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손흥민의 런던살이가 끝났다. 이젠 로스앤젤레스(LA)다. 손흥민은 지난 2일 국내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토트넘홋스퍼를 떠난다는 최근 루머가 맞다고 인정했다. 이튿날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비공식 경기를 치르며 동료 및 관중들의 성대한 배웅을 받았다. 행선지는 LAFC가 유력하다. 결산 기사를 100개든 200개든 쓸 수 있을 정도로 역사가 쌓였지만 곧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야 하기에, 그가 북런던 레전드로 올라선 10년 여정을 키워드 세 개로 정리했다(편집자 주).
손흥민의 토트넘홋스퍼 경력에서 특이한 점은 한 시대를 오롯이 대표하는 선수라는 점이다. 구단 역사의 한 시기를 직접 열고, 그 전성기와 쇠퇴기를 모두 경험했으며, 유독 오래 버틴 끝에 뒤늦은 결실까지 달성했다. 지난 10년간 북런던을 대표한 단 한 명은 분명 손흥민이었다. 그의 곁을 스쳐 가며 함께 정점을 맛본 동료 선수 4명과 감독 2명, 유일하게 그보다 근속경력이 긴 1명까지 역사를 함께 쓴 직장동료 7명을 추렸다.
▲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아르헨티나)
#DESK라인의창시자 #손흥민스텝업 #21세기토트넘최고감독
손흥민의 토트넘 첫 감독이자, 지나고 보니 선녀였던 감독. 리그에서 가장 젊고 공격적인 팀으로 개편하면서, 전형적인 중상위권 구단이었던 토트넘을 우승을 넘볼 정도의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우승컵 하나를 못 들다가 결국 하락세를 타 5번째 시즌 도중 경질되긴 했지만,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결승 진출을 통해 우승 다음으로 화려한 순간을 손흥민에게 선사했다. 손흥민의 기량 향상에도 큰 도움을 줬다. 토트넘에 갓 도착했을 때 스피드와 양발 슈팅력 위주의 선수였던 손흥민에게 복잡한 전술 소화 능력을 더해주면서 한층 성숙한 완성형 공격수로 이끌었다.
▲ 해리 케인(잉글랜드)
#손케듀오 #PL역사상최고콤비
손흥민과 케인의 조합은 토트넘을 넘어 잉글랜드 축구 역사에 남은 듀오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 합작골이 47골로 역대 최고 기록인데 손흥민이 어시스트한 케인 득점이 23골, 케인이 어시스트한 손흥민 득점이 24골이다. 손흥민이 영입된 2015년은 케인을 기준으로 볼 때 토트넘 주전을 차지한지 고작 1년 지난 시점이었다. 아직 설익었던 시절부터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 둘은 4각 편대, 3각 편대로도 활약하다가 나중엔 단 둘이서 토트넘 역습을 이끄는 파트너 관계로 발전했다. 케인의 중장거리 패스와 손흥민의 초고속 역습은 완벽한 조합을 이뤘다. ‘손케 듀오’는 8년간 함께 뛴 뒤 케인이 바이에른뮌헨으로 이적하며 해체됐다.
▲ 크리스티안 에릭센(덴마크)
#특급플레이메이커 #DESK라인
손흥민의 토트넘 2년 선배였고, 4년 반 동안 동료로 뛰었던 탁월한 공격형 미드필더. 착착 맞아 돌아갈 때는 에릭센의 거리를 가리지 않는 패스가 손흥민의 기회로 연결되기도 했고, 손흥민이 측면을 허문 뒤 중앙으로 준 패스를 한 박자 늦게 침투하는 에릭센이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근속기간이 더 길었던 손흥민이 토트넘 역대 도움 1위, 에릭센이 역대 2위다. 토트넘을 떠난 뒤 덴마크 대표팀 경기 도중 심정지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을 때, 손흥민이 대한민국 대표팀 경기에서 골 세리머니를 통해 에릭센의 쾌유를 빌기도 했다. 브렌트퍼드 선수가 되어 PL로 돌아온 에릭센은 손흥민을 다시 만난 경기에서 꼭 끌어안고 대화를 나눴다.
