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보이차 생활 입문에 관한 내용으로 서른한 편을 연재했다. 보이차를 마시면 왜 일상에서 좋은 일이 일어나는지, 보이차는 어떤 차인지, 보이차 구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보이차를 맛있게 우리는 법 등에 대해 얘기해 보았다. 보이차는 모으는 재미가 마시는 즐거움보다 더할 수 있는데 보관을 잘못해서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이번 글은 에필로그를 앞둔 마지막 글로 보이차를 어떻게 보관하면 좋을지 알아보기로 한다.
보이차는 후발효라는 특성을 가진 차라서 오래 두고 마실 수 있다. 오래될수록 차향이 더 깊어진다는 월진월향(越盡越香)이라는 말에 가성비 기준의 값싼 차를 많이 소장하게 된다. 보이차는 공식적으로 유통기한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만들어진 지 오래된 차가 더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보이차는 보관되는 시간만큼 변하는 향미를 즐기면서 평생을 같이할 인생 차라고 하겠지만 보관이 잘못되면 못 마시는 차가 될 수도 있다.
보이차 보관 장소로 아파트는 괜찮을까?
가성비를 따져 가격이 비싸지 않은 차로 구입하다 보면 수십 통, 수백 편이 되어 방 하나를 가득 채우게 된다. 차를 더 구입하고 싶은데 보관할 장소가 없다는 푸념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데 차가 점점 늘어나 보관할 장소가 없어서 발코니나 다용도실에 두기도 한다. 보이차 보관 장소로 아파트라는 환경은 최적지라고 할 수 있지만 환기는 가끔, 채광은 햇볕이 들지 않으며, 냄새가 없는 곳이어야 한다.
아파트는 겨울에는 가습을 해야 할 정도이고 여름 장마철이라도 에어컨으로 습도를 조절하니 습기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온도 또한 여름이나 겨울이나 사람이 생활할 정도면 차도 적당하다고 보면 되겠다. 아파트에 차를 보관하면서 온습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몇 가지는 유념해야 한다. 보통 보이차의 보관 조건에서 습기를 가장 염려하지만 그보다 더 조심해야 할 게 따로 있다.
습도가 높은 장마철을 지나면서 간혹 하얀 곰팡이-백상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가을이 되면서 건조해지면 사라지니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환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습도가 높은 환경이 지속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아파트에서 그런 환경인 경우는 잘 없으니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한번 피해를 보면 차를 버려야 하는 조건의 장소는 잡내가 배는 환경이다.
보이차에서 냄새는 무조건 잡내라고 보아야 한다. 반찬 냄새, 화장품 냄새, 향수의 향기라도 보이차 보관에서는 최악의 조건이 된다. 통풍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안방 파우더룸, 주방 근처에서 밸 수 있는 반찬 냄새, 옷장 한 칸에 차를 보관했을 때 밸 수 있는 향기 성분은 보이차 보관에서 치명적인 결과가 나오게 된다. 백상의 흔적으로 다소 피해를 본다고 하면 잡내가 밴 차는 마실 수 없어서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죽포로 싼 한 통과 포장지로 싼 한 편의 보관은?
일곱 편 들이 한 통은 대나무 죽순 껍질에 싸여 있다. 한 통으로 보관하고 있는 차는 그대로 두어도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죽포를 헐어 낱개가 되면 보관하는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 포장지를 풀지 않은 상태에서 종이 한 겹으로는 온습도의 영향을 바로 받게 되므로 낱편을 보관할 종이상자나 지퍼백 봉투가 필요하다.
낱편을 열어보면 얇은 종이에 싸인 이중포장지로 나오고 있지만 한지로 한 겹을 더 싸는 게 좋다. 보이차 포장지가 한지로 된 차는 온습도의 영향을 덜 받지만 일반 종이에 싸인 차는 그렇지 않다. 안전한 보관 용기는 두께가 있는 편 단위 보관 상자가 가장 좋지만 따로 구하는 게 쉽지 않다. 생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종이 상자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크기가 일정하지 않아서 보관된 상태가 보기에 좋지 않다.
