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기까지 조금 주저했다. 스시야말로 마니아층이 두터운 만큼 주관적인 미각의 영역을 넘어서는 꽤 까다로운 주제여서다. 개인적으로 스시는 맛을 넘어 감성과 기억을 건드리는 특별한 음식이다. 스시를 즐기는 이라면 기억 속에 잊지 못할 스시 한 점이 있을 거다. 누군가는 도쿄 츠키지 시장에서 새벽바람을 맞으며 먹은 참치 뱃살을 떠올릴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잘 숙성된 전어의 감칠맛을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 스시는 생선과 밥의 조화 뿐 아니라 함께한 사람들, 마주한 셰프의 미소, 그리고 그 순간의 분위기까지 생생한 기억으로 남는 음식이다.
서울은 지금 세계적인 스시의 중심지가 되어가고 있다. 제한된 좌석, 셰프와의 깊은 교감이 이루어지는 오마카세는 한 끼 식사를 넘어 특별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셰프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작은 한 점에 담긴 철학과 정성, 그리고 기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작고 단순해 보이는 음식에 매료될까. 손님과 셰프가 마주하는 카운터에서는 서로의 이야기가 조용히 흐르고, 차분히 음미하는 순간을 통해 우리는 잊고 지낸 소중한 감각을 깨우게 된다. 어쩌면 스시는 바쁜 현대사회에서 우리에게 진정한 휴식과 내면의 평화를 주는 음식일지도 모른다.
스시는 네타(생선), 밥, 식초, 소금, 와사비, 그리고 간장의 균형으로 완성된다. 각각의 재료는 최적의 상태와 온도를 찾아가며 완벽한 순간을 향해 나아간다. 그 작은 균형이 완성되는 찰나, 우리는 혀끝에서 폭발하듯 피어나는 경이로운 맛을 경험하게 된다. 이 섬세한 균형이야말로 스시의 본질이자 셰프의 예술적 손길이 머무는 곳이다. 그 계절에 지방과 감칠맛이 가장 잘 차오른 생선을 선택하여 다시마의 단맛을 입히고 잘 지어진 밥을 적절한 압력으로 쥐어 입안에 넣는 순간 ‘미스터 초밥왕’ 만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진실의 눈썹이 움직인다. 중요한 건, 이 중 어느 하나도 튀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에 그 스트라이크존은 극도로 좁다.
스시는 한 끼에 보통 13~15피스 정도고 곁들이는 안주 요리까지 포함하면 20피스를 훌쩍 넘긴다. 각각을 그 좁은 스트라이크존에 정확히 꽂아 넣는 건 전설의 제구력을 가진 그레그 매덕스가 와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미션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바로 스시야의 숙명이다. 게다가 모양까지 예뻐야 한다. 밥은 모양이 단단하게 잡혀 있으면서도 입안에서는 알알이 흩어져야 하고, 그 위에 올라가는 네타는 맨들맨들한 표면과 선명한 각을 가져야 한다. 시각적 완성도까지 함께 고려되는 고도의 기술과 감각이 필요한 음식. 이쯤 되면 스시는 단순한 생선과 밥의 조합이 아니라, 예술의 한 장르로 이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서울에는 다양한 매력의 스시야가 곳곳에 있다. 소수헌은 한국 스시계의 전설로 불리는 박경재 셰프가 만리동 한옥에 오픈한 식당이다. 일본과 신라호텔의 아리아케에서 경력을 쌓고 스시 초희와 코지마에서 자신만의 색채를 공고히 한 박경재 셰프는 한국 스시야 중 최초로 미쉐린 스타를 획득하고 2022년 멘토셰프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한국 스시 신에서는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일본에서 수학하고 도쿄 기요다의 기무라 셰프를 사사하였음에도 한국적 정서와 일본의 전통 사이에서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자신만의 스시 세계를 완성했다. 그의 스시에는 고요한 여백의 미가 느껴진다. 처음엔 심심한 듯 맑게 다가오지만, 씹을수록 정직한 감칠맛과 부드러운 풍미가 심금을 울린다.
소수헌은 입장부터 경건해진다. 계단을 올라 한옥 정문에 들어서면 루이스 폴센의 대형 아티초크 조명이 마중한다. 잘 가꾼 마당을 지나 마루로 올라서면 삐걱이는 나무 바닥에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스시카운터로 입장하면 이우환 화백의 ‘점으로부터’ 그림이 반긴다. 큰 그림에 찍힌 두 점은 카운터를 두고 마주하는 셰프와 나 사이 하나의 공명을 이룬다.
소수헌에서 맛본 전복 한 점을 잊을 수 없다. 풍성한 크기의 전복은 입에 넣는 순간부터 이미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낸다. 천천히 씹으면, 바다 깊은 곳에서 오는 듯한 은은하면서도 깊이 있는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진해지는 그 깊고 부드러운 맛은 쉬이 잊히지 않는다.
