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미국 고용지표가 예상을 크게 밑돌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복합적인 전환기에 들어섰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가 급부상하며 달러화는 약세로 돌아섰고, 원·달러 환율은 다시 1380원대로 내려왔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환율 조정이 아니라, 미국발 수요 둔화와 통화정책의 신뢰 약화가 결합된 ‘이중 구조 리스크’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겐 가격 요인보다 수요 붕괴가 훨씬 치명적일 수 있으며, 자산시장도 기존 흐름과 다른 비대칭적 재편이 나타나고 있다.
◇美 고용지표 급락…단순 환율보다 ‘실수요 축소’가 본질
4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뉴욕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원·달러 1개월물은 1386.5원에 최종 호가됐다. 스와프 포인트(-2.25원)를 반영하면 이날 환율은 전일 종가(1,401.4원)보다 12.65원 낮은 1388원 초반에서 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새벽 2시 기준 마감가(1388.3원)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표면적으로는 달러 약세에 따른 원화 강세다. 그러나 그 배경엔 미국 경제의 구조적 둔화가 자리하고 있다. 7월 비농업 부문 고용은 7만3000명 증가에 그치며 예상치(18만명)를 크게 밑돌았고, 5~6월 수치도 대폭 하향 조정됐다.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48.0으로 5개월 연속 위축세를 지속 중이다.
단기적으로는 원화 강세 요인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한국 수출의 볼륨 자체를 줄이는 구조적 위협이다. 원화 강세는 수출 단가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미국발 소비 위축이 겹치면 ‘가격 하락 + 물량 축소’라는 이중 타격이 현실화될 수 있다.
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 J씨는 “환율만 보며 수출 경쟁력을 판단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실수요가 붕괴되면 가격경쟁력은 의미를 잃고, 수출은 구조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연준의 ‘정치화’…통화정책 신뢰 흔드는 두 번째 충격
이번 고용지표 충격은 금리 인하 기대를 자극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구조 변화는 연준의 중립성 흔들림이다. 아드리아나 쿠글러 연준 이사는 오는 8일 자로 사임을 예고했다. 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준 이사회에 공석이 생겨 기쁘다”고 즉각 반응했다. 파월 의장과 반복적으로 갈등을 빚어온 트럼프 전 대통령이 후임 인선을 주도할 경우, 연준의 정치적 중립성과 정책 신뢰성은 정면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이는 1970년대 아서 번스 당시 연준 의장이 닉슨 행정부의 경기부양 압박에 굴복해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잃었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지 못하고 달러 신뢰를 훼손하며 국제통화 시스템을 흔들었다.
J 변호사는 “연준이 정치적으로 기울게 되면 통화정책의 예측 가능성은 무너지고, 글로벌 외환시장은 ‘신뢰 상실’이라는 본질적 리스크를 안게 된다”고 우려했다.
한국처럼 외자 유입에 민감한 개방형 경제에서는 ‘달러의 정치 통화화’가 환율 급변성과 투자 흐름 불안정성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외국인 자금 흐름, ‘주식’ 아닌 ‘채권’으로 재편
원화 환율이 안정세로 진입하면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 자산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 특히 달러 인덱스가 하락하고 환율 불확실성이 완화되면, 원화 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 자금 유입의 중심은 ‘주식’이 아닌 ‘채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연준의 금리 인하가 가시화되면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한국 국고채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반면 한국 주식시장은 경기 둔화와 수출 축소라는 이중 부담 속에서 제한적인 반등만 가능하다.
한 운용사 매크로 애널리스트는 “과거에는 원화 강세가 곧 외국인 주식 매수로 이어졌지만, 지금은 채권 중심의 방어적 유입 구조로 변하고 있다”며 “이는 한국 자산시장 내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자산시장 모두 ‘구조적 이해’ 기반의 전략 재설계 시점
글로벌 시장은 현재 ‘고용 쇼크 → 금리 인하 기대 → 달러 약세 → 원화 강세’라는 전형적인 흐름을 밟고 있다. 그러나 이 표면적인 흐름 이면에는 미국 소비 구조의 약화, 연준의 신뢰 저하, 자산시장 재편이라는 복합적 구조 변화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단기 환율 흐름만을 좇는 전략은 점점 더 무력해지고 있다. 한국처럼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는 이제 실수요 기반 분석과 정책 신뢰 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는 생존 전략 자체를 재설계해야 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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