357g을 담을 수 있는 종이 상자는 여러 경로로 구할 수 있지만 타차, 과차, 전차, 대병차, 대전차 등은 보관할 상자를 마련할 대책이 없다. 왜 보이차는 오래 보관하면서 마시는 특성이 있는데 종이 상자에 넣어 판매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다른 차류는 차 가격을 불문하고 고급스러운 스틸 상자에 들어 있고 포장 비닐을 뜯으면 밀폐하기 위한 도구도 들어 있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고급 보이차는 종이 하드케이스에 담겨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보이차는 가격대가 높아도 통 단위로 포장되어 판매되는 실정이다. 아직도 보이차 공급자들은 판매에만 열중할 뿐 소비자의 차 생활 편의에는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다. 보이차는 기본적으로 포장지를 풀면 다 마실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을 보관해야 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보이차 보관 기한은 생차는 무한대, 숙차는 십 년?
보이차는 찻잎을 따서 뜨거운 솥에 한 번 덖어서 비벼 햇볕에 말리는 과정으로 원료인 쇄청모차가 완성된다. 쇄청모차를 증기로 쐬어 틀에 넣어 압력을 가해 찍어내면 생차가 된다. 생차는 만들어진 그해에 마셔도 되지만 수십 년을 넘어 백 년이 지나도 마실 수 있어서 후발효차라고 한다. 그러므로 생차의 보관 연한은 따로 정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데 과한 습기와 냄새가 없는 장소에 두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폴리페놀 성분이 가지는 쓰고 떫은맛을 줄여서 바로 마실 수 있게 만든 차가 숙차이다. 숙차는 쇄청모차를 쌓아두고 물을 뿌려 덮어두면 생기는 검은곰팡이-흑국균을 이용하여 발효차로 만들어졌다. 발효 과정을 거쳐 숙성 단계가 끝났기 때문에 익은 차라는 의미로 숙차(熟茶)라고 이름을 붙였다. 생차에 비해 숙차는 보관 연한이 짧다고 할 수 있는데 십 년 정도 지나면 찻잎이 검어지며 딱딱해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차 맛은 나빠지게 되므로 숙차는 오래 보관하지 않는 게 좋다.
노차는 30년 이상 된 생차를 이르는데 50년 정도부터는 비닐에 싸서 보관한다. 더 이상 차가 산화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인데 숙차가 십 년 이상 되면 같은 방법을 쓰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20년 가까이 된 숙차는 탄화가 진행되면서 목 넘김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오래된 숙차를 노숙차라며 노차로 얘기하는데 가격은 그렇게 비싸지 않다. 왜 그런지 따져볼 필요 없이 차의 효용 가치가 떨어져서 그럴 것이다.
생차는 오래 두고 마셔도 좋지만 습한 환경에 보관하면 긍정적인 산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숙차는 5년만 지나면 숙미에 대한 부담이 없고 10년이면 정점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생차, 숙차 구분하지 않고 통 보관은 죽포 그대로 두면 되고 편 보관은 포장지를 풀지 않은 차는 종이상자에, 포장을 풀었으면 한지로 한 번 더 싸서 보관하는 게 좋다. 보이차는 오래된 차가 좋은 게 아니라 오래 두고 마실 수 있는 차이며 손길을 기다리는 차라고 본다.
보이차를 마시는 데 열중해야 할 텐데 대부분 모으는 데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소장하고 있는 차가 늘게 되면 눈길에서 멀어지는 차가 많아지고 손길도 잘 닿지 않게 된다. 평소에 마시는 차를 주기적으로 선별해서 찻자리 근처에 두고 마셔야 내 차라고 할 수 있다. 지혜로운 보이차 보관 방법은 일상 차 생활에서 소장하고 있는 차를 잊지 않고 챙겨 마실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아무리 많은 차를 소장하고 있어도 찾아 마시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소장하고 있는 차는 빠짐없이 종이상자에 넣어 눈길이 닿는 곳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곁에 두고 마실 차를 수시로 바꿔가며 손이 닿는 곳에 두면 보이차 보관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은가?
여성경제신문 김정관 건축사·도반건축사사무소 대표 kahn7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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