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고속국도 제14호선 함양~창녕 간 건설공사 제10공구에서 60대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까지, 올 들어 4명의 사망사고를 내며 이재명 대통령의 분노를 산 포스코이앤씨 산업재해 현장들이다.
주목할 대목은 이들 4건의 산재 가운데 3건이 모두 공사기간(공기)에 쫓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초 올해 12월 준공 목표였던 김해 아파트는 내년 1월로, 올해 3월 이미 준공했어야 하는 대구 주상복합은 내년 8월로 공사기간이 늘어진 상황이었다. 특히 신안산선의 경우 올해 4월에서 내년 12월로 개통을 연기했는데, 이마저 당초 시행사인 넥스트레인이 국토교통부에 희망한 2029년 4월보다 무려 28개월 앞당겨진 일정이었다.
산재에는 안전관리 미흡, 현장 근로자의 부주의 등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그 배경에는 촉박한 공기가 깔려있다는 게 복수의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이들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주 52시간제, 건설 관련 노동조합의 잇단 파업, 이상기후 등으로 전국 건설현장 대부분 공기 지연 문제를 빚으면서 ‘돌관공사’를 하지 않는 곳을 찾기 더 어려운 실정”이라며, 최근 유독 두드러지고 있는 하자, 부실공사 논란에 더해 산재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돌관공사는 공기가 촉박할 때 일시적으로 장비와 인력을 집중 투입해 진행하는 공사를 말하며, 순차적으로 이뤄져야 할 시공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부실공사는 물론 안전관리에 소홀해질 가능성이 높다.
안전관리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결국 적정 공기 확보가 관건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기를 결정하는 실질적 권한은 원청 시공사·하도급 업체가 아닌 결국 발주자(시행사)에 있는 만큼, 결국 이들에게도 안전관리의 일정 부분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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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했다 돌아오지 못한 71명…“‘속도 우선’ 현장 관례가 문제”
3일 고용노동부 중대재해 알림e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건설업계 사망사고 발생건수는 63건, 사고 사망자 수는 71명에 이른다. 2022년 1월 27일 강력한 사후적 처벌 방안인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시행됐지만 분기별 사망자 수는 줄곧 60~100명 사이를 오르내리며 좀처럼 그 숫자가 줄지 않는 모양새다.
사망자 중 62.0%(44명)는 추락 사고였다. 단부(옥상·옹벽·통로 등의 끝과 같이 단차가 있는 끊어지거나 잘라진 부분)·개구부(자재운반 또는 엘리베이터 설치 등을 위해 바닥이 뚫린 부분), 비계(높은 곳에서 공사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발판 등에서 추락하는 사례가 가장 많았다.
대부분 사전에 안전시설을 마련하고 안전장치만 잘 착용해도 막을 수 있었던 사고들이지만, 안전보단 ‘작업 속도’를 우선하는 현장 관례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은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한 전문건설사 관계자는 “하도급 업체 근로자들은 하루하루 공정률에 맞춰 작업을 완료하는 데에 급급하다 보니 안전모 착용이나 안전로프 결착, 안전장치 설치 등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가령 원래 1인만 투입해도 되는 작업을 안전을 위해 2인 1조로 해야 하니, 이를 어기고 혼자 작업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특히 △주52시간 근로제 △최근 치솟은 공사비에 따른 갈등 △국내 인력 고령화 및 외국인 근로자 증가 △이상기후에 따른 근무시간 단축 △파업 등 공기 준수가 날로 어려워지는 현실에 건설업계 우려감은 더욱 높다. 실제로 지난해 초 부동산R114가 당해 입주하는 전국 아파트 공기를 취합한 결과 평균 29개월로 조사됐다. 2020∼2023년 4년간 입주가 이뤄진 아파트의 평균이 25개월이었던 것에 비해 4개월이 늘어난 수치로, 그만큼 공기에 쫓기는 건설현장이 많아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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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챙길 공기 확보…“실질적 주체인 발주자도 책임져야”
이와 관련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은 영국이 1994년부터 도입한 건설설계관리규제법(CDM)을 주목했다. 건설사업 안전관리의 총 책임은 발주자, 시공 이전 단계의 책임은 주설계자, 시공 단계의 책임은 원청 시공사에 지우는 방식이다. 이는 근로자 10만명당 10명이던 사망률이 CDM 규정 시행 이후 1.62명으로 크게 감소하는 효과를 냈다.
최수영 건산연 연구위원은 “발주자 안전관리 책임을 강화하면 안전 역량이 뛰어난 시공사를 선정하려 하고 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을 쓰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책임을 부여받은 발주자는 안전사고가 나지 않게끔 발주 단계에서부터 충분한 공기,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는 게 최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국내에서도 같은 맥락의 법안이 최근 발의돼 국회 계류 중이지만, 여전히 사후적 처벌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6월 27일 대표발의한 ‘건설안전특별법’은 ‘발주자는 적정한 공사비용과 공사기간을 제공하며, 시공자가 안전관리를 책임지도록 하는 등 건설공사 참여자별로 권한에 상응하는 안전관리 책임을 부여’하도록 했다. 단 ‘안전관리 의무를 소홀히 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건설사업자 등에 1년 이하의 영업정지를 부여하거나 매출액에 비례(최대 3%)하는 과징을 부과한다’는 초강력 처벌 방안이 함께 담겼다.
전영준 건산연 미래산업정책연구실장은 “건설안전특별법은 건설안전사고의 원인을 발주자까지 그 범위를 확대·규정해 건설사업 이해관계자 모두의 개선방안 방향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기존 대비 진일보한 입법”이라면서도, “여전히 건설이해관계자 중 일부에게만 책임을 집중하는 처벌 중심 법안”이라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전향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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