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린치핀은 자동차 바퀴를 구동 장치의 회전축에 고정하는 부품을 말한다. 린치핀이 없으면 바퀴를 달 수 없으니 외교 분야에선 핵심축, 구심점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쓰인다. 미국은 핵심 동맹 관계를 '린치핀', '코너스톤' 등으로 칭하는데, 한미 동맹을 두고도 인도·태평양 안보의 린치핀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린치핀은 양자 동맹을 이어주는 핵심 요소를 지칭할 수도 있다. 한미 동맹의 린치핀이라면 인계철선(tripwire) 역할인 주한 미군, 6·25 전쟁에서 양국이 공유한 경험과 희생, 대륙 전체주의 세력의 남하를 막는 민주주의 연합의 동지 의식 정도를 들 수 있다. 이 핵심축에 새로운 요소 하나가 추가될 전망이어서 주목된다.
바로 한미 양국의 조선 협력이다. 정부는 최근 한미 무역 협상 타결의 최대 공신으로 우리 측이 제안한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꼽은 바 있다. 경쟁력이 처참하게 떨어진 미국 조선 산업에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조선 기술과 인력 등을 제공해 과거 조선 최강국의 부흥을 돕고 우리도 새 시장을 창출하는 '윈윈 프로젝트'라고 한다. 세계 전략에서 해군 전력이 가장 중요한 미국 입장에선 군함 노후화와 유지 보수 차질 등으로 안보 공백 문제까지 제기되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 미군 재배치와 맞물려 주한 미군 축소와 전략적 유연성 강화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조선 협력은 한미 양국 동맹에 생각보다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부품 공급망과 관련 인력 등 조선 생태계 자체가 붕괴해버린 미국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한국 조선업의 기술과 부품, 고급 인력이 절실히 필요해서다. 반대로 우리 입장에선 조선업이 향후 미국과 계속 이어질 각종 협상을 불리하지 않도록 이끌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우수한 선박 건조 능력을 인정받는 K-조선 산업이 과거 산업화 시대의 효자 노릇에 이어 유일 혈맹의 유지와 발전에도 구심점이 될 길이 열린 것이다.
이제 겨우 운만 띄운 한미 조선 협력의 성공을 위해선 남은 과제들도 많다. 무엇보다 우리 조선업 자체가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계속 유지해줘야만 한다는 게 암묵적 조건이다. 최고가 아닌 파트너라면 협력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모처럼 찾아온 호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정부는 조선업계의 애로 사항을 경청해 즉각 정책에 반영하고 불필요한 규제 최소화, 세제 혜택, 인력 양성 지원 등에 힘써야 한다. 조선업종이 복잡한 하청 구조를 지니고 있고, 계속 인력난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도 냉철히 고려해야 한다. 협력 상대인 미국에서는 정부와 경영계 모두 한국의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포함한 노조 리스크에 우려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통상 협상이 아직 세부적으로 마무리된 것도 아니고 이후로도 다른 어려운 협상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leslie@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