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한국 정부가 미국 상무부에 공식 의견서를 제출하며 폴리실리콘을 포함한 전략 원자재에 대한 수입 제한 조치에 대해 "한국에 대한 특별 고려"를 요청하고 나섰다.
미 정부가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고율 관세 부과 여부를 검토 중인 가운데 한국 정부와 주요 소재·에너지 기업들은 해당 조치가 한국의 對美 투자 및 양국 간 공급망 안정성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강하게 우려했다.
11일 미국 연방 관보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단순한 통상 이슈를 넘어 반도체와 태양광 등 첨단 제조 분야에서 글로벌 공급망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미 정부의 산업정책과 한국 기업의 전략적 투자 간 충돌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국 정부는 미국 상무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폴리실리콘 및 파생 제품에 대한 포괄적인 수입 제한은 한미 경제 협력 기반인 공급망 안정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미국 내 생산기지 확대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국은 현재 태양광 패널과 반도체 칩 생산의 핵심 소재인 폴리실리콘을 국가안보 핵심 자원으로 지정하고 수입 규제를 검토 중이다. 해당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 당시 도입된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그 적용 여부는 향후 수개월 내 결정될 예정이다.
정부는 의견서에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법(CHIPS Act)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첨단 제조시설 투자 유치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실질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한화큐셀은 미국 조지아주에 태양광 패널 공장을, OCI는 텍사스에 셀 생산 설비를 구축해 미국 내 친환경 및 반도체 공급망 강화에 기여 중이다.
그러나 폴리실리콘에 고율 관세가 부과될 경우, 원자재 조달 비용 급등으로 인해 한국 기업들의 투자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되고 이는 향후 투자 지연 또는 철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경고다.
또한 반도체 산업의 경우, 소재 비용 상승은 곧바로 제조단가 상승으로 이어져 미국 정부가 추진 중인 반도체 리쇼어링 전략과도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부의 의견서 제출과 맞물려 주요 민간 기업들도 잇따라 상무부에 입장을 전달했다.
한화큐셀은 "미국 내 생산라인에 사용되는 폴리실리콘을 전량 말레이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며 "말레이시아 및 독일산 폴리실리콘에 대해서는 저율관세할당(TRQ)을 도입하고, 연간 2만 톤까지는 무관세 수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태양광 잉곳, 웨이퍼, 셀 등 중간재에 대해서도 TRQ 물량을 배정하되, 완성 모듈에는 국가를 불문하고 와트당 20센트의 관세를 일괄 적용하자는 방식의 차등화된 관세 정책을 제시했다.
반면 반도체용 폴리실리콘을 공급하는 OCI는 "강제노동과 외국우려단체(FEOC)와의 연관이 없는 공정무역 기반 공급망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반도체 소재에 대한 조사 제외를 요청했다. 미국은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단체 또는 외국기업과 관련된 소재에 대해 공급망 배제를 검토 중이다.
정부는 폴리실리콘 외에도 무역확장법 232조의 또 다른 조사 대상인 무인항공체계(UAS)와 관련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의견서에서 정부는 "특정 국가에 본사를 둔 소수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과점하고 있으며, 이는 공급망 리스크와 함께 사이버보안 위협까지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직접적으로는 명시하지 않았지만 이는 사실상 중국의 드론 업체인 DJI 등 중국계 기업들의 시장 독점을 겨냥한 것이다.
정부는 "한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UAS 분야의 공급망 왜곡과 무기화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다"며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미국은 한국과 같은 신뢰 가능한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 의견서 제출은 단순한 수입 규제 대응을 넘어, 전략산업 전반에 걸친 한미 간 이해관계 조율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미국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첨단 산업의 자국 내 생산 확대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생산 기반 확대를 위해서는 한국·독일·말레이시아 등 우방국 기업들의 소재 및 부품 공급이 필수적이다.
결국 한국 정부의 요청대로 '우방국 유예 조치' 또는 '조건부 면제' 등의 예외 조항이 반영될 수 있을지가 향후 미 정부의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무역 전문가들은 "공급망 다변화와 동맹국 협력이라는 두 축이 충돌하지 않도록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며 "한미 양국이 전략산업 분야에서 실질적인 공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이번 조치의 처리 방식이 중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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