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가장 아름다운 퇴장이 우리에 남긴 질문들[스포츠리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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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가장 아름다운 퇴장이 우리에 남긴 질문들[스포츠리터치]

이데일리 2025-08-09 14:16:3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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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이데일리가 대한민국 스포츠의 미래를 고민합니다. 젊고 유망한 연구자들이 현장의 문제를 날카롭게 진단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합니다. 변화의 목소리가 만드는 스포츠의 밝은 내일을 칼럼에서 만나보세요.

손흥민이 지난 10년간 활약한 토트넘과 아름다운 이별을 가졌다. 이미지=퍼플렉시티 AI 생성


[주형철 칼럼니스트] 2025년 8월. 우리는 축구 경기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했다.

푸른 잔디 위에서 10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손흥민을 향해 동료들은 기꺼이 길을 만들어 존경을 표했다. 어제의 적들마저 다가와 진심 어린 포옹을 건넸다. 관중석에는 ‘Thank You, Captain SON’, ‘우리의 영원한 7번’이라 적힌 플래카드와 함께 원망 없는 박수갈채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한 선수의 이별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무엇이 이 완벽에 가까운 이별을 만들었을까? 첫째는 단연코 ‘선수의 품격’이다. 그는 득점왕의 영광 속에서도 팀을 앞세웠고, 주장 완장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졌으며, 논란의 화살을 동료 대신 자신의 등으로 받아냈다. 실력은 최고였으되 태도는 늘 겸손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쌓아 올린 그의 신뢰가 자산이 있었기에, 소속팀과 경쟁 선수들, 그리고 팬들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의 마지막을 축복할 수 있었다.

둘째는 ‘팬덤의 성장’이다. 과거 스타 선수의 이적에 따라붙던 ‘배신자’ 프레임이나 구단을 향한 맹목적 비난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팬들은 그의 도전을 응원하고 슬픔을 감사로 승화시키는 성숙함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해외에서는 손흥민 동상을 세우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한 명의 위대한 선수가 팬덤 전체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증명한 한국 스포츠사의 기념비적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토록 눈부신 장면 뒤에도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마주해 볼 필요가 있다. 손흥민이라는 거대한 태양 덕분에 지난 10년은 더없이 뜨거웠다. 그의 경기를 챙겨보며 함께 웃고 울었던 그 시간은 결코 ‘과오’가 아닌 ‘축복’이었기 때문이다.

손흥민을 열렬히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 이미지=퍼플렉시티 AI 생성


이제 우리가 마주할 것은 ‘공허함과 허탈감’이 아닌, 그가 남긴 빛을 어떻게 더 넓게 퍼뜨릴 것인가 하는 ‘새로운 과제’다. 박수 소리를 멈추지 말고, 손흥민이 남긴 숙제를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시간이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첫째, 관심의 온기를 나누는 것이다. 손흥민에게 보냈던 열정의 10%만이라도 K리그 경기장으로, 혹은 묵묵히 땀 흘리는 다른 해외파 선수들과 유소년 선수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다. ‘제2의 손흥민’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수동적 팬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그를 찾아내고 키워내는 능동적 지지자가 돼야 한다.

둘째, 성숙한 응원 문화를 일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토트넘과 뉴캐슬 경기에서 보여준 품격 있는 응원 문화를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수를 좀먹는 화살을 막아내는 일이 더욱 절실하다. 선수의 집중력을 흩트리는 루머성 기사, 이적 시장마다 반복되는 확인되지 않은 ‘설(說)’들. 이제는 팬들이 먼저 이런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고,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 용기가 필요하다. 근거 없는 비난에는 반박하고, 사실에 기반한 건강한 비판만을 허용하는 문화적 방패를 우리 모두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

셋째, 선수들이 마음껏 성장하고 뛸 수 있는 ‘기반’을 재점검하는 일이다. 우리는 한 명의 영웅이 탄생하는 기적에 열광했다. 이제는 꾸준히 재능이 발굴되는 지속가능한 ‘선수 육성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껄끄러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일본이 국가대표팀 대부분을 해외파로 구성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시스템이 만들어 낸 ‘선수층의 두께’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그럴 역량이 없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동안 한 명의 스타에게 의존하며 시스템 구축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EPL 무대에서 아름답게 퇴장하는 손흥민. 이미지=퍼플렉시티 AI 생성


그 시스템의 가장 근본은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펼칠 ‘무대’, 바로 경기장 인프라다. 2002년 한일월드컵 덕분에 전용 경기장을 보유할 수 있었으나, 정작 그 경기장의 수익 사업을 위해 잔디를 훼손하고 선수들을 부상 위험에 노출시키는 모습은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한 국가로서 부끄러운 민낯이다.

손흥민의 EPL 퇴장은 한 시대의 끝이 아니다. 한국 축구 팬덤이 성장해야 할 새로운 시대의 신호탄이다. 그의 완벽한 작별은 이제 우리 팬들이 그만큼 성장했음을 보여줄 차례라는 따뜻한 격려와 같다. 한국 축구가 한 단계 도약할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할 이 순간, 이제 팬들이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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