고하다(전어)는 그 자체로 완벽한 작은 세계다. 표면에 촘촘히 칼집을 넣은 고하다가 혀에 닿는 순간, 절묘하게 조합된 식초와 소금의 맛이 생선의 비린 맛을 말끔히 지워준다. 첫맛에서 치고 나오는 산미는 깔끔하게 떨어지고, 곧이어 입안 가득 풍성한 감칠맛의 여운을 남긴다. 이 작은 피스 하나가 주는 섬세하고 완벽한 균형은 감탄을 자아낸다.
세카미 츠케(간장에 재운 참치등살)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맛의 경계를 넘나드는 흥미로운 메뉴다. 특히 참치의 힘줄을 제거하지 않고 내는 방식은 다소 과감하다 싶었지만, 평소 경험하지 못한 젤리 같은 식감이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간장 양념과 힘줄의 부드러운 식감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오래도록 머무는 풍성한 맛이 놀라울 정도다.
피조개 또한 인상적이다. 조개 특유의 시원함과 단맛이 마치 여름날 신선한 수박을 베어 문 듯한 청량감을 선사한다. 한 입 깨물면 신선함의 정점을 경험하게 하는 이 작은 조개는 소수헌에서 맛본 피스 중에서도 특히나 맑고 깔끔한 여운을 남겨 인상에 남았다.
마지막으로, 갑오징어의 섬세한 매력을 빼놓을 수 없다. 표면에 정교하게 넣은 칼집 덕분에 갑오징어는 입안에서 서걱서걱하는 소리와 함께 오묘한 식감을 전한다. 너무 부드럽지도, 너무 단단하지도 않은 정확히 그 중간 지점을 잡아낸 식감은 먹는 내내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소수헌에서는 비어 있지만, 채워진 미학이 시처럼 스시에 담긴다. 심심하지만 감칠맛으로 가득 찬, 서로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가치가 공존한다. 어쩌면 박경재 셰프의 스시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그 어떤 수식어보다 이우환 작가의 그림이 아닐까 한다.
스시인은 한국에서 최초로 회원제 스시를 시작한 곳이다. 오픈하고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 인기는 좀체 식지 않고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스시조 출신의 이진욱 셰프는 한국 스시계의 아이돌로 불렸다. 스시조에서 수련할 당시 마츠모토 미즈호 셰프에게 사사받아 그의 영향이 있지만 스시인을 시작한 후 독창적인 조리법과 소스의 과감한 사용으로 본인만의 철학을 구축했다. 이제 아이돌이라고 불릴 나이가 지나 거장의 반열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소년 같은 웃음을 띠고 스시 카운터 뒤에서 열정을 불태운다.
스시인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요리는 바로 앙소스 위에 올린 전복튀김이다. 잘 튀긴 전복의 표면은 얇고 바삭하여 입안에 넣는 순간 경쾌한 식감을 선사하고, 그 내부는 놀랍도록 부드럽다. 이 극명한 대비, 흔히 말하는 ‘겉바속촉’의 정석은 입안에서 행복한 충돌을 일으킨다. 특히 아래 깔린 전분 소스는 언뜻 중화풍이면서도 깊고 농후한 다시 육수의 감칠맛이 살아 있어 전복의 풍미를 입체적으로 끌어올린다. 모든 요소가 한 점에서 균형을 이루고, 간도 정확하여 절묘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다음은 스시인의 시그너처인 유부말이. 바삭하게 구워낸 유부 안에 부드러운 네기도로와 성게가 가득 담겨 있다. 처음 보는 순간부터 이 요리는 독창적이고 대담하다는 느낌을 준다. 재료 하나하나가 강력한 감칠맛의 대명사인데, 이들을 한 입에 넣었을 때 각각의 풍미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입안에서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룬다. 익숙한 듯 낯선 이진욱 셰프의 창의성이 빛나는 순간이다.
광어 뱃살(엥가와)을 얇게 썰어낸 요리는 또 다른 특별한 미식 체험을 제공한다. 엥가와 특유의 오독오독하면서도 미묘하게 쫄깃한 식감이 살아 있고, 그 위에 뿌린 실파의 섬세한 향과 식감이 자칫 느끼할 수 있는 풍미를 깔끔하게 잡아준다. 신선한 광어의 기름진 부위를 더욱 산뜻하게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된 이 작은 요리는 지극히 섬세하고 풍성한 맛의 세계를 보여준다.
전갱이(아지)는 스시인에서 특히 인상적인 피스 중 하나다. 아지의 뱃살 부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삭아삭한 식감과 기름의 농후함은 마치 입안에서 춤추듯 살아 움직인다. 피스 위에 올라간 선명한 초록빛 야쿠미는 이진욱 셰프만의 독특한 터치인데, 간 쪽파가 주는 상쾌함이 기름진 전갱이의 풍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재료가 만나 밸런스를 이루며 씹을수록 신선한 향이 점점 배어나온다.
