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제재를 받는 국가임에도 막대한 에너지 자원을 활용해 지금껏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이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바꾸고자 한다. 오는 8일(현지시간)까지 우크라이나와의 휴전이 합의되지 않을 경우 러시아산 물품을 수입하는 모든 국가에 대대적인 새로운 2차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6일,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를 구입한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첫 번째 제재를 받은 국가가 되었다.
추가적인 2차 제재가 실현될 경우 러시아와 무역을 하는 모든 국가의 제품은 미국 시장에서 100%의 관세를 부과받게 된다.
러시아의 최대 수출품은 원유와 가스이며, 주요 고객은 중국, 인도, 튀르키예 등이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무역을 여러모로 이용해왔으나, 전쟁을 해결하는 데는 정말 훌륭한 (수단)"이라고 했다.
사실 트럼프 행정부가 2차 관세를 부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베네수엘라산 석유 구매국에도 불이익을 주고자 비슷한 조치를 도입한 바 있다.
그러나 러시아를 대상으로 이 같은 조치를 단행한다면 전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은 훨씬 더 클 것이다.
러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원유 생산국이다.
그러나 '블룸버그'의 선박 추적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올해 러시아의 원유 수출량은 감소세를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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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가격 상승
컨설팅 업체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키어런 톰킨스는 "러시아 에너지 수입국을 겨냥한 2차 관세가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경로는 에너지 가격"이라고 했다.
관세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면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 공급량이 전 세계 시장에서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공급이 줄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던 2022년 때처럼 에너지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폭등한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기록적인 규모의 미국 석유 생산량을 근거로 제시하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한편 톰킨스는 이번에는 전 세계 에너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는 다른 이유들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현재 OPEC+(주요 산유국과 그 동맹국으로 구성된 기구)의 생산 능력이 상당한 여유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러시아는 이미 기존 제재를 회피하고자 전반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해 둔 상태로,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2차 관세 회피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유주가 불명한 유조선 수백 척, 즉 '그림자 함대'를 통해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를 수출해 그 출처를 숨기고 있다.
컬럼비아 대학교의 미국 제재 전문가 리처드 네퓨는 "제재를 어떻게 제대로 유지하는가는 처음 제재를 부과할 때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제재를 받는 측은 이를 회피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기 때문이죠."
'메이드 인 인디아' 아이폰 가격 상승
핀란드 소재 싱크탱크 '에너지 및 청정 대기 연구센터(CREA)'에 따르면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석유를 2번째로 많이 사들이는 국가는 인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자국 언론사 CNBC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인도)은 전쟁 기계에 연료를 공급해주는 셈이다. 만약 그들이 계속 그렇게 나오면 난 기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며 인도에 25%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인도산 제품에는 총 50%의 관세율이 적용되는데, 이는 미국이 특정 국가에 적용하는 최고 관세율 중 하나다.
행정 명령에 따라 21일 뒤 2차 제재마저 발효되면 미국 기업들은 인도에서 물건 수입 시 100% 수입세(관세)를 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미국 내 인도산 제품의 가격이 급등하고, 미국 기업들은 더 저렴한 국가의 제품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 인도의 수출 수익은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이는 결국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지 못하게끔 압박하기 위한 조치다. 그리고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면 러시아는 원유를 수출할 시장을 잃게 될 것이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어갈 자금을 조달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한편 새로운 2차 관세로 인해 미국인들은 가격 인상을 직접 체감하게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인도산 휴대전화이다.
미국의 휴대전화 제조 업체 '애플'은 아이폰 생산 기지 대부분을 인도로 이전하는 상태다. 특히 미국에서 판매하는 아이폰은 인도에서 대부분 생산된다.
그런데 새로운 관세에 적용된다면 미국 소비자들이 지불해야 할 가격은 크게 뛰어오를 수 있다. 왜냐하면 관세는 수입해오는 업체가 부담하게 되어 있고, 이들 기업은 비용 증가분을 대부분 고객에게 전가하곤 한다.
