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손흥민이 가는 팀에는 언제나 치열한 라이벌 구단이 존재했다.
손흥민이 프로 데뷔 후 머무른 팀은 총 4팀이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데뷔했고, 2013년 바이어04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2015년에는 토트넘홋스퍼로 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에 도전했고, 많은 업적을 이룩한 뒤 올해 8월 로스앤젤레스(LA)로 향했다.
손흥민이 거쳐간 4팀 모두 자랑할 만한 라이벌들이 있었다. 토트넘과 아스널의 북런던 더비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더비도 있고, 함부르크와 베르더브레멘의 노르드 더비처럼 아는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는 라이벌리도 있다. ‘교통체증 더비’라는 요상한 이름을 가졌지만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맞대결 또한 있다.
함부르크vs브레멘 – 독일 북부 패권을 다투는 두 명문
함부르크는 베르더브레멘과 ‘노르드 더비(Nord derby, 북쪽 더비)’로 분데스리가에서 명성을 떨쳤다. 함부르크와 브레멘은 중세시대 ‘한자동맹’을 통해 독일 북부를 대표하는 두 도시로 이름을 날렸고, 이것이 축구단 창단 이후 두 팀의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졌다. 분데스리가 창설 이전에는 함부르크가 브레멘을 누르고 지역 최강팀으로 군림했고, 분데스리가에서는 브레멘이 함부르크에 근소 우위를 점하는 형국이다.
두 팀 모두 독일 분데스리가 원년 멤버로 참가했고, 함부르크가 2017-2018시즌 강등되기 전까지는 한 시즌을 제외하고 두 팀이 꾸준히 분데스리가에서 맞붙었기 때문에 한동안 분데스리가 최다 맞대결(108경기) 타이틀을 보유하기도 했다. 함부르크가 이번 시즌 분데스리가에 복귀하면서 한동안 멈췄던 맞대결 기록이 경신될 예정이다.
한편 함부르크는 레버쿠젠에도 악감정을 갖고 있다. 손흥민이 일정 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함부르크가 2010년대 레버쿠젠에 손흥민을 비롯해 하칸 찰하놀루, 요나탄 타 등 젊은 재능들을 연달아 내주면서 전력이 약해진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함부르크가 계속해서 분데스리가에서 살아남았다면 라이벌로 비화될 수도 있었겠지만, 함부르크가 분데스리가.2(2부)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 감정은 다소 옅어졌다.
레버쿠젠vs쾰른vs묀헨글라트바흐vs뒤셀도르프vs… - 너무 많은 라이벌이 본질
레버쿠젠의 라이벌은 특정 구단을 콕 집어 말할 수 없다. 보통 지역을 대표하는 구단들끼리 경쟁 구도가 형성되는 게 일반적인데, 레버쿠젠이 있는 라인강은 독일의 젖줄이나 다름없어 많은 산업 도시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라인강 근처에는 레버쿠젠을 비롯해 쾰른, 묀헨글라트바흐, 뒤셀도르프 등 여러 도시들에 노동자들이 몰려들었고 자연스럽게 축구팀들도 생겨나면서 지역 라이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래서 ‘라이니셰스 더비(Rheinisches Derby)’는 특정 두 팀의 경기를 부르는 데 국한되지 않고 레버쿠젠, 쾰른, 보루시아묀헨글라트바흐, 포르투나뒤셀도르프 등 해당 도시에 있는 여러 구단 간 맞대결을 통칭하는 용어로 자리매김했다. 가장 유명한 건 쾰른과 묀헨글라트바흐 경기이며, 분데스리가에서 라이니셰스 더비라고 하면 보통 두 팀의 맞대결을 말한다.
그래도 워낙 도시마다 지역색이 뚜렷한 만큼 레버쿠젠도 위 두 팀에 뒤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레버쿠젠은 분데스리가에서 ‘50+1 규정’ 예외를 인정받는 기업구단이라 다른 팀들과 미묘한 신경전이 있는 편이다. 상기했듯 구단 에이스들을 빼오는 것 때문에 악감정이 생기기도 하는데, 라이니셰스 더비 팀 중에는 쾰른이 특히 레버쿠젠을 싫어한다.
