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이 한창인 가운데 중국의 주요 대학들이 '인공지능(AI) 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급부상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인재 배출 역량이 높은 대학이 많다는 의미는 향후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 효과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AI 반도체, 자율주행, 스마트 제조, 로보틱스 등 첨단 산업 전반에서 중국 대학 출신 창업자들이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의 일부 대학들이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미래 기술 인재 양성소로서 산업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연구순위 톱 10 중 8곳이 中 대학…미국 위협하는 AI 기술패권 요람 '칭화대(清华大)'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가 발표한 '2024 네이처 인덱스'에 따르면 세계 대학별 연구 순위 상위 10위권 대학 중 중국 대학이 무려 8곳이나 됐다. 미국은 하버드대(1위)와 MIT(10위)만이 이름을 올렸고 나머지 2위부터 9위까지는 중국과학원대(2위), 중국과기대(3위), 베이징대(4위), 난징대(5위), 저장대(6위), 칭화대(7위), 중산대(8위), 상하이교통대(9위) 등이 차지했다. 불과 8년 전인 2016년 베이징대(6위) 한 곳만 포함됐던 것과 비교하면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다. 대학의 연구 성과는 산업 분야 기술 경쟁력의 근간으로 여겨진다.
중국 대학들의 연구 성과는 AI 분야에서 유독 강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AI 분야 상위 3개 국제 학회(ICML, NeurlPS, ICLR)에서 발표된 논문 저자 수 순위에 따르면 중국 기관(대학 포함)이 상위 100개 중 31개를 차지했다. 미국(37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중국의 논문 성과는 이공계 특화 대학들이 주도했다. 기관 별 저자 수 순위만 놓고 보면 칭화대가 2위를, 베이징대와 저장대는 공동 6위를 각각 차지했다. 중국 AI 생태계 중심에 대학이 자리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결과다.
실제로 중국 현지에서 '칭화대'(清华大)는 중국 AI 산업의 심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칭화대는 중국 정부가 2018년 AI를 국가 핵심 미래기술로 지정하기 이전부터 AI 교육과 연구 기반을 꾸준히 다져왔다. 특히 2004년 컴퓨터 공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 수상자인 야오치즈(Yao Qizhi) 교수가 칭화대에 합류하면서 출범한 '야오반(姚班)'은 AI 인재 육성의 결정판으로 불리고 있다. 야오반은 이공계에 강점을 지닌 수재들만 따로 모아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전국의 수재들이 모이는 야오반과 함께 창업 지원 연구실 'X랩'이 설립되면서 연구-창업 생태계가 완성됐다. 이곳에서 자율주행, 안면인식, 언어모델 등 AI 핵심 기술 기업들이 줄줄이 배출됐으며 그 중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 인 비상장스타트업)으로 성장한 기업도 무려 33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칭화대는 연구와 창업뿐만 아니라 산업·정치 네트워크 부분에서도 독보적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 "부와 명예를 다 얻으려면 칭화대를 졸업해야한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될 정도다. 당장 중국의 과거와 현재 지도자, 미래 지도자 유력 후보가 모두 칭화대 출신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 상하이시 당서기이자 차기 지도자 후보로도 거론되는 천지닝(陳吉寧)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외에도 중국 중앙정부와 각 지방정부에 속한 고위 관료 중 칭화대 출신은 무려 3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중국 1위 보안 AI 기업 360그룹 창업자 저우훙이(周鸿祎), 로봇 소프트웨어 기업 디과 로보틱스의 CEO 왕충(王冲) 등 성공한 졸업생들이 직접 교내 멘토로 참여해 기술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중국 최대 테크 기업 화웨이 역시 매년 막대한 연구비와 산학연계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기술 경쟁력을 갖춘 중국 AI 스타트업을 이끄는 인재 중 상당수도 칭화대 출신이다. 중국 기업 정보 플랫폼 IT쥐즈(IT橘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AI 스타트업 창립멤버 중 학력을 공개한 인물 중에는 칭화대 출신이 351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북경대(184명), 상하이교통대(138명), 저장대(102명) 등의 순이었다.
최근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지푸 AI'(Zhipu AI)도 칭화대 컴퓨터학과 96학번 장펑(张鹏)이 칭화대 동문들과 함께 설립한 AI 스타트업이다. '지푸 AI'는 2019년 칭화대 연구소에서 분사해 설립된 스타트업으로 현재 중국 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형 언어 모델(LLM) 개발사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해당 기업의 'ChatGLM' 시리즈는 중국어 자연어처리(NLP) 분야에서 뛰어난 성능을 인정받아 텐센트, 알리바바 등 대형 IT 기업과 정부로부터 원화 약 7200억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 유치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지푸 AI'의 현재 기업 가치는 약 4조원으로 연내 IPO를 앞두고 있다.
