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 통과한 2만가구 출자 지연…기금 고갈 우려에 정부 지원 소극적
10만7천가구 속속 임대 기간 종료…분양전환 등 청산 임박했지만 기준도 없어
정부 늑장 대응에 혼란…우선 분양권 '무주택자' 한정 시 반발 불가피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민간의 장기임대주택 유형인 공공지원 민간임대 사업장의 임대의무기간 종료 시점이 속속 다가오고 있지만 분양 전환이나 매각 등 사업 청산과 관련한 기준이 없어 시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사업자는 수익을 높이기 위해 시세 수준의 분양 전환을 원하고, 임차인은 임대로 계속 거주하거나 싼값에 분양 전환받기 원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임차인과 사업자간 갈등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중산층에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도입된 공공지원 민간임대가 주택도시기금 부족과 공공성 논란 사이에 계륵(鷄肋) 신세가 되고 있다.
◇ 민간 자율과 공공성 사이 '계륵' 신세…기금 고갈 우려에 출자도 지연
공공지원 민간임대 사업은 2014년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기업형 임대주택 '뉴스테이'가 전신이다.
공공임대가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이라면, 뉴스테이는 월세화 시대를 맞아 중산층의 주거 안정과 주거비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주택도시기금과 민간 사업자가 자본금을 출자하고, 임대리츠를 설립해 공동 운영하며 주변 시세의 90% 이내에서 8년 이상 장기 임대를 제공하는 구조다.
이에 따라 공급 면적도 공공보다 큰 중형 위주로 건설됐고, 임대 신청 시 임차인의 청약통장이나 무주택자 여부 등도 따지지 않았다.
이러한 뉴스테이는 문재인 정부 들어 분양전환 또는 매각 시 사업자에게 과도한 특혜를 준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공공성이 강화된 지금의 '공공지원 민간임대'로 바뀌었다.
주택도시기금이 지원되는 만큼 초기 임대료를 규제하고, 무주택자와 신혼부부·청년 위주로 분양자격이 강화됐다.
공공지원 민간임대의 사업 유형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지방공사의 공공택지 공모형,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민간제안 공모형, 정비사업 일반분양분이 대상인 정비사업연계형, 공급촉진지구형 등 총 4가지로 나뉜다.
HUG에 따르면 2014년 제도 도입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약 10년간 기금 출자가 완료된 공공지원 민간임대 사업장은 총 143곳, 10만7천93가구에 이른다. 이곳에 투입된 주택도시기금은 6조320억원에 달한다.
도입 초기에는 LH 공공택지 공모 방식이 대세였으나 2023년 이후부터는 HUG 민간제안 방식이 압도적으로 많다.
최근 공사비가 급등하고, 미분양이 크게 늘며 사업성이 떨어지자 건설사들이 공공택지 분양 용지를 공공지원 민간임대로 전환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분양시장이 침체한 2023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LH 공공택지 공모 방식의 공공지원 민간임대 신청은 5건에 불과한 반면, 민간 제안 방식의 기금 지원은 24건으로 5배에 가깝다.
현재도 기금 출자를 기다리는 사업장은 쌓이고 있지만, 기금 부족 문제가 맞물리며 집행 실적은 저조하다.
주택업계에 따르면 현재 LH나 HUG 공모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기금 출자를 기다리는 공공지원 민간임대 사업장은 전국적으로 총 28곳, 2만여 가구에 이른다.
정부는 올해 건설업계 지원을 위해 공공지원 민간임대에 6천억원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기금 부족 문제로 기금투자심의가 지연되며 8월 현재까지 집행 규모가 3천억원을 밑돈다
업계에서는 전세사기 문제와 디딤돌 등 정책자금 대출 확대 이후 주택도시기금 고갈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가 공공지원 민간임대 지원에 소극적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지난해에는 정부가 새로운 기업형 임대 유형으로 20년 장기 임대를 추진하기로 하면서 공공지원 민간임대는 입지가 더 애매해졌다.
정부가 이르면 이달 중 발표한 공급 대책에서도 공공지원 민간임대 지원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분양시장이 침체하며 공공지원 민간임대리츠로 전환을 희망하는 수요는 많은데 기금 출자가 지연되면서 고금리로 브릿지 대출을 받은 업체들의 자금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현재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사업장만이라도 기금 출자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 10만 임대기간 종료 단지 분양전환 갈등…무주택자 한정 시 반발 예상
또다른 문제는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공급된 뉴스테이의 8∼10년 임대 기간이 만료되면서 임대리츠의 사업 청산 시점이 도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HUG에 따르면 올해 임대기간이 만료되는 사업장은 서울 대림동(8월)과 위례신도시(11월) 등 2곳 651가구다.