이진욱 셰프는 전통의 틀 안에서 자신만의 창의성을 마음껏 펼친다. 엄격한 식재료 선별과 과감한 조리법, 독특한 소스 활용으로 서울의 스시 신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의 스시는 강렬하면서도 우아한 맛의 여운을 남기며 기억에 깊이 각인된다. 모든 생선에서 각각의 향, 풍미, 그리고 식감이 극대화되어 있다. 재료에서 최고의 맛을 끌어내기 위해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열정이 그의 요리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스시 하시라는 최근 가장 마음이 가고 즐겨 찾는 곳이다. 윤주환 셰프가 도쿄 카네사카에서 배운 정통 스시 스타일을 서울에서 정교하게 재현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일본 산사의 고즈넉함을 느끼게 하는 공간과 한쪽에서 차를 끓이고 있는 가마에서부터 마음이 평온해진다. 아직 젊은 나이가 무색하게 한 점 한 점 고심하면서 내어주는 피스는 대가의 기운을 자아낸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금세 수줍은 미소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하시라의 사시미 구성은 자주 변하지만, 광어만큼은 유난히 자주 등장한다. 특히 이곳의 광어는 다시마로 숙성(곤부지메)되어 은은하게 스며든 감칠맛이 일품이다. 함께 나온 북방조개는 특유의 탄력과 절묘한 간이 어우러져, 광어의 섬세한 맛과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싱싱한 미역 한 조각은 생경한 구성이지만 놀랍도록 맛있어 기억에 남는다.
윤주환 셰프는 종종 클래식한 스시의 틀을 벗어나 창의적인 조합을 선보이기도 한다. 전복과 갑오징어(이까)를 함께 넣은 군함말이는 대표적인 예다. 두 재료가 만나 만들어내는 오묘한 식감과 바다의 풍미는 입안에서 경쾌하게 어우러져, 특별한 즐거움을 준다. 하시라의 칼솜씨가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전어(고하다)다. 너무 강하지 않은 적절한 숙성 덕에 생선의 은은한 감칠맛이 고급스럽게 살아나며, 정교하게 완성된 스시 모양은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한국에서 흔치 않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하시라의 특징이다. 특히 보리멸과 쥐치는 서울의 다른 스시야에서는 보기 힘든 재료다. 보리멸은 특유의 은은한 향과 식감이 뛰어나며, 쥐치는 쥐치간 소스와 어우러져 입안에서 녹진하게 풀어진다. 가쓰오와 갯가재 또한 다른 스시야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재료다. 하시라는 이들을 된장 소스와 함께 내어주어, 재료 본연의 맛을 더욱 풍성하게 살려낸다. 안키모를 다져서 스시로 완성해주는데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농후한 크리미함과 깊은 감칠맛은 다음 날까지도 기억에 남아 군침 돌게 한다.
하시라의 오마카세는 클래식한 스타일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중간중간 재미있는 안주가 나와 지루할 틈이 없다. 윤주환 셰프의 스시는 맛도 좋지만 모양이 예쁘다. 동그란 밥 위에 네타의 각이 완벽히 살아 있다. 입에 넣었을 때 밥알이 알알이 완벽하게 풀어지는 온도와 생선의 신선함이 만들어내는 균형감이 일품이다. 코스의 마지막에는 오이, 간뾰, 우니, 참치 등 다채로운 마키를 내어주어 카네사카 혈통임을 보여준다. 카네사카의 피를 물려받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이언트 스텝을 내딛는 그의 행보를 응원하게 된다.
스시 오마카세의 가격대는 다른 파인 다이닝과 비교해도 결코 낮지 않다. 그럼에도 스시는 한 동안 먹지 않으면 혀가 먼저 쓱 청구서를 요구한다. 지난번 경험한 최고의 한 점에 대한 기억이 정기적인 알람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스시는 너무나 빠르고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잠시나마 멈춰 서는 시간을 선물해준다. 그 순간 우리는 맛 이상의 무언가를 얻고 돌아선다. 음식이 주는 위로,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힘을 얻는다. 오늘날 스시를 경험하는 의미이자, 우리가 스시를 사랑하는 이유다. 오늘도 스시야의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떤 미각적 여행을 하게 될지, 어떤 새로운 감동을 만나게 될지 기대하는 마음 때문이다.
소수헌
1 껍데기에 담아낸 암컷 꽃게와 소토코. 2 잘 숙성된 전어. 3 신선한 피조개. 4 깊은 풍미를 내는 큰 전복.
스시인
1 앙소스에 올린 튀긴 전복. 2 네기도로 유부말이. 3 금태 우니 테마키. 4 광어 뱃살과 실파.
하시라
1 우니 마키. 2 쥐치, 쥐치간과 시소 야쿠미. 3 전어 니기리. 4 광어, 북방조개, 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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