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업계에 전례 없는 안전 비상령이 떨어졌다. 건설현장에서 연이어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정부가 최고 수위의 법적 조치를 예고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포스코이앤씨의 반복적 산업재해에 대해 '건설면허 취소'와 '공공입찰 배제' 등을 언급한 데 이어 DL건설은 근로자 사망사고 직후 임원진 전원이 사표를 제출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여기에 정부가 불법 하도급 단속과 현장 안전 점검 강화까지 병행하자 대형 건설사뿐 아니라 중견·중소사까지 현장 분위기는 '최고 경계 태세'로 바뀌었다. 건설업계 전문가들은 정부 기조가 일시적이 아니라 장기적 흐름으로 굳어질 경우 안전사고 관리가 건설사 생존의 필수 요건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포스코이앤씨, 사망사고 여파에 정비·인프라 동시 위축…DL건설, 임원진 전원 사의
이재명 정부의 강경 기조를 촉발한 핵심 계기는 포스코이앤씨의 연이은 산업재해다. 포스코이앤씨는 올해 들어 잇달아 인프라 현장에서 사망사고를 냈고, 일부 사고는 사회적 공분으로 이어졌다. 광명 현장 사망사고 이후 이재명 대통령은 면허 취소와 입찰 제한 등 법적 수단을 모두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퇴출 수준의 제재 가능성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포스코이앤씨는 현재 서울 주요 정비사업 수주전에 한창이었다. 송파 한양2차, 개포우성 4·7차, 성수2지구 등 알짜 사업장이 포함돼 있었고, 작년 한 해 정비사업 수주액만 11조 20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입찰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특히 정비사업은 브랜드 신뢰와 시공 안전성이 곧 조합원 표심으로 이어지는 구조라 이미지 손상은 치명적이다.
더 큰 문제는 이미 수주한 사업장에서도 발생했다. 방배15구역과 이수 우극신 리모델링 등 대형 현장에서 조합원들 사이에 '시공사 재검토' 요구가 확산됐다. 일부 조합원은 계약 해지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놨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사고가 반복되는 건설사를 시공사로 두는 것은 조합 전체 리스크"라며 "계약 단계에서든, 계약 이후라도 해지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다"고 말했다.
인프라 부문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포스코이앤씨는 광명 현장 사망사고 직후 인프라사업 신규 수주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공사 중단 발표 이후 불과 2~3일 만에 일부 현장에서 공사가 재개됐고, 재개 첫날 감전사고가 발생하는 등 안전점검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한 현장 관계자는 "사고 직후 점검이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는 방증"이라며 "공기 압박이 여전히 안전보다 우선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붕괴사고 후폭풍이 장기화된 사례도 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당시 일부 조합은 기존 계약을 해지했고, 공공기관은 입찰 참가를 제한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브랜드 신뢰 회복은 완전하지 않다. 포스코이앤씨 역시 장기적인 사업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DL건설의 경우 경기도 의정부 재개발 현장에서 50대 근로자가 약 18m 높이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강윤호 대표이사, 하정민 최고안전책임자를 포함한 임원진 전원과 팀장, 현장소장이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그간 근로자 사망사고 발생 시 현장소장 교체나 안전관리 인력 보강 정도에 그쳤으나, 이제는 최고경영자 퇴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건설업계에서 안전사고와 관련해 책임경영이 확산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사뿐 아니라 중견·중소사들도 안전관리 투자를 확대하지 않으면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불법 하도급·공기 단축까지 전방위 압박…"사고 이후 대응이 생존 결정"
정부는 안전사고 대응에 그치지 않고 불법 하도급 근절과 공기 단축 관행 개선까지 동시에 겨누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 11일부터 50일간 전국 건설현장을 대상으로 합동 단속에 들어갔다. 대상은 중대재해 발생 현장, 임금 체불·공사대금 분쟁 현장, 불법하도급 의심 현장 등이다.
불법하도급은 광주 학동 철거사고 등 대형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원청-하청-재하청을 거치는 과정에서 공사비가 줄고, 무자격 업체가 위험 공정을 떠맡으면서 사고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업계 고질적 문제인 '공기 단축' 관행도 근본적 개선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건설업계에선 안전사고 관리가 기업 존폐로 직결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대통령이 면허 취소를 언급하는 상황에서 사망사고는 사업 중단뿐 아니라 입찰 배제, 브랜드 신뢰 하락이라는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향후 포스코이앤씨를 비롯한 대형 건설사들은 ▲장기적 안전관리 투자 ▲공정 전반의 재설계 ▲브랜드 신뢰 회복 등을 위한 대외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사고 자체보다도 이후 대응이 향후 수년간의 사업 가능성을 좌우한다"며 "현장에서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입찰 조건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 안팎에선 적정 공기와 단가 보장 없이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 보완뿐 아니라 실행력 강화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추가 비용을 불가피한 투자로 인식하고, 불법하도급 근절과 적정 공기 확보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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