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통합돌봄시대로 들어선다. 내년 3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돌봄통합지원법)’이 전격 시행되면서 그간 말로만 강조됐던 ‘의료-요양-돌봄’ 연계에 대한 법적 기반이 마련된 것. 이제 고령·장애·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은 살던 곳에서 의료·돌봄 통합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집에서 거주하며 모든 걸 누릴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변화의 시점에서 요양병원은 존폐 위기를 맞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공무원과 의료진이 집으로 찾아가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매우 심한 중증 환자가 아니면 대부분 더 편안한 집을 선택, 중간 역할을 하던 요양병원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 또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해도 이에 따른 보상체계는 미약하다 보니 제대로 운영될 리 만무하다는 것이 요양병원계의 목소리이다.
법 시행을 앞두고 여러 의견이 오가고 있는 가운데 요양병원계와 학계, 환자단체, 정부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여 통합돌봄시대 요양병원의 역할과 방향을 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6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는 대한요양병원협회 주관으로 ‘통합돌봄시대 요양병원의 역할과 방향(고독사 없는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통합돌봄의 역할)’ 국회토론회가 진행됐다.
이번 토론회는 통합돌봄시대 요양병원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뒷받침돼야 하는 제도적 지원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간병비 급여화를 담은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 이수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환영사를 통해 “요양병원은 단순 치료 공간을 넘어 통합돌봄체계의 핵심 축으로 그 기능과 역할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며 “특히 새 정부의 공약이기도 한 간병비 급여화를 요양병원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해 국민 간병비 부담을 줄이고 의료·요양·돌봄이 통합적으로 이뤄지는 기초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요양병원협회 임선재 회장은 환영사에서 “통합돌봄의 실질적인 작동을 위해 요양병원의 역할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지만 불합리한 수가체계, 방문진료 시범사업 제외 등 거대한 제도적 변화의 논의과정에서 요양병원은 배제돼 왔다”며 “이 자리를 계기로 제도적 소외를 단호히 끊어내고 요양병원이 국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전문가, 정책당국, 현장과 긴밀히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요양병원은 큰 병원에서 퇴원 후 추가적인 치료와 재활, 돌봄이 필요한 환자에게 맞춤서비스를 제공, 일상 복귀를 돕는 역할을 한다. 즉 지역사회로 복귀하기 전 실질적인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양병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낮으며 엄연히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인데도 이를 뒷받침하는 보상체계는 일반 병원에 비해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이번 토론회에서 대표로 발제에 나선 대한요양병원협회 안병태 부회장은 통합돌봄법 시행은 요양병원의 고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면서 요양병원 차원의 노력은 물론 이를 독려하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안병태 부회장은 “노인은 경증이지만 한순간에 중증으로 전환될 정도로 상태가 급변한다”며 “돌봄통합지원법은 이러한 의료관점은 무시된 채 돌봄관점에서만 요양병원이냐 재택돌봄이냐를 선택하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기회에 요양병원도 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통합돌봄시대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활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피력했다. 안병태 부회장은 “대학병원이나 2차병원에서 퇴원한 환자가 요양병원을 거쳐 지역사회로 복귀하는 선순환 구조로 통합돌봄이 이뤄져야 한다”며 “노인은 언제든 상태가 급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요양병원이 퇴원 환자를 관리할 수 있도록 방문진료에도 동참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간병비 급여화 시범사업을 현실에 맞게 정비해 조속히 본 사업으로 전환, 간병 비중이 큰 요양병원 입소자 가족의 부담을 덜고 간병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정 및 자유토론에선 보다 활발한 의견이 개진됐다.