▲ 델리 알리(잉글랜드)
#DESK라인 #롤러코스터 #몰락한천재
DESK 라인의 마지막 퍼즐로서 D를 맡았던 선수이자, 넷 중 가장 드라마틱한 경력을 쓴 선수다. 잉글랜드 리그원(3부) 유망주였던 선수가 토트넘으로 이적하자마자 주전 자리를 차지하면서 사실상 입단 동기인 손흥민보다 먼저 자리를 잡았다. 득점력이 탁월한 ‘미들라이커’로서 날카로운 침투와 민첩한 움직임, 득점 기회를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한 발재간을 겸비하고 있었다. DESK 중 막내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기량이 하락하면서 2021년부터 제대로 된 경력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이로 인한 상처가 원인이라고 진솔하게 털어놓았을 때 손흥민이 멀리서 응원을 보냈다.
▲ 루카스 모우라(브라질)
#UCL결승행의관우장비 #92년생천재라인
세계적인 유망주가 쏟아졌던 1992년생 중에서도 어려서는 손흥민을 앞질러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았던 브라질의 천재 드리블러였다. DESK 라인의 위력이 떨어져가던 2018년 토트넘으로 합류해 5년간 활약했는데, 그 중 백미는 단연 첫시즌이었다. 특히 케인의 부상 공백을 딛고 UCL 결승에 오르는 과정에서 8강 맨체스터시티전의 주인공은 1, 2차전 합쳐 3골을 퍼부은 손흥민이었고, 4강 아약스전의 주인공은 2차전 해트트릭으로 대역전을 완성한 모우라였다. 그러나 팀의 주문으로 수비가담을 늘리는 등 플레이스타일을 바꾸는 과정에서 파괴력이 떨어졌고, 31세에 일찍 브라질 무대 복귀를 택하면서 손흥민과 동행은 마무리됐다.
▲ 안토니오 콘테(이탈리아)
#손케라인완성 #손흥민득점왕 #짧고굵게
손흥민이 딱히 감독 복을 타고났다고 보긴 힘들지만, 포체티노 다음으로 합이 좋았던 지도자라면 2021-2022시즌 PL 득점왕 등극을 함께 했던 콘테 감독이다. 흔들리던 토트넘에 시즌 도중 부임한 콘테 감독은 케인과 손흥민을 중심으로 한 역습의 위력을 극대화했다. 그 결과 토트넘은 순위가 수직상승해 4위로 마무리할 수 있었고, 손흥민은 치열한 득점왕 레이스 끝에 23골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모하메드 살라와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다만 포체티노와 마찬가지로 끝은 좋지 않았기에 그리 멋진 이미지로 기억되진 못한다. 두 번째 시즌 손흥민과 새로 영입한 선수들의 조화를 잘 이뤄내지 못했고, 애매한 성적 속에서 팀을 떠났다.
▲ 벤 데이비스(웨일스)
#웨일스마피아 #아들의대부손흥민
내한 선수단 기준, 토트넘에서 유일하게 손흥민보다 오래 뛴 선수. 2014년 토트넘으로 이적한 뒤 아직까지 활약 중이다. 손흥민과 가장 오랫동안 우정을 나눴고 포지션이 레프트백이라 측면에서 함께 호흡을 맞출 일도 많았다. 한때 데이비스, 가레스 베일, 조 로든 등이 ‘웨일스 마피아’를 결성했는데 손흥민이 국적 불문한 친화력으로 이 멤버에 들어간 적이 있다. 또한 데이비스는 아들의 대부가 손흥민이라고 밝힌 적도 있다. 최근 손흥민과의 작별에 대해 “내게 가족 같은 친구다. 손흥민은 우리 구단의 지난 10년간 변화에 영향을 준 선수”라고 헌사를 바친 바 있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크리스티안 에릭센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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