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금융감독 체계 개편 논의에 5대 시중은행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예금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은 각기 다른 강점과 약점을 지니고 있어 개편에 따른 이해관계와 셈법도 엇갈린다. 금소원 신설 등으로 감독기관이 늘면 분담금 급증과 규제 중복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현장에서 터져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비용 논란보다 금융사고와 기강 해이를 막기 위한 자기 성찰이 먼저라고 지적한다.
▲각양각색 5대 은행, 디지털부터 점포망까지 제각기
5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은 모두 거대한 자산 규모를 자랑하지만 시장 전략과 강점은 조금씩 다르다.
국내 최대 은행인 KB국민은행은 전통적으로 가계대출과 예금 등 내수 금융에 강하다. 막강한 고객 기반을 바탕으로 이자이익 규모가 업계 최대인 덕분에 견고한 수익성을 유지해왔다. 다만 수익구조가 금리와 이자이익 중심으로 편중돼 있다는 점은 약점으로 꼽힌다. 금리 환경 변화에 실적 변동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상대적으로 비이자 수익과 디지털 경쟁력에서 강점을 보인다. 지난해에도 자체 모바일 플랫폼 ‘쏠(SOL)’을 앞세워 탄탄한 이자이익 증가와 함께 22%의 순익 성장을 이뤄냈다. 여기에 카드·증권·보험을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 시너지로 수익 다변화에 강점이 있다는 평가다. 다만 공격적 디지털 투자와 인수합병 등으로 그룹 차원 비용 부담이 늘어난 점은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하나은행은 5대 은행 중 해외·기업금융에 특히 강한 색깔을 지녔다. 외환 전문은행이었던 옛 KEB외환은행 인수 이후 글로벌 네트워크와 기업여신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워왔다. 그 결과 지난해엔 분기 기준이지만 사상 처음으로 순이익 3조원을 돌파하며 ‘리딩뱅크’ 자리에 올랐다. 기업 대출 성장과 비교적 안정적인 비이자이익이 뒷받침된 덕분으로, KB·신한 중심이던 양강 구도를 흔든 이례적 성과였다. 하나은행의 도전 과제는 리스크 관리와 내수 기반 확충이다. 해외사업과 기업금융 비중이 큰 만큼 글로벌 경기나 환율 변동에 실적이 영향을 받을 수 있고, 국내 소매금융에서는 여전히 KB·신한 대비 고객 기반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은행은 한때 공적자금 투입으로 국가 관리 체제에 있었으나 지난 2021년 완전 민영화에 성공했다. 이후 보수적 영업과 내실 다지기에 집중해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다른 대형 금융그룹에 비해 보험사 등 비은행 계열사가 취약해 종합금융 경쟁력이 약하고, 2022년 거액 횡령사고를 비롯해 연이어 불거진 내부통제 리스크를 극복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NH농협은행은 특수은행 성격답게 전국적 지점망과 공공 정책금융 역할이 특징이다. 실제 전체 5대 은행이 최근 5년 새 점포 700곳 넘게 줄이는 동안 NH농협은행은 유일하게 1000개 이상의 영업점을 유지하며 촘촘한 채널을 지켰다. 탄탄한 기반 덕에 지역·농어민 금융지원 등 정책적 기능을 수행하는 한편, 리스크가 큰 투자보다는 안정적인 여수신 위주의 영업을 펼쳐왔다. 이로 인해 수익성이 다소 낮고 디지털 혁신 속도에서도 민간 시중은행 대비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5대 은행은 규모 면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내부 사정과 강약점은 제각각이다. 디지털 혁신 선도(신한)부터 해외·기업금융 특화(하나), 국내 리테일 압도적(KB), 조용한 내실 성장(우리), 광범위 채널과 공공성(NH)까지 포지션이 다르다. 이는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가령 디지털 전환이나 신사업에 적극적인 은행들은 감독 당국의 혁신 친화적 정책을 기대하는 반면, 내수 영업 중심 은행들은 과도한 규제나 간섭 최소화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전체 은행권에 공통적으로 중요한 것은 감독체계 개편으로 규제 환경에 큰 혼란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각 은행 상황은 다르지만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확보돼야만 은행들도 자기 강점을 살린 장기 전략을 짤 수 있다"고 전했다.
▲“금융당국 늘면 부담만 증가” 은행권 속내는 우려 한가득
현재 논의 중인 금융감독 체계 개편안은 금융위원회를 해체하고 금융정책 기능은 기획재정부로, 감독 기능은 금융감독원과 통합해 새로운 금융감독위원회로 이관하는 한편,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분리해 별도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신설하는 것이 골자다.
사실상 금융위는 사라지고 금감원은 둘로 쪼개지는 대대적인 구조 개편이다. 이 개편안의 윤곽이 드러나자 금융당국 내부는 물론 은행권도 적잖이 술렁이고 있다. 정작 감독을 받는 당사자인 은행들은 이번 논의에서 배제된 채 결과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지켜보는 중"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상당하다.
