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험사기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처벌 수위는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에 머물러 있어 범죄 억제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병원·정비업소·보험설계사 등이 결탁한 기업형 범죄부터, 인공지능(AI)·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한 신종 수법까지 등장했지만, 법과 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영국·미국 등 주요국은 수십 년 전부터 보험사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전담기구 설치, 실형 중심의 강력한 제재로 대응하며 범죄 억제에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험사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국민의 지갑 속 돈을 빼앗아가는 심각한 범죄인 만큼 보험사기를 예방할 수 있는 선제적인 법·제도 개선과 대응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매년 증가하는 국내 보험사기…교묘해지는 수법, 커지는 피해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적발된 보험사기 금액은 1조1502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5년 전보다 24.2% 증가한 수치다. 적발 인원만 9만4000명에 달했다. 전체 보험 가입자 5명 중 1명꼴로 보험사기에 연루되고 있는 셈이다.
연령대별로는 60대 이상 고령층의 비중이 21.4%로 5년 전 보다 5.7%p 증가했다. 특히 현직 보험설계사나 의료기관 종사자 등 업계 종사자의 가담 비율도 꾸준히 늘고 있어 사태의 심각성을 더한다. 보험사기의 주요 유형은 △사고 내용 조작(58.2%) △허위사고(20.2%) △고의사고(14.7%) 순이며, 나머지는 기타 유형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IT기술을 악용한 신종 수법이 등장했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사고 영상을 AI·딥페이크 기술로 합성하거나, 과거 영상을 조작해 보험사고 증거로 제출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변형된 자료는 외형상 진짜처럼 보이기 때문에 적발이 어려워 수사기관과 보험사 조사팀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조직형 범죄의 경우 수법은 더욱 치밀하다. 병원장·간호사·환자 역할을 나눠 불필요한 진료와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 실손보험금을 편취하거나, 정비업소·보험설계사·차량 소유주가 짜고 경미한 접촉사고를 의도적으로 유발해 수리비와 보험금을 부풀리는 식이다. 실제 경찰이 지난해 5~6월 두 달간 특별단속을 벌인 결과 총 636건에서 3219명을 검거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97.5%, 114.6%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보험사기는 보험사의 손해율을 높이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일반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진다. 자동차보험만 놓고 봐도 지난해 한 해 보험사기로 인한 보험료 추가 부담액은 가입 차량 1대당 약 2만2000원에 달했다. 여기에 보험사기 적발·예방을 위한 조사 인력 확충, 시스템 도입, 소송 비용 등 간접 비용까지 고려하면 실제 부담은 이보다 훨씬 크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를 '보험료 간접세'라고 부른다. 일부의 범죄 행위가 전체 가입자의 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만큼 보험사기는 단순한 재산범죄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해외는 '중형·중벌', 한국은 '솜방망이'…범죄 억제력 효과 미미
나날이 증가하는 보험사기를 막기 위해선 선제적인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서는 보험사기가 '비폭력 범죄'라는 이유로 경미하게 취급되지만 피해 규모와 사회적 파급력을 고려하면 마약이나 조직범죄에 버금가는 심각한 범죄라는 이유에서다.
2021년 기준 국내에서 보험사기죄로 유기징역을 선고받는 비율은 20.2%에 불과하다. 이는 일반 사기죄(59.3%)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징역 3년 이상의 실형 선고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1년 미만의 단기 징역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치면서 범죄 억제 효과가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면 영국은 2006년 보험사기국(IFB)과 경찰청 산하 전담수사부서(IFED)를 설립해 보험사기 전담 대응 체계를 갖췄다. 민간·공공기관이 실시간으로 보험사기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전국 단위의 보험사기자 등록 시스템(IFR)을 운영하고 있다. 교통사고를 가장해 보험금을 타내는 '크래시 포 캐시(Crash for Cash)' 사건의 경우 전국적으로 수천건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IFB가 의뢰한 사건의 68%가 형사처벌로 이어진다.
미국은 1994년 제정된 연방 보험사기방지법을 통해 허위 진술, 고의 기만, 보험자산 횡령 등을 최대 징역 10년까지 처벌한다. 조직범죄의 경우 수백만 달러의 벌금과 가중처벌이 부과되며, 금융사기 전과자가 보험사 임원으로 활동하려면 연방보험국(FIO)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 위반 시 개인뿐 아니라 기업에도 형사 책임을 묻는다. 주(州) 단위에서도 보험사기 전담수사국을 운영하며 실형 중심의 강력한 처벌을 집행하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의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은 존재하지만, 유관기관 간 정보 공유가 제한적이고 정부합동수사단의 주요 과제에서도 보험사기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 전담수사조직 부재, 민·관 데이터 통합 플랫폼 미비 등 구조적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처럼 강력한 실형 중심의 처벌과 민·관 통합 대응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AI·빅데이터 기반 보험사기 탐지 시스템 전국 확산, 예방 교육 강화, 범죄 수익 환수 제도 실효성 제고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기홍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엔 금감원과 경찰청, 보험사 등이 수사협의회를 열거나 협업하는 방식으로 보험사기 방지를 위한 공조는 이뤄지고 있지만 정작 컨트롤 타워는 없어 처벌까진 힘든 상황이다"며 "정부합동수사단에도 가상자산범죄, 금융증권범죄, 보이스피싱, 국가재정범죄는 있지만 보험사기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도 증가하는 보험사기에 대응하기 위해 보험사기 컨트롤 타워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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