이미 미국 시장 내 인도산 제품은 트럼프 대통령의 광범위한 무역 정책의 일환으로 25%의 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한편 인도 당국은 정작 미국은 러시아와 무역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중 잣대라고 반발했다.
미-러 교역의 경우 미국의 러시아산 제품 수입이 대부분으로, 지난해 수입 규모는 30억달러(약 4조원)를 조금 넘기는 수준이었다. 이는 2021년 대비 10%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원자재와 비료로, 러시아는 이 두 가지의 세계적인 주요 공급국이다.
미-중 무역 협상이 흔들릴 가능성
한편 러시아산 석유의 1위 수입국은 중국으로, 중국 제품에 2차 관세를 부과하는 일은 인도를 겨냥한 제재보다 훨씬 까다롭다.
우선 미국의 대중 수입 규모는 대인도 수입 규모의 5배에 달할 뿐만 아니라, 이중 대부분이 장난감, 의류, 전자제품 같은 소비재이다.
아울러 중국을 겨냥해 2차 관세를 부과할 경우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부터 추진해 온 미-중 무역 재협상이 흔들릴 수 있다.
스위스 소재 국제경영개발원(IMB)의 무역 전문가인 사이먼 에번트 교수는 "이런 식의 과한 조치로는 중국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몇 년간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긴밀히 협력해온 상황에서 강력한 이유가 없이 중국을 러시아로부터 떼어내기란 "매우 어렵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가장 최근에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중국에도 세 자릿수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려고 했을 때도 양국 간 무역이 거의 단절되며 효과가 별로 없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조치를 단행할 경우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오랫동안 해결하겠다고 약속해 온 미국 내 물가 상승 압력만 더 커질 수 있다.
한편 경제가 이미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제조업 일자리가 대거 사라질 위험성도 있다.
미국-EU 무역에 추가로 미칠 피해
'에너지 및 청정 대기 연구센터(CREA)'에 따르면 유럽연합(EU)과 튀르키예 또한 러시아산 에너지의 주요 고객에 속한다.
2022년 이전에는 EU가 최대 고객이었으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수입량은 크게 감소했다. 최근 유럽은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에 합의했으나, 여전히 러시아산 에너지도 일부 수입하고 있다.
올해 6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 같은 문제를 인정하는 한편 "러시아는 에너지 공급을 무기로 삼아 우리를 여러 차례 협박했다"고 밝히며 2027년 말까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미국과 EU 간 무역 관계는 세계 최대 규모로, 최근 양측은 대부분의 EU산 수출품에 15%의 관세를 부과하는 새로운 무역 조건에 합의했다.
이 협정에 대해 EU 내에서는 해당 관세가 유럽 수출업체에 해를 끼칠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여기에 2차 제재가 시행된다면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러시아산 에너지 구매로 인해 100% 관세가 부과되면 EU의 미국 수출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의약품과 기계류 같은 EU의 주요 수출품은 타국에서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품목들로, 어쩔 수 없이 미국 소비자들이 더 비싸진 가격을 감수하게 될 수도 있다.
잠재적인 러시아 경기 침체
러시아 경제는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지금까지 놀라운 회복탄력성을 보이며 지난해에는 4.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막심 레셰트니코프 러시아 경제개발통상부장관은 최근 경기 "과열" 국면을 지나 자국 경기가 침체의 "문턱에 서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러시아의 경제 성장률을 0.9%로 전망한다.
2차 제재로 에너지 수출이 감소한다면 경기 침체에 직면할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이번 전쟁이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전면적인 침공 이후 러시아 당국이 석유와 가스 생산량 등 주요 경제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 지출의 약 3분의 1은 석유와 가스 수출 수익으로 충당되나, 해당 수출량은 최근 들어 감소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방 지출 비중을 냉전 이후 최고치로 높이고 있다. 현재 러시아의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의 6.3%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보다 훨씬 경제 규모가 작지만, 이번 전쟁에 GDP의 26%를 쏟아붓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동맹국들에 도와달라고 거듭 요청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 중인 관세 정책은 러시아로 향하는 자금 줄을 차단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그는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 내 죽음, 고통, 파괴가 끝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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