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한국산 가전이 글로벌 시장에서 ‘고급 대체재’가 아닌 ‘고가 부담’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7일부터 한국산 수입품에 일괄적으로 15% 상호관세를 적용하면서 기존 ‘무관세 프리미엄’ 기반의 한국산 프리미엄 가전 전략이 구조적 수정 압박에 직면했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국내 생산 기반으로 운용하던 수출형 고부가 제품군은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한국산 프리미엄 가전은 무관세 혜택을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시장에서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유지해 왔다. 2018년 미국이 중국산 가전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한 이후 한국산 제품은 대체재로 부상하며 수출 확대 수혜를 누렸다. 표면상 관세율만 보면 여전히 한국산이 유리하지만, 물류와 유통비를 포함한 총비용을 고려하면 실질 가격 차이는 크지 않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미국 프리미엄 TV(1000달러 이상) 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은 29%로 전년 동기 대비 12%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중국 TCL은 20%, 하이센스는 16%로 올라서며 격차를 좁혔고 2025년 1분기에는 각각 19%, 20%로 삼성전자에 근접했다. 이 같은 점유율 변화는 현지 생산과 맞춤형 제품 공급의 한계가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미국 현지에서 세탁기와 일부 냉장고를 조립하고 있으나 프리미엄 TV, 에어컨, 공기청정기, 빌트인 가전 등 핵심 고부가 제품군은 국내 또는 제3국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구조다. 문제는 이들 제품의 설계 맞춤화 비중이 높고, 생산 표준화율이 낮아 단기간 내 현지화가 어렵다는 점이다.
때문애 제조·물류·관세 비용이 누적되며 가격 인상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유통 현장에서는 한국산 가전이 ‘고급’이 아니라 ‘고가’로 인식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용 구조의 변화가 단순한 수익성 저하를 넘어 프리미엄 전략의 근간을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반면 중국 가전업체들은 북미 대응 전략을 빠르게 정비했다. 하이센스는 멕시코 로사리토, TCL은 몬테레이 인근에 조립 공장을 운영, 북미 수출용 프리미엄 TV를 자사 브랜드 및 OEM 방식으로 현지 생산 중이다.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활용해 관세를 회피하고 물류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하이센스는 2025년까지 프리미엄 TV 출하량을 두 자릿수 이상 확대할 예정이며 TCL은 북미 전용 SKU 전략으로 유통 최적화를 추진 중이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한국산 제품의 경쟁력을 제한하는 구조적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북미 현지에서 생산되는 제품에는 세액공제와 보조금이 집중되는 반면, 해외 수입 제품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전기차·배터리에 한정된 이슈가 아닌 고효율 가전 전반에 걸쳐 현지 생산 여부가 혜택의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주정부는 세탁기·냉장고 등 고효율 가전에 세금 감면과 리베이트를 제공하지만, 수입 제품은 해당하지 않는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고관세 및 IRA 인센티브 변화에 대응해 북미 및 멕시코 내 조립·조달 확대와 SKU 구조 전환에 나섰다. 모듈화가 가능한 프리미엄 제품부터 현지 생산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내년 이후 출시 예정 제품부터는 관세와 세액공제 요건을 반영해 글로벌 공급망(GSCM)을 재정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멕시코 케레타로 공장에서 프리미엄 TV 조립 비중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LG전자는 오는 9월부터 멕시칼리 공장에서 세탁기 추가 생산을 시작, 테네시주 클락스빌 공장에는 냉장고 조립 라인을 신설해 미국 내 생산 역량을 강화한다. 양사는 지역 생산 기반을 중심으로 시장 변화와 정책 요건에 따라 생산량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계획이다.
문제는 단순한 조립 이전을 넘어 품질 관리, 인증, 물류 통제력까지 고부가 제품군을 현지에서 직접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 간 생산 단가 격차, 브랜드 이미지, 원가 구조 사이에서 충돌이 불가피한 만큼 한국산 프리미엄 가전의 핵심 경쟁력 자체가 재조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한 가전업계 관계자는 “단가, 세금, 물류, 생산지, 브랜드 등 복합 요소를 아우르는 공급망 전략 없이는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에서의 입지를 유지하기 어렵다”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북미를 비롯한 핵심 시장에서 생산지 다변화와 가격 정체성 간 균형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향후 실적과 직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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