가장 현실적인 걱정은 감독기관이 늘어나면서 비용 부담도 급증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도 금감원 예산의 80% 이상을 은행 등 금융사 분담금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올해 전체 분담금 규모는 약 330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금소원 같은 새로운 기관이 신설돼 검사·감독 인력과 기능이 확대되면, 업계에서는 현실적으로 최소 1000억원 이상의 추가 분담금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늘어나는 분담금보다 감독기관이 여러 곳으로 쪼개지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개편안이 확정되면 대관 인력을 늘리는 등 방책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금감원, 금소원, 기재부(재정경제부), 신설 금감위까지 챙겨야 할 ‘감독관’만 더 늘어나니 은행 입장에선 속이 타들어간다는 푸념이다.
실제 은행권에선 감독체계 변경에 따라 규제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강화될까 긴장하는 분위기다. 소비자 보호 강화라는 명분 아래 금소원에 검사 권한까지 주어지면 금융회사들은 금감원 검사에 더해 또 하나의 감독관의 눈치를 봐야 한다.
이렇듯 은행권 속내는 새 감독 기구 출범 시 추가 비용과 규제 부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공식 발언은 극도로 자제하며 상황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괜히 잘못 나섰다가 개편 이후 새 감독기관의 소위 시범 케이스가 될 수 있어서다.
▲실무, “규제 바뀔 때마다 시스템 뜯어고쳐…전략 수립 어렵다”
은행 실무현장에서는 감독당국 개편 논의 못지않게 당장 발등의 불인 각종 규제 대응 비용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은행들은 사모펀드 사태, 대규모 횡령 사고, 잇따른 금융사고 등이 터질 때마다 감독당국 지시에 따라 내부통제 시스템을 반복적으로 수정 보완해왔다. 그때그때 새 지침에 맞춰 전산 시스템과 업무 프로세스를 재작업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비용과 인력 증가로 이어졌다.
실제 은행권은 내부통제 강화와 각종 준법감시 인력 확충에 최근 몇 년 새 힘을 쏟고 있다. 그 결과 한때 영업점당 1명 수준이던 준법감시 담당자가 이제는 2~3명씩 배치되고, 본점의 법규 대응 부서 인력도 크게 늘어난 곳이 많다. 그러나 감독개편으로 금융당국 창구가 복수로 늘어나면 보고 절차와 대응 인력이 또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은행들의 하소연이다. 가뜩이나 디지털전환 투자나 미래 사업 개발에 써야 할 자원이 규제 대응에 묶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비용 구조 악화로 이어져 은행 경쟁력을 갉아먹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 부족은 은행 경영전략에 큰 불확실성 요소로 꼽힌다. 최근에도 정부는 가계부채 급증을 이유로 갑작스레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시행해 하반기 은행 영업계획이 크게 흔들렸다. 5대 은행들은 올초 세운 목표 대비 하반기 가계대출 목표치를 절반 이하로 줄이라는 당국 지침에 직면했다. 실제 국내 은행들은 총수익의 80% 가량을 이자이익으로 벌어들이고, 그 절반은 가계대출에서 나온다. 한순간 정책 변경으로 전체 이익의 40% 안팎을 차지하는 수익원이 위축되자, 당장 "하반기 먹거리를 어떻게 찾느냐"는 한숨이 나온다. 정부는 가계부채 억제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은행 입장에선 예측 어려운 정책 방향이 사업전략 수립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금융감독 체계 개편 과정에서도 정책 혼선 조짐이 엿보이자 은행들은 더욱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애초 국정기획위가 금융위 해체안을 구상하며 개편 작업에 들어갔는데, 정작 집권 여당 내부에서 금융위를 유지·강화하는 내용의 법안까지 발의되는 등 엇갈린 신호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는 기재부의 일부 기능을 금융위로 이관해 금융위 역할을 강화하는 법안을 내놓으면서, 이전에 검토된 ‘금융위 폐지’안과 정반대되는 혼선이 빚어졌다.
은행권을 비롯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방향이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결국 금융투자업계 시선은 감독체계 개편의 내용 그 자체보다도, 이 과정에서 정책적 일관성을 지키고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는지가 관건이라는 데 모아진다. 정책 혼선을 최소화해 감독당국과 시장의 신뢰를 높이고, 은행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미래 전략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 은행권의 가장 큰 바람이다. 정부와 정치권 역시 금융감독 개편을 추진함에 있어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개편 이후 규제 운용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후속조치를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용 타령보다 자기 성찰이 먼저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논란을 두고 은행권과 금융투자업계의 태도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황용식 교수는 "경영 전략 관점에서 보면 비용 증가만을 우려하는 건 경영학의 기본을 모르는 것"이라며 "금융감독기구가 왜 생겨났는지, 잦은 금융사고와 성과급 잔치로 인한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은행들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감독기구의 존재 이유는 단순한 비용 요인이 아니라 조직의 기강과 건전성을 유지하는 장치"라며 "최근 불법 대출, 대규모 횡령 등 사건이 잇따르며 금융권 내부 통제가 무너진 만큼, 정부가 감독을 강화하는 것은 시장질서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 안전장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럴 때일수록 은행들이 먼저 자신들을 되돌아보고, 건전성과 신뢰 회복에 앞장서야 한다"며 "감독 강화는 자본주의 시장질서를 훼손하기보다 금융사고와 기강 해이의 반복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강조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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