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1960년대 산업화 초입에 태동해 반세기 넘게 산업 현장을 함께 걸어온 두 제지 기업이 있다.
하나는 삼성 계열에서 분리돼 종합 제지사로 자리매김한 한솔제지, 다른 하나는 생활용 위생용지와 백판지를 통해 생활문화의 변화를 그려온 깨끗한나라다.
사업 구조와 제품 포트폴리오는 다르지만, 최근 두 회사는 '브랜드 평판' 지표에서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올해 1월에는 한솔제지가 1위, 깨끗한나라가 2위였으나 7월 조사에서는 순위가 뒤바뀌었다.
소비자 인식과 산업 현안이 맞물린 이 시점에서 <뉴스락>은 두 기업의 현재 위치와 향후 과제를 짚어본다.
오너 일가 중심 지배 구조... 세대교체로 새 기조 모색
두 회사의 제품군과 영업 무대는 다르지만, 오너 일가 중심의 지배 구조와 최근 세대교체라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한솔제지(대표 한경록)는 1965년 '새한제지 공업주식회사'로 출발해 같은 해 삼성에 편입됐다.
1979년 업계 최초 제지연구소 설립, 1981년 연간 100만 톤 생산 돌파, 1987년 국내 최초 감열지 개발 등 굵직한 기술 이정표를 세우며 성장했다.
1991년 삼성에서 분리돼 한솔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재편된 이후, 2013~2015년에는 유럽 감열지 컨버팅 3사를 잇달아 인수하며 특수지·감열지 분야로 외연을 확장했다.
현재는 단일 법인 기준 국내 제지업계 매출 1위이자 감열지·특수지 분야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대교체 흐름도 뚜렷하다.
지난해 11월,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의 맏사위이자 인쇄·감열지 사업본부장과 해외법인장을 지낸 한경록 씨가 신임 대표로 선임됐다.
한 대표는 2014년 그룹 합류 이후 전략·마케팅·영업을 두루 거쳤고, 2022년부터 인쇄·감열지 사업본부장을 맡아 글로벌 공략을 주도했다.
한솔제지 관계자는 "‘전략·마케팅 임원, 미국 법인장, 인쇄·감열지 본부장을 두루 거친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 사업 경쟁력 강화와 신규사업 성과 창출을 주도해 주주가치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깨끗한나라(대표 최현수)는 1966년 대한팔프공업으로 출범해 1975년 상장, 1985년 금강제지 인수로 생활용지 사업을 본격화했다.
1991년 대한펄프로 사명을 변경하고, 2011년 현재 사명을 채택하며 생활용품과 백판지 투트랙 체제를 확립했다. 2022년에는 청주공장에 스마트 밀롤 창고를 가동하는 등 제조·물류 효율화와 디지털 전환을 병행해왔다.
현재는 생활용품과 백판지를 양축으로 국내 생활용지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견 제지사로, 생활용품 부문에서 안정적인 시장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
깨끗한나라 역시 올해 3월 주총과 이사회를 거쳐 창업주 고(故) 최화식 명예회장의 손녀인 최현수 대표와 이동열 대표의 각자대표 체제를 공식화했다.
최 대표는 2006년 입사 이후 마케팅총괄팀장, 생활용품사업본부장, 총괄사업본부장을 거쳐 2019년부터 대표를 맡아왔다. 지난 2월에는 한국제지연합회 제36대 회장에 선임돼 업계 리더십을 넓혔다.
최 대표는 당선 소감에서 "업계를 선도하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의 자세로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며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는 리더가 되겠다"고 밝혔다.
한솔제지·깨끗한나라, 원가·수요 이중 압박 속 '실적 방어전'
국내 제지업계의 대표 주자인 한솔제지와 깨끗한나라는 원가 부담과 글로벌 수요 둔화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도 각자의 주력 사업과 전략을 앞세워 실적 방어에 나서고 있다.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지류 생산량은 연간 약 1100만 톤에 달해 세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에너지 비용·원자재 가격 상승과 환경규제 강화가 수익성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두 기업은 주력 품목별 경쟁 전략을 강화하며 대응하고 있다.
한솔제지는 최근 3년간 매출 2조 원대 초중반을 유지하며 외형 안정성을 보여왔으며, 감열지·특수지 등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 확대와 해외 법인 효율화가 주된 방향이었다.
2022년에는 글로벌 수요 회복과 원가 효율화로 매출 2조 4579억 원, 영업이익 1302억 원을 기록했으나, 2023년에는 경기 둔화와 원재료 부담으로 매출 2조 1941억 원, 영업이익 472억 원으로 하락했다.