현재 AI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챗gpt 운영사 오픈AI 역시 최근 '지푸 AI'를 견제 대상으로 지목한 상태다. 오픈AI는 최근 블로그 게시글을 통해 "지푸AI가 주목할 만한 진전을 이뤘다"며 "사실 글로벌 AI 선두 경쟁에서 가장 견제되는 기업은 딥시크가 아닌 지푸 AI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외에도 '문샷 AI'(Moonshot AI), '미니맥스'(MiniMax), '바이추안 AI'(Baichuan AI) 등 칭화대 출신이 만든 스타트업들도 미국 중심의 AI 생태계를 위협하는 주요 기업으로 지목됐다. 문샷 AI의 공동창업주 양즈린(杨志林)과 장하오(张昊), 미니맥스의 옌쥔지에(闫俊杰), 바이추안 AI의 왕샤오촨(王小川) 등은 모두 야오반과 X랩을 거쳤다.
북경대(北京大) 기계학습, 상하이교통대(上海交通大) 자율주행, 저장대(浙江大) 육룡(六龍)
칭화대 외에도 글로벌 AI 기술 패권과 관련한 다른 중국 대학들의 역할도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북경대(北京大)는 수학과 통계 기반의 이론 연구를 중심으로 자연어처리(NLP)와 기계학습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북경대 출신의 주총순(株總順)이 2018년 설립한 '디피 테크놀로지'(DP Technology)는 중국의 대형 사모펀드인 엠에스에이 캐피탈(MSA Capital), 로얄 밸리 캐피탈(Loyal Valley Capital), 종윈 캐피탈(Zhongyuan Capital) 등으로부터 원화 약 13조5000억원을 투자받으며 단숨에 글로벌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AI 기반 문자 모델링 스타트업으로 주목받으며 지난해 글로벌 리서치 기업 CB 인사이트가 선정한 올해의 'AI 100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상하이교통대((上海交通大)는 AI 기술의 융합·응용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 자율주행, 의료, 스마트 제조 분야를 중심으로 실무 인재를 대거 배출하고 있다. 특히 화웨이와 공동 운영 중인 'ICT 아카데미'는 연간 30회 이상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약 20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집중 교육을 실시한다. 올해에는 이례적으로 학부생 150명을 추가로 선발했으며 이들 전원이 AI 관련 학과에 입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하이교통대는 자동차와 관련된 AI 기술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졸업생들은 자율주행 산업의 핵심 인력으로 활약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3년 설립된 '이투 테크놀로지'(Yitu Technology)다. 이 기업은 창업 멤버 전원이 상하이교통대 출신이며 우소홍(吴晓洪) CEO, 샤용펑(夏永峰) COO 등 핵심 인력 대부분이 10년 이상 자동차 AI 연구 및 실무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중국 벤처투자 기업 '시후 캐피탈'(Xuhui Capital)로부터 수천만 위안 규모의 투자를 유치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자율주행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봇 오토'(Bot Auto)의 창업주 후샤오디(侯晓迪), '허사이 테크놀로지'(Hesai Technology)의 창업주 쑨 카이(孙开) 등도 모두 상하이교통대 출신이다.
저장대(浙江大)는 항저우시에 위치한 6곳의 AI 유니콘 기업을 일컫는 '항저우 육룡(六龍)'의 등장과 함께 'AI 기술의 요람'으로 급부상했다. 올해 초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중국판 챗gpt 개발사 '딥시크'(DeepSeek)와 더불어 '유니트리 로보틱스'(Unitree Robotics), '딥 로보틱스'(Deep Robotics) '매니코어테크'(Manycore Tech) 등 항저우 육룡(六龍) 중 4곳의 창업주가 저장대 출신이다. 저장대는 칭화대 '야오반'과 더불어 중국 최고 수재 육성 기관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주커전학원(竺可桢学院)'을 운영하고 있다. '딥시크'의 량원펑(梁文峰), '유니트리 로보틱스'의 왕싱싱(王興興), '딥 로보틱스'의 주추궈(朱秋國), '매니코어테크'의 황샤오황(黄晓煌) 등이 모두 이곳 출신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최근 중국의 AI 관련 기술력이 미국의 자리까지 넘보는 배경에는 대학에서 시작된 전문 인재 육성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이 AI 기술력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학을 중심으로 한 체계적인 인재 양성 시스템이 큰 역할을 했다"며 "특히 정부와 기업이 대학과 협력해 연구개발에 집중하면서 실무 능력을 갖춘 인재들이 대거 배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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