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낙관하긴 이르다. 겉보기엔 전성기 같지만, 그 안에서는 산업의 ‘기반’이 잠식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SNS 기반 마케팅과 한류 콘텐츠를 앞세운 인디 브랜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기업들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오랜 시간 국내 뷰티 산업을 주도해온 전통 대기업들은 실적 부진과 전략 한계에 직면했다. 외형은 커졌지만 중심은 흔들리는, 구조적 위기 조짐이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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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 덕에 웃었지만…정작 대기업은 주춤
대표 사례는 LG생활건강(051900)이다. 이 회사는 올 2분기 화장품 부문에서 영업손실(-163억원)을 기록했다. 분기 기준 적자는 2004년 4분기 이후 20년 6개월 만이다. 시가총액은 5년 새 20조원에서 4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LG생활건강은 한때 ‘더후’를 앞세워 중국 고급 화장품 시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코로나 19 팬데믹과 한중 관계 악화, 중국 로컬 브랜드의 급부상 속에서 입지를 잃었다. 단일 국가 의존도가 높은 수출 구조, 후속 브랜드 부재, 전략 전환의 지연 등이 겹쳤다는 분석이다.
아모레퍼시픽도 유사한 위기를 겪었으나, 북미와 일본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재편하고, 주력 브랜드를 리브랜딩하면서 최근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선 “아직 회복세라 보기엔 이르다”는 신중론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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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OEM 약진 속 ‘지속 가능성’ 경고음
결국 산업의 무게추는 전통 대기업에서 인디 브랜드, OEM·ODM(주문자개발생산) 기업들로 옮겨가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화장품 수출 102억달러 가운데 중소기업이 68억달러를 기록하며 66% 비중을 차지했다. 올해 1분기에는 이 비중이 70%를 넘어섰다. SNS를 활용한 기민한 마케팅과 빠른 제품화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에 대해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수출은 역대 최대지만 산업 구조는 불안정해지고 있다”며 “지금이 정점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인디 브랜드는 창의성과 속도 면에서 장점을 보이지만, 글로벌 유통망과 브랜드 파워가 여전히 약하다. 특히 마케팅 의존도가 높아 한류 열풍이 식거나 유행이 지나면 금세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일부 브랜드들은 재구매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비자가 한 번 구매하긴 했지만, 브랜드 충성도와 효능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아 반복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K컬처를 앞세운 ‘일회성 히트’에 그친다면, 장기적 생존은 담보하기 어렵다.
과거 K뷰티 산업의 전성기를 가능케 했던 구조는 ‘톱다운’ 방식이었다. 즉 대기업이 해외시장의 물꼬를 트고, 그 흐름을 중소 브랜드가 타는 형태였다. ‘더후’가 중국에서 돌풍을 일으켰을 때 다수의 한국 화장품 브랜드가 함께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구조 덕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시장의 전장은 백화점·면세점에서 SNS와 디지털 채널 중심으로 옮겨갔고, 소비자 반응에 즉각 대응하는 능력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했다. 대기업 조직은 크고 의사결정이 느려, 이 변화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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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 키워드는 ‘더마’…정부·대기업 역할 중요
이처럼 산업 환경이 급변하는 시점에서 K뷰티가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려면, 전략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 김 교수는 “이제는 가성비 중심의 색조 제품에서 벗어나, 더마·코스메슈티컬(의약·기능성 화장품) 중심으로 산업 체질을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 더마 화장품은 피부과나 약국에서도 사용하는 고기능 제품으로, 효능과 안전성이 핵심이다. 최근 세계 시장에서 프랑스 로레알, 일본 시세이도 등도 이런 고기능 제품에 집중하며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제도 개선 없이는 이런 전환도 어렵다. 특히 업계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로 ‘표시광고 실증제’가 꼽힌다. 기능성 화장품 광고 문구에 대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요구하는 이 제도는, 실제로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고도 마케팅에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뷰티 업계 관계자는 “효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더라도, 현행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까다로워 광고 문구 하나 넣기도 어렵다”고 했다.
김 교수는 “국내 광고 규제가 글로벌보다 훨씬 엄격한 데다, 수출용 제품에도 동일 기준이 적용돼 기업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며 “표시광고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면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은 기술력과 인프라를 통해 산업 기반을 넓히고, 중소 브랜드는 창의성과 기민함으로 틈새 수요를 공략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도 연구개발(R&D) 투자 확대와 규제 개선을 통해 이런 상생 구조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K뷰티의 중심을 잡아야 할 대기업들이 늦게나마 변화를 모색 중이다. LG생활건강은 뷰티 디바이스 브랜드 ‘프라엘’을 운영하며, 최근엔 KCC실리콘과 함께 고기능 선케어 제품 개발을 위한 고분자 소재 연구를 시작했다. 뷰티테크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22억원 규모 펀드에도 참여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진세노믹스, 비동물성 PDRN 등 바이오 기반 성분을 개발하고 있으며, 더마 라인을 강화하고 색조 포트폴리오를 정비하며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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