토트넘vs아스널 - 수많은 ‘런던더비’ 중에서도 최고봉
런던은 워낙 대도시고, 잉글랜드는 축구의 본고장이다 보니 라인강 인근은 가볍게 무시할 만큼 많은 팀과 더비가 있다. 토트넘과 아스널의 북런던 더비 외에도 토트넘과 첼시의 북서런던 더비, 밀월과 웨스트햄유나이티드의 도커스 더비 등 따로 이름이 붙은 것만 해도 여러 가지다. 그 폭력성이나 치열함만 놓고 보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훌리건을 보유한 두 팀 밀월과 웨스트햄의 도커스 더비를 가장 우위에 놓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토트넘과 아스널의 북런던더비가 으뜸이라 볼 만한 건 두 팀의 역사가 잉글랜드 축구 역사와 맞닿아있고, 최상위 리그에서 가장 오랫동안 맞붙은 팀이라는 점에 있다. 두 팀의 악연은 1913년 아스널이 연고지를 북런던으로 옮기며 시작됐고, 1919년 2부리그 5위였던 아스널이 1부리그로 올라가고, 그 대신 1부리그 20위였던 토트넘이 강등되면서 런던을 대표하는 앙숙이 됐다.
토트넘과 아스널은 1992-1993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 창설을 주도한 5개 구단에 포함돼있을 만큼 꾸준히 잉글랜드 축구계에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다만 PL에서는 아르센 벵거 감독을 내세운 아스널이 오랫동안 토트넘보다 우위를 지켜왔다. 아스널은 토트넘보다 높은 순위를 확정짓는 날을 ‘성 토터링엄의 날’로 지칭하고 기념일로 삼으며 라이벌을 조롱했다.
다만 손흥민이 2015-2016시즌 토트넘에 입단하고 구단 기세를 서서히 회복하면서 토트넘과 아스널이 다시금 치열한 경쟁 구도로 접어들었다. 손흥민은 아스널에 6승 6무 10패로 열세지만, 홀로 9골을 집어넣으며 아스널의 저승사자로 군림했다. 또한 2023-2024시즌에는 맨체스터시티와 일전에서 1대1 기회를 놓치며 아스널이 준우승에 머물도록 만들었고, 이것은 2024-2025시즌 아스널의 무관과 토트넘의 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우승이라는 나비효과로 이어졌다.
LAFCvsLA갤럭시 – 더비 이름이 '교통체증'이 된 사연
LAFC는 2014년 해단한 치바스USA를 뒤이어 LA 연고 구단으로 등장했다. 1995년 창단해 오랫동안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에 머문 LA갤럭시의 존재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LA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여서 축구 외에도 미국 4대 스포츠로 불리는 미식축구,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모두 2개 구단씩 보유하고 있다. 오히려 LAFC가 생기는 쪽이 개연성이 높았다.
평범하게 LA 더비 혹은 ‘수퍼클라시코(SuperClasico)’로 불릴 수 있었던 두 팀의 맞대결은 한 팬의 재치로 인해 ‘엘 트라피코(El Tráfico)’라는 독특한 이명을 갖게 됐다. LA의 살인적인 교통체증을 해학적으로 담은 엘 트라피코라는 명칭은 2018년 LAFC가 MLS에 참가하면서 인터넷 등지에서 알음알음 퍼져나갔고, 2018년 3월 LA갤럭시의 팬 블로그 ‘LAG컨피덴셜’이 진행한 투표에서 51% 지지를 얻으며 유명세를 탔다. 물론 LAFC 임원진이나 팬들은 LA갤럭시 팬덤이 주도한 결과에 마뜩잖아했다.
지금은 엘 트라피코가 사실상 공식 명칭이 됐다. MLS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아무리 냉소적인 사람이라도 딱 맞는 이름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가히 매력적이고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 손흥민의 이적으로 노를 젓기 위해 마련한 LAFC 특집 기사에서도 LA 더비를 엘 트라피코라 명명했다. 너무 유명해진 탓에 LAFC도 반쯤 포기한 듯 공식 홈페이지 등에서 해당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아쉽게도 손흥민이 이번 시즌 엘 트라피코에서 뛰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이번 시즌 더 이상 예정된 경기가 없을뿐더러 현재 LA갤럭시가 서부 컨퍼런스 최하위여서 정규 리그 종료 후 진행되는 MLS컵에도 나서지 못할 공산이 크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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