대한재택의료학회 노동훈 정책이사는 돌봄통합지원법의 시작은 요양병원에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변화를 받아들이고 생존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훈 정책이사는 ▲지역사회와 협력을 강화해 급성기 치료 후 환자의 복귀를 돕는 핵심 허브 역할을 수행하고 ▲다학제 접근으로 환자 맞춤 돌봄을 제공하며 ▲공공인프라 확충 등 요양병원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면 요양병원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남서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이주열 교수는 “요양병원이 치료는 물론 퇴원 후 필요한 요양-돌봄서비스를 연계시키려면 재택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며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평가인증지표 개선과 건보재정 지원을 통해 요양병원에 환자 지원팀을 설치하고 이들이 보건소 방문보건팀 및 주민센터 복지팀과 연계하는 역할을 담당케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천세종병원 공공의료사업본부 남상요 이사는 노인의료의 선진국 사례를 들면서 우리나라 도 지역에 기반한 포괄적인 의료복지 공급체계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요양병원협회 박성국 보험위원장은 돌봄통합지원법이 시행되면 법적인 문제와 민원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서비스 제공 대상자를 판정하는 통합판정 주기를 유연하게 조정할 것 ▲사업 진행 후 모니터링을 강화할 것 ▲방문진료 등을 특정 단체 및 병종으로 제한하지 말 것을 제안했다. 요양병원이 방문진료를 통해 집에 머무는 통합돌봄 대상자들을 직접 진료하면 요양병원에서 집으로의 퇴원도 더 원활해질 것이며 요양병원에 재가 대상자를 위한 상시 대기 병상을 확보하면 불필요한 상급종합병원 이용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어느 정도 공감을 표하면서도 통합판정체계의 실질적인 목표에 대해 설명, 오해를 불식시켰다.
건강보험연구원 장기요양연구실 한은정 센터장은 “통합판정체계는 요양병원 입원자 중 의료필요도가 높은 장기요양대상자를 구분해 적절한 급여 제공이 가능하게 하고 의료와 요양이 동시에 필요한 대상자는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의 급여를 병행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즉 의료중증도는 높지만 일상기능은 저하된 대상자에게 현재는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 중 하나만을 적용하게 돼 있어 서비스가 단절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통합판정체계는 이러한 구조적 단절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정 센터장은 “돌봄통합지원법에 적용되는 통합판정체계 역시 의료, 요양, 재활, 돌봄, 주거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합적으로 평가하고 대상자에게 적정 자원을 배분하는 도구로 작동할 것”이라며 “요양병원을 배제하거나 위협하는 것이 아닌 요양병원의 다양한 기능을 제도화된 기준에 따라 분화하고 합리적 급여를 설계하려는 정책적 시도”임을 분명히 언급했다.
한편 서비스의 수혜자인 환자들은 요양병원이 통합돌봄의 중심기관으로 강조되는 데 다소 우려를 표했다. 요양병원은 민간중심의 입원 의료기관이며 지역사회 기반 돌봄을 제공할 인프라나 전문인력 등이 제도적으로 부재한 만큼 통합돌봄의 중심축으로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 김성주 대표는 “진정한 통합돌봄은 삶의 중심을 병원에서 지역으로, 나아가 사람 곁으로 되돌리는 것”이라며 환자 중심의 통합돌봄 방향을 제시했다.
이는 ▲지역기반 인프라를 탄탄히 구축하는 것(방문간호, 야간 응급대응, 커뮤니티케어, 지역 사례관리 확대 등) ▲보건소, 재가센터, 사회복지관 등과의 협약을 제도화해 의료-복지 연계구조를 확실히 마련하는 것 ▲입퇴원 전후 통합케어플랜을 수립해 이를 지역과 공유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 ▲퇴원 후 48시간 이내 지역방문 또는 전화점검을 의무화해 급격한 악화나 고독사를 예방하는 것이다.
김성주 대표는 “요양병원은 중증질환자의 생애 후반에 필요한 공간이지만 그 역할이 과장되거나 한계가 외면된 채 통합돌봄 중심에 놓이면 오히려 환자의 생존권은 더 큰 위협에 놓일 수 있다”며 “요양병원과 지역을 잇는 연계구조를 탄탄히 구축해 퇴원이 곧 절망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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