함정과 지원 선박의 유지, 보수, 정밀검사를 의미한다. 영국 군사 정보 업체 제인스에 따르면, 글로벌 함정 MRO 시장 규모는 지난해 577억6000만달러(약 81조원) 수준으로 미국만 따져도 연간 약 20조원에 달한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한국이 제안한 '마스가 프로젝트'에 협상 타결로 답했다. 중국의 해양 패권 위협에 맞서 미국이 한국의 기술력을 활용하려는 기술 동맹 성격이다.
국내 정치권도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국방부 등과 협의를 거쳐 '마스가 프로젝트 지원법'(한미 간 조선 산업의 협력 증진 및 지원에 관한 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HD현대, 한화오션 등 대형 조선사와 정부가 미군 MRO 사업, 군함 제작과 관련한 특화 조선소를 세우는 내용을 담았다.
업계도 분주하다. 조선업체 '빅3'인 HD현대 조선부문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최근 각 사 임직원이 참여한 한미 조선 협력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TF는 조선 업계와 정부가 소통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조선 빅3는 일단 TF 체제로 마스가 프로젝트를 준비한 뒤, 정부와 민간 전문가가 모두 참여하는 '한미 조선동맹 강화 협의체'로 확대할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특화 조선소를 짓고, 미국에서는 조선 3사가 현지 조선소를 인수하거나 신규 조선소를 세운 뒤 한국의 첨단 상선 건조 기술을 전수하는 식으로 미국 조선업 부활을 도울 것으로 보인다. 마스가 TF가 국내 특화 조선소와 미국 현지 조선소 설립 등 '투트랙'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국내 조선 업체의 대미 진출 전략이 달라 이를 조율하는 일도 마스가 TF의 핵심 과제다.
한화오션을 계열사로 둔 한화그룹은 지난해 말 약 1억달러(1400억원)를 투입해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는 등 인수합병(M&A)에 힘쓰는 중이다. 필리조선소는 설비 확충과 일자리 창출, 기술 이전 등을 추진 중이다. 현재 연간 1~1.5척 수준에 그친 건조 능력을 2035년까지 10척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한화는 미국에 조선소를 추가로 짓거나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앨라배마, 캘리포니아주에 조선소가 있는 호주 해양방산 기업 오스탈 지분(9.9%)도 확보한 상태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최근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을 만나 "미국 내 신규 조선소 건설, 조선 인력 양성, 조선 관련 공급망 재구축, 선박 MRO 등을 주도하겠다"고 강조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미국 현지 조선사와의 건조 협력, 기술 공유를 통해 미국 시장 입지를 넓히는 모습이다. 최근 미국 방산 1위 조선사인 헌팅턴잉걸스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선박 생산성 향상, 첨단 조선 기술 협력에 나섰다. 잉걸스조선소에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을 활용, 선박 건조 비용을 줄이면서 납기를 개선하는 노하우를 전파하는 중이다. 잉걸스조선소는 최근 미 해군이 발주한 이지스 구축함의 3분의 2를 건조하는 등 대형 상륙함, 경비함을 만들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또 미국 조선사 에디슨슈에스트오프쇼어와 협업해 2028년까지 중형급 액화천연가스(LNG) 이중연료 컨테이너선을 공동 건조하기로 했다. HD한국조선해양이 선박 설계, 기자재 구매, 건조 기술 지원 등을 도맡는다. 최근에는 HD현대중공업이 미 해군 7함대 소속의 4만1000t급 화물 보급함 'USNS 앨런 셰퍼드'(Alan Shepard)함의 정기 정비 사업을 수주했다. 한미 양국이 조선 협력 기반의 관세 협상에 합의한 뒤 첫 MRO 사업 수주 성과다. 삼성중공업도 미국 현지 조선소와 공동 건조, 사업 확대 등 다양한 협력 기회를 모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보증을 포함한 정책금융이 확실히 뒷받침된다면 지분 투자든 시설 투자든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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