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보험시장이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면서 소비자 부담은 늘고, 보험사들의 수익성은 점차 둔화되는 ‘점유율 경쟁의 역설’이 업계 전반에 드리워지고 있다. 최근에는 이 같은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접근으로, 경쟁과 협력을 아우르는 ‘협쟁(競爭+協力)’이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보험연구원(KIRI)이 발표한 ‘보험산업 경쟁 패러다임 전환’ 보고서는 점유율 경쟁구조의 지속 가능성에 결정적인 회의론을 던졌다. 임준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업계가 수년간 판매관리비·수수료 인상 경쟁에 매몰돼 왔으며, 이는 고비용 구조와 단기 실적주의 경영을 고착시켜왔다고 지적한다.
실제 국내 보험시장은 GA(법인대리점)를 중심으로 점유율 경쟁이 심화하며 판매관리비가 급증하고 있다. 2023년 손해보험사의 판매관리비는 전년 대비 약 10% 상승했다.
이는 구조적 비용 부담과 소비자 보험료 인상이라는 악순환을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규 수요의 한계, 기존 보험사의 비즈니스 모델 모방경쟁, 수수료 지급·판매인력 확보로 인한 과당경쟁 등의 병폐가 점점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점유율 경쟁이 보험산업의 수익성 개선을 어렵게 하고, 단기 실적 위주의 경영 행태를 심화시키는 한계가 있다”며 “산업 경쟁력 강화와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경쟁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협쟁’ 패러다임: 경쟁과 협력의 동시 추구
대표적인 미래 지향적 성장전략으로는 ‘협쟁(coopetition)’ 개념이 제시됐다. 원보험 분야에서는 각 사가 치열하게 경쟁하되, 재보험이나 사이버·재난 등 초대형 위험, 빅테크 기반 신사업, 공동 R&D, 업계 공용 데이터 인프라 구축 같은 영역에서는 협력적 투자와 정보 공유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사이버보험·재난보험 등 거대 위험에 대해선 보험풀 형성과 같은 공동 대응 모델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는 자본력 및 기술력 제고와 고객 신뢰, 사회 안정망 기여로 이어질 수 있다. 보고서는 “협력만이 장기적으로 산업의 질적 성장과 혁신 동력, 소비자 편익을 모두 이끌어낼 수 있다”고 진단한다.
‘협쟁’ 패러다임의 성공적 구현을 위해서는 기술혁신과 데이터 활용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분석했다. AI 기반 심사, 빅데이터 분석, 맞춤형 상품 개발 등 디지털 혁신이 경쟁력 확보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국내 보험사들은 인슈어테크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확대하는 한편, 자체 R&D 투자 비중을 점진적으로 높여가야 한다는 권고도 나왔다. 이는 단기적 비용 부담 증가에도 불구하고 장기적 경쟁 우위 확보를 위한 필수 투자로 평가된다.
정책·규제 혁신이 ‘협쟁’ 성패 가른다
현재 금융당국은 디지털 보험 활성화, 플랫폼 보험사 도입, 규제 샌드박스 확대 등 혁신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다만 산업 전반의 경쟁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보다 포괄적인 지원과 협력 촉진 정책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특히 R&D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 기술 공유와 협업 촉진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 마련, 디지털 인프라 구축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시장 변화에 민감한 보험산업 특성을 고려해 산업계와 긴밀히 협력하며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장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보험사 내부 조직문화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시각도 나왔다. 단기 실적 중심에서 벗어나 장기적 성장과 상생에 방점을 둔 경영 문화와 인센티브 체계 개선, 협업 플랫폼과 데이터 공유 시스템 구축 등이 병행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임 연구위원은 “협쟁 모델의 현실적 도입에는 조직 내부의 인식 전환, 시장 환경 변화, 제도적 지원, 이해관계 조정 등 다각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단기적으로는 과도한 경쟁 관행 완화와 협력 기반 마련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협쟁이 이상적인 모델임은 분명하나, 기존 경쟁 중심의 영업 구조와 문화적 관성 때문에 실제 현장 도입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상당히 요구될 것”이라는 신중한 시각을 내비쳤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도 “향후 정부와 보험산업계가 긴밀한 협력 아래 정책적 지원과 문화적 변화를 병행해야 할 것”이라며 “‘협쟁’ 패러다임의 성공적 안착이 보험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 여부를 가늠하는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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