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은 이글거리고 땅 위의 그림자마저 짧아진 오후, 인도네시아 코모도섬의 절대 포식자가 느릿하지만,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평균 길이 3m, 몸무게 150kg에 달하는 코모도왕도마뱀이다.
이 동물은 멸종한 육식 공룡의 후손으로 추정되며, 그를 증명하듯 강인한 체구와 사냥 능력을 지녔다. 곤충부터 대형 포유류까지 가리지 않고 제압하며, 섬의 먹이사슬 최정점에 군림한다. 먹이가 부족한 환경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한 번에 몸무게의 80%까지 먹을 수 있는 ‘무적의 포식자’다.
거대 포식자의 신체와 사냥 방식
코모도왕도마뱀은 사슴, 산돼지, 물소 같은 대형 포유류를 단독으로 제압할 수 있다. 톱니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강한 발톱은 먹잇감을 조각내기에 충분하다. 바람이 잘 불면 10km 밖 먹이 냄새도 맡을 수 있는 예리한 후각은 사냥 성공률을 높인다. 성체의 일부는 작은 개체를 사냥하는 동족포식 성향을 보인다.
어린 개체는 곤충, 작은 새, 작은 파충류, 소형 포유류를 먹으며, 성체의 위협을 피해 나무 위에서 생활한다. 이러한 생활 습성은 코모도섬에서 사라진 대형 육식 포유류의 빈자리를 대신하며 최상위 포식자로 자리잡게 했다.
코모도왕도마뱀의 타액에는 50종 이상의 박테리아가 서식한다. 썩은 고기를 먹는 식습관 때문에 형성된 이 세균들은 물린 상처를 빠르게 감염시켜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물린 뒤 치료하지 않으면 혈류로 퍼진 독성 때문에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최상위 포식자를 만든 ‘주황색 톱니’
지난 2024년 런던 킹스칼리지런던대 연구팀은 코모도왕도마뱀의 치아 표면이 철분이 풍부한 주황색 법랑질로 덮여 있다는 사실을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를 통해 발표했다. 법랑질이란 치아를 구성하는 치관 중 가장 최상단에 위치하여 드러난 하얀 빛깔의 조직을 말한다. 연구팀은 이 법랑질이 먹이를 찢어먹을 수 있을 만큼 이빨을 날카롭게 유지하며, 털이나 뿔처럼 소화되지 않는 부분을 게워낼 때 산성 소화액에 부식되는 것을 막아준다고 분석했다.
철분은 특히 이빨 끝과 절단면에 집중돼 있었으며, 주황색 톱니 모양으로 가장자리를 따라 코팅돼 있었다. 그 두께는 머리카락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처음 이 구조를 발견했을 때 연구진은 얼룩이라고 생각했지만, 표본 여러 개를 비교하면서 코모도왕도마뱀 고유의 특징임을 확인했다.
진화와 먹이습성의 관계
연구팀은 치아의 철분이 먹이를 통해 누적된 것이 아니라, 치아 법랑질을 형성하는 세포가 자체적으로 만들어낸다고 결론지었다. 새로 돋아나는 치아에서도 철분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는 코모도왕도마뱀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육식 공룡과도 연결된다. 멸종한 공룡 화석의 치아에서 비슷한 주황색 법랑질이 발견됐으나, 철분은 화석화 과정에서 소실됐을 가능성이 크다.
철분으로 강화된 이빨은 사냥 도구이자, 코모도왕도마뱀이 대형 먹이를 장기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생존 장치다. 특히 사슴 같은 큰 먹이를 조각낼 때, 법랑질의 강도가 유지돼 다음 사냥까지 기능을 잃지 않는다.
번식과 생애 주기
코모도왕도마뱀의 번식기는 먹잇감이 풍부한 5~6월이다. 암컷은 산란을 위해 굴을 파거나 칠면조의 둥지를 이용한다. 7~8월에 알을 낳고 약 9개월 동안 품어 이듬해 3~4월 새끼가 부화한다. 알의 개수는 15~30개로, 부화한 새끼는 곧바로 나무 위 생활을 시작해 성체의 위협을 피한다. 성체가 되기까지 약 6년이 걸리며, 야생에서의 수명은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동물원에서는 20년 이상 생존한 기록이 있다.
코모도왕도마뱀은 바다를 헤엄쳐 다른 섬으로 이동할 수 있을 만큼 수영 실력이 뛰어나다. 또한 성체 수컷은 생태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격렬한 싸움을 벌이는데, 경쟁은 치명상을 입히기보다 힘겨루기에 가깝다.
코모도왕도마뱀은 지금도 코모도섬의 생태계 최상단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먹이 자원과 서식지가 줄어드는 환경 변화 속에서 그들의 미래는 과거처럼 절대적이지 않다. 강력한 신체와 독특한 치아 구조를 지녔더라도, 생태계 균형이 깨지면 최상위 포식자의 지위도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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