지난해는 매출 2조 2158억 원을 유지했지만, 원가 상승과 환율 변동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220억 원에 그쳤다.
올해 1분기에는 수익성이 일부 개선되며 매출 5756억 원, 영업이익 203억 원을 기록했다.
흥국증권 관계자는 "한솔제지는 최근 실적 부진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점진적 개선과 환경부문 일회성 소멸에 따른 실적 정상화, 주가 재평가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깨끗한나라는 최근 3년간 생활용품과 백판지를 양축으로 5~6천억 원대 매출을 유지해왔다.
같은 기간 생활용품 부문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백판지 부문 효율화가 핵심 과업이었다.
2022년에는 생활용품 부문에서 안정적인 판매를 이어가며 매출 6065억 원, 영업이익 38억 원을 올렸으나, 2023년에는 백판지 부문의 수익성 악화로 매출 5149억 원, 영업이익 –189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는 매출 5370억 원, 영업이익 –9억 원으로 다시 한 차례 감소했고, 올해 1분기에는 매출 1307억 원, 영업손실 38억 원을 기록했다.
한국신용평가 관계자는 "청주공장 폐합성소각로 투자에 따른 높은 자금 소요가 지속되는 가운데, 4월 신종자본증권 발행 및 차입금 차환으로 대응 중이나 영업현금창출력 저하를 감안할 때 유동성에 대한 지속 모니터링이 필요하며, 당분간 재무부담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안전·재무·지배구조 리스크 부각... ESG 대응은 '각자도생'
한솔제지와 깨끗한나라는 산업 내 입지와는 별개로, 반복되는 산업안전 사고나 재무 구조 취약성, 지배구조 불안정성 등 구조적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다.
또한 ESG 경영이 제지업계 전반의 공통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두 기업은 각기 다른 대응 전략과 실행 체계를 드러내고 있다.
한솔제지는 산업안전 관리 부실이 반복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7월 16일 오후, 대전 신탄진공장에서 신입 직원이 폐지 투입 설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유족 측은 현장 대응 체계 전반에 문제를 제기했고,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신탄진 공장은 2022년에도 하청 근로자가 활성탄에 깔려 숨지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전례가 있어, 반복된 안전사고가 리스크로 지목되고 있다.
한솔제지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 진단을 통한 안전관리 체계 점검과 자동화 설비 확대 등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깨끗한나라는 지속적인 실적 부진과 함께 재무건전성 악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경영 자금을 오너 일가에 의존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깨끗한나라는 올해 6월에도 구미정 씨로부터 100억 원을 차입했으며, 유사한 형태의 내부 자금 지원이 반복됐다.
구 씨는 최현수 대표의 모친으로 깨끗한나라 지분 약 4.9%를 보유하고 있으며,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고모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달 방식은 단기 유동성 확보에는 도움이 되지만, 외부 자금 유치보다 가족 내부 지원에 기댄 구조를 고착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배구조 역시 대표에게 힘이 실리지 않는 형태다.
지분 구조를 보면, 최대주주는 최현수 대표의 동생인 최정규 이사(16.12%)이며, 최 대표의 지분은 7.70%에 불과하다.
여기에 지난 3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부친 최병민 회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하면서, 경영 핵심 권한이 동생과 부친에게 집중된 구도가 유지되고 있다.
때문에 최 대표만의 독자적인 경영 철학과 방식이 스며들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ESG는 공통 과제지만 결은 다르다.
한솔제지는 생산공정 고효율화와 에너지 전환, 온실가스(Scope 1·2) 감축 등 공정·배출 관리에 힘을 싣고, 전담 조직이 이를 수행한다.
깨끗한나라는 폐합성소각로 신설, 친환경 생리대 확대, 위생용품 기부 등 제품·자원순환·생활 밀착형 과제에 방점을 찍고, ESG 위원회와 사무국 등 전담 체계를 통해 실행한다.
한국기업평가 관계자는 한솔제지에 대해 "다각화된 지종 포트폴리오로 국내 수위권의 시장지위에 기반한 사업안정성이 우수하다"며 "환경부문 대손상각비가 감소하며 향후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깨끗한나라에 대해선 "이원화된 사업포트폴리오 보유로 특정지종의 단기 수급 상황 변동에 대한 시황 대응력을 보유했다" 면서도 "부문 실적 부진과 전력비 부담 지속 등으로 중단기 수익성 개선 여력이 제한적이며 영업 현금흐름 대비 과중한 재무부담과 신용조건 만기 대응능력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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