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박정현 기자 |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서 충성도 높은 골수팬을 확보해 온 왓챠가 최근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하며 위기에 직면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왓챠가 지난해 11월 만기가 도래한 전환사채(CB)를 상환하지 못하면서 채권자 중 한 곳인 인라이트벤처스가 회생 신청을 진행했다. 법원은 내년 1월 7일까지 제출되는 회생계획안을 토대로 인가 여부를 결정한다. 회생 불가 결정 시 파산 절차로 이어진다.
왓챠는 이번 결정이 서비스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정상적인 운영을 이어가고 환불 및 해지 조건도 기존 약관대로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이용자와 파트너사와의 투명한 소통을 약속했다.
왓챠의 기업회생 소식에 구글 플레이스토어 및 아이폰 앱 스토어에서는 왓챠의 계속된 서비스를 촉구하는 고객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왓챠는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어온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2011년 설립된 왓챠는 영화 개인화 추천 서비스로 출발해 2016년 스트리밍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지만 그 해 한국 시장에 진출한 넷플릭스의 공세에 기를 펴지 못했다. 여기에 2010년 출범한 티빙이 CJ ENM과 손잡고 대규모 콘텐츠 투자를 단행하면서 서서히 국내 OTT 시장 경쟁에서 점유율이 떨어졌다.
◆ 골수팬에도 기업회생 신청…"틈새시장 지키며 반등 모색"
왓챠는 국내에 덜 알려진 작품을 발굴·수급하며 '시네필(cinéphile,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국내 OTT 중 가장 많이, 넷플릭스보다는 1.5배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 콘텐츠 중 상당수가 고전이나 비주류 작품으로 독립영화, 예술영화, 90년대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또 왓챠와 연동된 왓챠피디아는 '빨간 안경’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코멘트, 영화 관계자 인터뷰 등 다양한 콘텐츠로 깊이 있는 영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왓챠 관계자는 "왓챠피디아의 방대한 이용자 평가 데이터와 자체 개발한 추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체르노빌’이나 ‘킬링이브’ 등 희소성 있는 작품을 발굴·수급하며 틈새시장을 지속적으로 공략해 왔다"고 전했다.
왓챠 입장에서도 최신작보다 이전 콘텐츠를 제공할 시 저렴한 수급 비용을 활용해 더 많은 작품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에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 대형 OTT와의 경쟁 속에서도 독립·예술영화와 해외 콘텐츠 중심의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충성도 높은 마니아층을 확보해 왔다.
하지만 웨이브 출범 이후 OTT 업계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과 예능, 애니메이션, 실시간 방송 등으로 전략을 다각화하면서 시장 흐름이 변했다.
왓챠는 넷플릭스가 2027년까지 한국 콘텐츠에 25억달러(3조5000억원)를 투자하고 티빙이 올해까지 CJ ENM과 함께 5조원 규모의 제작비를 투입하는 대규모 제작 공세와는 거리를 뒀다. 제한된 예산으로 ‘좋좋소’ 같은 오리지널 시리즈를 흥행시키기도 했으나 자본력 한계로 2022년부터 오리지널 제작을 중단하며 제작 역량이 축소됐다.
콘텐츠 제작에 따른 부채 부담은 OTT 업계 전반의 문제지만 왓챠는 티빙·웨이브처럼 수천억원대 적자를 감내할 수 있는 배경이 없다. 실제로 티빙은 2020년 이후 누적 적자가 1000억원대에 이르며 이를 웨이브와의 합병으로 해결하려는 상황이다.
왓챠 관계자는 “(왓챠 뿐만이 아니라) 2022년부터 주요 OTT들이 오리지널 제작을 줄이는 추세인데다 콘텐츠 수급 비용이 너무 높아 업계 전체의 문제"라며 “제작에 방점을 둔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제작보다는 기존 서비스 강화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왓챠가 법정관리 상태에 있어 서비스 확장과 제작 역량 강화 모두 쉽지 않은 것이다.
기대했던 해외 사업도 투자를 받는데 실패했다. 왓챠는 2021년 일본과 동남아 시장에 진출하며 국내 OTT 최초 해외 진출 타이틀을 얻었으나 현재는 정체된 상태다. OTT 해외 확장은 대규모 자본 투입이 필수지만 왓챠는 일본 진출 이후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해 확장에 제약을 받았다. 이로 인해 K-콘텐츠 인기가 높아진 상황에서도 지속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활로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번 기업회생 절차는 경영 정상화 목적보다는 투자금 회수 성격이 강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회생 절차는 이례적으로 투자사인 인라이트벤처스가 신청했는데 이는 회생 과정에서 투자 손실이 불가피하지만 투자금 회수가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회생 절차가 시작된 이후 왓챠가 새로 빌린 돈(차입금)이 공익 채권으로 분류돼 기존 채권자들보다 먼저 돈을 받을 권리가 생긴다.
업계에서는 회생계획안 인가 전 인수합병(M&A)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틈새시장과 독립·예술영화 콘텐츠 강점을 노리는 투자자나 OTT 기업이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다만 인수 시 채무 부담은 큰 리스크다. 왓챠는 감사보고서가 공개된 2019년부터 꾸준히 적자를 기록했다. 영업손실은 2019년 92억원에서 2020년 155억원으로 불어났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248억원, 555억원, 221억원의 손실을 냈다. 현재 부채가 자산을 앞질러 완전자본잠식에 빠져 있다.
한때 ‘시네필’ 충성 고객을 보유했던 왓챠는 기업회생에 묶여 새로운 전략을 내놓지도, OTT 공룡들의 공격적인 투자 공세에 대응하지도 못하게 됐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왓챠에서만 개봉한 독립영화 수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업계는 왓챠가 꾸준히 예술영화 신작을 소개하며 문화 다양성에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이에 대해 왓챠 관계자는 “왓챠는 신작 중심 대형 OTT가 제공하지 않는 예술·고전·독립·실험영화 등 컬렉션과 일본·중국 등 해외 콘텐츠를 수급해 기존 이용자를 만족시켜 왔다”며 “왓챠파티 등 새로운 감상 기능을 도입해 서비스 매력도를 높여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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