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법원 판결로 한국 기업들이 중국 자회사에서 사고가 나면 모회사도 함께 책임질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특히 화재사고 같은 사고 발생 후 배상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자회사 자산을 모회사로 이전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중국 회사법에 따른 연대책임을 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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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현대재산보험(중국)유한공사 등 중국 보험사 5곳이 성도이엔지(037350)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이 사건은 2013년 9월 SK하이닉스(000660) 중국공장에서 발생한 화재사고에서 비롯됐다. 당시 성도이엔지의 100% 자회사인 성도건설이 공장 가스공급설비 설치공사를 진행하던 중 과실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로 공장 면적 약 2500㎡가 전소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중국 보험사들은 SK하이닉스에 8억6000만달러(약 1조2000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한 후,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사가 대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보험자대위권)에 따라 성도건설을 상대로는 중국 법원에, 모회사인 성도이엔지를 상대로는 한국 법원에 각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중국 법원은 성도건설에게 약 1억2000만달러(약 1600억원)의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쟁점은 성도건설이 화재사고 발생 약 4개월 후인 2014년 1월 모회사인 성도이엔지에게 미분배 이윤 명목으로 7800만위안(약 150억원)의 배당을 결정한 것이었다. 성도건설은 이전까지 정기적인 이익배당을 실시한 적이 없었다. 중국 보험사들은 “화재사고 후 배상 부담을 예상하고 자산을 모회사로 이전한 것”이라며 모회사의 연대책임을 주장했다.
1심은 성도이엔지에게 약 1227억원의 배상을 명령했다.
하지만 2심은 “모회사는 자회사에서 빼돌린 배당금 범위 내에서만 책임을 진다”며 배상액을 129억원으로 제한했다. 성도이엔지가 받은 배당금(약 150억원) 수준에서 책임 범위를 정한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성도이엔지의 책임은 인정되지만, 실제로 자회사에서 가져간 배당금 범위 내에서만 배상하면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2심은 연대책임에 따른 지연손해금 청구는 기각했다.
대법원은 성도이엔지의 연대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구 중국 회사법 제20조 제3항은 회사 주주가 법인의 독립지위와 주주 유한책임제도를 남용해 채무를 회피하고 채권자 이익을 엄중히 침해한 경우 연대책임을 지도록 한 규정”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중국 회사법은 모회사가 자회사의 독립성을 악용해 빚을 떠넘기려 할 때 모회사도 함께 책임지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모자회사 간 이익이전이 이 규정에 해당하는지는 “모회사가 자회사에 행사한 지배·통제 정도, 재산과 업무의 혼용 여부, 이익이전 행위의 성격과 정당성, 채무회피 목적 유무, 채권자 이익 침해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연손해금 부분에서는 원심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중국 민사소송법과 중국 법원 판결에 따르면 판결 선고 이후 ‘배로 계산한 채무이자’ 상당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지 판단했어야 한다”며 “원심이 이를 심리하지 않고 지연손해금 청구를 기각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법원은 지연손해금 부분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해 중국법 기준에 따른 재심리를 지시했다. 원고들의 나머지 상고와 피고의 상고는 모두 기각했다.
성도이엔지 측은 “2심 판결에 따른 약 129억원의 배상금은 이미 법원에 공탁된 금액 등을 통해 이행될 예정이므로 회사의 재무상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지연손해금에 대한 파기환송 부분은 당사에 책임 귀속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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