또 내년 2월에는 뉴스테이 1호 사업장인 인천 도화 e편한세상 2천77가구를 비롯해 12개 사업장에서 1만1천59가구의 임대 기간이 종료되는 등 2030년까지 5년 동안에만 49개 사업장, 3만9천430가구의 임대 기간이 끝난다.
그러나 현재 분양 전환 방식과 우선분양 자격 여부 등 사업 청산에 필요한 세부 기준이 없어 시장의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애초 민간 규제를 최소화한다는 취지로 8년 이상의 임대의무기간만 두고 분양 전환 가격이나 분양 대상자, 임대기간 연장 시 리츠에 대한 보증 연장 여부 등 세부 기준을 만들지 않은 탓이다.
정부는 공공지원 민간임대로 공공성을 강화한 뒤에도 임대기간 종료 후 사업 청산 방식에 대해선 간과했다.
국토교통부는 기금이 투입된 만큼 민간 투자자들의 자율에만 맡길 수는 없다고 보고 뒤늦게 기준 마련에 나섰다.
다만 그 결과에 따라 오히려 시장의 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현재 다수의 임차인은 기존 임차인에게 싼값에 우선 분양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공공성에 무게를 두고 우선 분양 자격을 무주택자로 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공임대는 아니지만 기금이 투입된 만큼 8년 이상 시세보다 싸게 거주한 유주택자에게 분양전환 우선권까지 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초기 '뉴스테이' 시절에는 임차인 자격 제한이 없었고, 공공지원 민간임대로 전환한 뒤에도 무주택자로 자격요건을 강화했지만 미분양이 나거나 임대기간 중간에 임차인이 교체되는 경우에는 역시 자격제한을 두지 않아 유주택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당장 11월에 임대 기간이 종료되는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 위례신도시 'e편한세상 테라스위례'(360가구) 임차인들은 분양 전환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기존 임차인들에게 우선 분양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다수는 유주택자들이어서 만약 무주택으로 우선분양 대상을 제한할 경우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민간 사업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분양 전환을 앞두고 갈등이 우려되는데 일부 분양가에 불만이 있거나 분양전환을 못 받게 되는 유주택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을 요구할 경우 최소 2년 이상 분양전환이 더 지체될 수 있다"며 "빠른 자금 회수를 원하는 사업자의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분양전환시 분양가 책정 기준을 놓고도 갈등이 예상된다.
통상 민간임대는 분양전환 시점에 감정평가액 등을 기준으로 분양 전환 가격을 산정한다.
위례신도시나 화성 동탄 등 인기 공공택지의 경우 8년 전에 비해 시세가 크게 올라 감정평가 방식으로 분양가를 산정할 경우 분양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테라스위례의 경우 전용면적 84㎡ 단일 주택형으로 현재 보증금 5억원에 거주하는 임차인의 월세는 약 40만원 선이다. 이를 경기지역 아파트 전월세전환율(한국부동산원 기준 5.3%)를 적용해 전세 보증금으로 환산하면 환산 보증금은 5억9천56만원으로 6억원이 안 된다.
이에 비해 현재 인근 전용 84㎡ 아파트 시세는 15억원 선으로, 환산 보증금의 2.5배에 달한다.
입주민들은 시세보다 싼 가격에 분양전환을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어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현재 국회에는 관련 법안들이 속속 발의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허종식, 이강일 의원이 발의한 민간임대주택 특별법 개정안에는 공공지원 민간임대 분양전환 시 거주 중인 임차인 중 무주택자에 우선 분양하고, 분양전환 가격 산정시 감정평가사를 사업자와 임차인이 각각 선정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국토부는 갈등이 예상되는 임차인에 개별 분양을 하지 않고 주택을 공공임대사업자나 리츠 등에 통매각을 하는 방안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택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금은 장기 투자도 가능하겠지만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건설사들은 이미 출자 자금을 유동화한 곳도 많을 정도로 임대 기간 종료 후 빠른 분양전환이나 매각을 희망한다"며 "기존 임차인의 거주 안정은 최대한 보장하면서 사업자에게는 안정적인 출구를 보장하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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