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정부가 2026년부터 시행할 예정인 ‘배당소득 분리과세’ 제도가 본격 시행에 앞서 실효성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겉으로는 고배당을 장려하고 했지만, 실제 설계는 고소득자의 세금 회피를 막고 세수를 방어하는 데 초점이 맞춰줘 있다. 까다로운 요건과 제한적인 적용 대상, 예상보다 높은 세율로 인해 시장 유인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런 방식이라면 고배당을 유도하기보다 오히려 회피하게 만든다”는 공통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기업은 움직이지 않고, 대주주는 배당 대신 내부거래로 돌아서며, 시장의 반응은 차갑다.
◇‘삼성전자도 탈락’…숫자 기준에 막힌 고배당주
정부는 분리과세 적용 요건으로 ▲배당성향이 40% 이상 ▲배당성향이 25% 이상이면서 최근 3년 평균보다 배당금이 5% 이상 증가한 경우 등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이 중 하나를 만족해야 하며, 여기에 직전 회계연도 대비 배당금이 줄었을 경우는 대상에서 아예 제외된다.
이처럼 정량적인 기준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면 업종별 수익성과 시장 상황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해당 요건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기업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약 230개, 전체의 9~10%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고배당주 대부분이 기준에 미달된다. 삼성전자는 작년 배당성향이 28.5%로 1차 기준은 넘지만, 3년 평균보다 배당금을 약 5000억원 이상 늘려야 두 번째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배당성향이 7.6%에 불과하고, LG에너지솔루션은 수익성은 높지만 투자 부담으로 인해 배당 확대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
우리금융지주는 지난해 배당이 줄었고, 올해 실적도 감소할 경우 두 해 연속 배당 감소로 대상에서 탈락할 수 있다. 한 회계법인 파트너는 “실적이 산업 사이클에 크게 영향을 받는 업종은 배당을 일정하게 늘리기 어렵다”며 “제도 설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제 유도? 실상은 고세율 방어 중심
정부는 이 제도가 고소득자의 절세 수단을 차단하고 세수 손실을 막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장 참여를 유도하기보다 기존의 과세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오히려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안에 따르면 배당소득에 대해 ▲2000만원 이하는 14% ▲2000만~3억원은 20% ▲3억원 초과는 35%의 분리과세 세율이 적용된다. 지방세를 포함하면 최고세율은 38.5%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안(최고 27.5%)보다도 높다.
김종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4일 보고서에서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강화,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법인세율 인상 등으로 인해 연말 매도 물량이 쏟아질 수 있다”며 “분리과세 제도 역시 세율이 높고 요건이 까다로워 정책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시장에선 ‘세금은 그대로인데 혜택은 좁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정부가 유도하겠다면서 실상은 억제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대주주 선택은 ‘배당’이 아닌 ‘내부거래’
정작 대주주들은 배당보다 지분 매각이나 비상장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를 택하고 있다. 현재 비상장 주식 양도소득세 최고세율은 27.5%로, 분리과세 배당소득세보다 낮다. 세율 구조만으로도 배당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회계업계에 따르면 일부 중견그룹 대주주들은 최근 배당을 줄이고, 자회사와의 내부거래나 로열티 지급을 통한 이익 이전 방식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실적이 불안정한 산업일수록 배당을 유연하게 조정해야 하는데, 지금의 제도는 ‘배당 감소 시 자동 탈락’ 조건으로 정상적인 재무 전략조차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한 대형 회계법인 파트너는 “기업이 고정적으로 배당을 늘리는 건 경영상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다”며 “정부가 마치 상수처럼 배당금 증가를 전제한 건 제도의 설계 실패”라고 지적했다.
◇주주환원 확대? ‘인센티브 설계’ 없이는 공허하다
정부는 “제도를 통해 ‘주주환원’을 장려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도 발표 이후 금융지주와 고배당 기대 종목들은 오히려 주가가 하락세로 전환됐고, “기대보다 실망”이라는 분위기가 금융시장 전반에 확산됐다.
증권사들은 지금 조건을 충족할 가능성이 있는 일부 종목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 KT&G, SK텔레콤, HD현대마린솔루션, 한미반도체, LG씨엔에스 등이 수혜 후보로 거론된다. 하지만 소수 종목에만 집중되는 혜택으로는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인 저배당 문제 해결로 이어질 수 없다.
현재 한국의 평균 배당성향은 28.8%로, 일본(37.2%), 미국(35.3%), 중국(42.1%)보다 낮고, 글로벌 평균(53.1%)과는 격차가 크다. 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배당은 고정된 수치가 아니라, 인센티브 설계에 따라 얼마든지 늘릴 수 있는 항목”이라며 “지금 제도는 유인 없이 책임만 넘긴 셈”이라고 비판했다.
한 대형 증권사 본부장은 “기업이 예측할 수 있고, 따라갈 수 있도록 신호를 줘야 한다”며 “핵심은 제도가 아니라 설계된 인센티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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