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북극이 단순 물류 경로를 넘어 전략 해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 미국, 중국이 해양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 한국은 뛰어난 조선 기술과 극지 운항 경험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대응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에너지·군사·외교가 결합된 통합 전략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러시아 “북극은 내수”…해협 통제와 군사력 집중
러시아는 북극항로를 자국의 내수역으로 간주하고 있다. 2022년 말, NSR을 통과하는 외국 선박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하는 자국 해운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콜라 반도에서 동부 치시해까지 이어지는 해역 중 일부를 ‘영해 또는 영해와 유사한 수역’으로 규정해 사실상 통행권을 제한하고 있다.
이런 법적 조치에는 국제해양법(UNCLOS) 제234조가 근거로 제시된다. 해당 조항은 결빙 해역에서 해양환경 보호를 명분으로 연안국이 선박의 항행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다. 러시아는 이를 활용해 NSR을 통제하면서도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는 논리를 구축 중이다.
이에 더해 북극을 국가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러시아는 2035년까지 쇄빙선 13척 이상을 확보하고, 북극항로 관련 인프라에 약 39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동시에 콜라 반도 인근엔 북방함대를 배치해 핵잠수함 등 군사 자산의 북극 전진 배치를 강화하고 있다. 군사적 운용과 에너지 자원 수출을 동시에 노린 ‘이중 전략’이 가시화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 “북극은 공해”…쇄빙선 늘리고 ‘그린란드’ 거점화
미국은 러시아의 북극항로 통제를 ‘과도한 해양권 주장’으로 본다. NSR이 국제 해역이라는 전제를 깔고, 해당 수역의 자유 항행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아직까지 항행의 자유작전(FONOPs)을 북극에서 본격 시행하진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이 수역에서도 유사한 작전이 가능하다고 본다.
군사적으로는 덴마크령인 그린란드에 대한 개입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 미국은 그린란드에 있는 피투피크 우주기지를 정보·정찰·미사일 조기경보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미군 북부사령부 작전 반경에 포함시켜 북극권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2019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미국이 사야 한다”고 발언했던 것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최근까지도 그는 “그린란드 인수는 국가 안보를 위한 결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현지 정부에 보조금 지급을 제안한 바 있으며, 독립 여론과 반미 활동은 CIA, NSA 등 정보기관의 감시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쇄빙선 전력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해안경비대 주도로 2030년까지 쇄빙선 15척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고, 미 해군은 북극항로 내 작전 능력 확대를 위해 상시 기동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중국, ‘빙상 실크로드’ 명분 삼아 북극 진출 시도
중국은 북극권 국가가 아니지만, ‘근북극국가’라는 개념을 자의적으로 설정하고 북극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2018년 ‘빙상 실크로드’ 전략을 제시하면서 북극항로에 대한 경제적 권익을 주장하고 있고, 러시아와 협력해 시범 항해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중국 국영 에너지 기업은 이미 러시아 야말 LNG 프로젝트에 투자했고, 극지 연구용 쇄빙선 ‘쉐룽’ 시리즈를 운영하며 기술·운항 역량을 확장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이 향후 북극에 해양 과학기지 또는 군사적 관측시설을 설치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자원 확보 측면에서도 북극에 주목한다. 해저 석유·가스 탐사뿐 아니라 희토류 등 광물 자원이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그린란드에도 장기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물류 넘어 안보까지…북극항로, 전략공간으로 부상
한국은 극지 쇄빙선 건조·운항 능력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힌다. 아라온호를 통해 축적한 운항 데이터와 조선 기술은 이미 상업화 수준에 도달했다. 최근엔 한화오션이 극지연구소와 협력해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를 시작했고, 2030년 여름 첫 항해에 나설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북극항로가 단순한 물류 통로 뿐 아니라 에너지, 국가적 안보 차원에서도 전략적인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기일 상지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는 “북극항로는 단순한 물류 경로를 넘어 우리 해양 군사력의 활동 반경을 넓힐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이라며 "연안 중심에서 벗어나 원양 해상 작전까지 확대할 수 있는 기회인 만큼 북극항로 선점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다만 북극항로를 둘러싼 정치·외교·군사적 리스크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러시아 통제 아래 있는 NSR 운항 허가는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며, 북극 내 군사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법적 지위, 운항 자유 확보, 제3국과의 협력체계 구축 등 복합적인 준비가 필요한 상황에서 이를 조율할 컨트롤타워가 시급하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NSR은 단순히 배만 띄운다고 운영할 수 있는 항로가 아니다”라며 “외교적 협상, 안보적 대비, 법적 정비까지 삼박자가 맞아야 실제 운항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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